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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윤 Nov 12. 2024

중력 콘서트

4화

‘근데 이 해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는 우주를 하나 더 만들 수도 있는 양인데요?’

‘아, 몰라. 그 정도는 있나 보지 뭐.’


이렇게 무시무시한 해적들 중에서 ‘벨테브레이’는 조금 독특한 녀석이다. 다른 녀석들이 주로 확장에 신경을 쓰고 있는 반면 ‘벨테브레이’는 자신이 자리를 잡은 성계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신 녀석은 밖에 있는 것들을 자꾸 자기 영역 안으로 가지고 왔다. 타 성계의 행성들을 가져오는 것은 예사이고 온갖 왜성들을 색깔별, 밝기별로 모아놨으며 중성자별까지 가져다가 절묘한 중력균형을 맞춰서 위치시켰다. 덕분에 녀석은 수집가라고 불리며 그가 자리한 성계의 범위와 질량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13년 전의 어느 날, 태양계 외곽 관측소에서 ‘벨테브레이’ 성계의 요란한 중력 변동을 감지하였다. 연방정부는 즉시 비상체계로 들어갔는데 그 신속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벨테브레이’ 성계는 태양계에서 25광년 떨어져 있으니 그 녀석이 뭘 하건 25년 전에 시작한 거다. 게다가 관측 데이터 분석 결과는 해답이 아니라 새로운 미스터리를 주었는데 ‘벨테브레이’ 성계의 중력 변동 원인은 구성 천체들의 충돌이었기 때문이다. 우주적으로는 찰나나 다름없는 13년 동안 ‘벨테브레이’ 성계의 수많은 행성들이 로슈 한계를 넘어 붕괴하고, 갈색 왜성이 합쳐져 적색거성이 되고, 적색거성이 합쳐지며 강력한 항성풍이 발생하였다. 현재까지의 계산에 따르면 대략 1만 년 뒤에는 성계 전체가 붕괴되어 결국 하나의 블랙홀만 남을 것이다. 천체 역학을 완전히 무시한 현상이기에 이건 ‘벨테브레이’가 애써 모은 수집품들을 스스로 부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블랙홀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녀석이 가진 능력으로 판단할 때 더 좋은 방법이 많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성계 붕괴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력파를 음파로 변환하여 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천체들의 어지러운 움직임과 연이은 충돌들은 혼란 그 자체로 보였지만 소리로 들어보니 화음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정교한 음악이 나온 것이다. ‘벨테브레이’는 그동안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단원들을 모으듯 공들여 천체들을 모았고 정교하게 조율하여 위치시켰다. 천체들을 악기 삼아 우리 은하 전체에 울려 퍼질 중력 콘서트를 벌이기 위해서. 앞으로 1만 년 동안 계속될 역사상 최장의 교향곡이다. 


월레스 씨와 만나는 곳은 대체로 마을 외곽의 버려진 옛 지하 실험장이다. 100년쯤 전에 만들어진 곳으로 원래는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중력파 관측소였다고 한다. 요즘은 중력파 관측을 위해서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간섭계 따위 사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방치해 두는 것은 한때 과학의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일한 기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쓸 수 있는 거잖아.’


월레스 씨는 5년째 혼자서 몰래 이곳을 재정비하고 있었고 2년 전부터는 나도 그를 돕게 되었다. 난 보통 그가 접근할 수 없는 장비들을 구해오는 일을 한다. 정크샵을 돌며 필요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일을 2년이나 하다 보니 나름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되었다. 남는 부품들로 반도체 기반의 빈티지 컴퓨터를 만들어 팔며 10대 소녀 치고는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 건 덤이다. 나랑 거래하는 빈티지 컴퓨터 애호가들에 따르면 요즘 사용되는 광학소자 확률컴퓨터는 신뢰할 수가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역시 고전적인 트랜지스터가 만들어내는 0과 1의 명확한 디지털 비트라고 한다. 애매모호한 큐비트 따위를 사용하니 현대문명이 이 꼴이라고 투덜거리는 편협한 노인들이지만 돈은 많다. 그들을 통해 번 돈의 상당 부분은 월레스 씨와 나의 중력파 관측 프로젝트에 사용하고 있다. 월레스 씨는 처음에는 내가 프로젝트에 돈을 쓰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네가 필요한 곳에 그 돈을 써야지. 옷이나 화장품 뭐 그딴 거 말이야. 10대 소녀면 겉모습에 신경을 좀 쓰라고.’

‘월레스 씨한테서 겉모습이 어쩌고 하는 소릴 듣고 싶지는 않아요.’


진심 그러했다. 솔직히 나름 꾸민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괜찮아. 난 고립계에 속해 있다고. 하지만 네가 속한 그 끔찍한 또래 사회는 겉모습이 생존과 직결되는 곳 아니냐.’

‘이제 괴롭힘은 당하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괴롭힘이 아니라 무시를 당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은 거죠.’

‘사람 말 좀 쳐들어라!’


월레스 씨의 고집도 상당하지만 내 것은 그를 능가했다. 결국 그는 복구한 레이저간섭계로 관측한 벨테브레이 협주곡의 데이터 소유권을 나한테 모두 양도한다는 조건으로 나의 투자를 받아들였다. 그는 벨테브레이 협주곡을 라이브로 듣는 것이 목적이기에 레코딩 따위 흥미가 없다고 했다. 벨테브레이 협주곡을 관측하는 것은 물론 데이터를 소유하는 것조차 불법이지만  그 덕분에 협주곡의 레코딩은 암시장에서 매우 비싸게 팔린다. 특히 이렇게 거대 레이저간섭계를 이용한 레코딩은 훨씬 가치가 있다. 다른 관측방법보다 훨씬 오리지널에 가까운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애초에 중력파를 음파로 변환하는 건데 오리지널에 가깝다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돈 가진 놈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뭐. 만약 레코딩 데이터를 판매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용 우주선을 살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절대 그럴 생각은 없다. 아무리 안전한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거기 인간이라는 변수가 들어가면 일이 잘못되는 건 시간문제가 된다. 안보국에 발각된다면 내가 피해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실 내가 받을 처벌은 그리 무겁지 않다. 기껏해야 몇 년의 징역형에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게 되겠지. 하지만 월레스 씨는 얘기가 다르다. 벨테브레이 협주곡에 접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월레스 씨는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에 갇힌 채 여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가 나를 위해서 했던 일까지 밝혀진다면 그는 그 즉시 연구대상이 되어 모든 신경계가 해체될 것이 뻔하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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