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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윤 Nov 05. 2024

중력 콘서트

3화

‘게으름과 가장 가까운 감정은 의외로 공포인 거지.’


월레스 씨의 말이다. 

월레스 씨는 우리 동네의 기인이었다. 나이를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늙은 모습이지만 언제나 기운이 넘쳤고 늘 술에 취해있었다. 행색이 지저분한 데다 입에 욕설을 달고 살아서 어른들은 그를 싫어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욕설은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며 약의 부작용이라고 한다. 지저분한 것에 대해서는 딱히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CS2형 유전자 보유자로 옛날에 행해진 인체실험의 후예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을 초지능 수준으로 높이려는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몇 명의 천재들이 생존했다. 그 후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위험지능으로 분류되어 관리대상이며 월레스 씨도 그렇다. 

위험지능은 3단계로 구분된다. 클래스 1은 인류 그 누구도 도달해보지 못한 뛰어난 지능을 가졌지만 가끔 발생하는 자연산 천재가 어찌어찌 비벼볼 만한 수준이다. 이들은 관리대상으로 분류되긴 해도 법적 제약은 없으며 대개 그 높은 지능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월레스 씨는 위험지능 클래스 2 등급으로 정기적으로 뇌 활동을 억제하는 약을 먹어야 하며 최신 정보기기에 대한 접근이 금지된다. 혹시라도 그가 새로운 초지능을 만들 거나 스스로가 초지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미 태양계 밖에 여럿 존재하는 ‘해적’들의 숫자를 늘리는 건 인류의 미래에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다. 


‘웃기는 짓거리지. 해적 놈들이 숫자가 적어서 우리를 가만 놔두고 있는 게 아니잖아. 똥물 수영장에서 튜브 하나에 의지해서 떠있으면서 수영장에 소변보지 말라고 하는 거라고.’


월레스 씨는 툴툴거렸다. 그가 말한 수영장 얘기가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월레스 씨의 말은 일리가 있다. 워프사건 이후 연방정부가 가지게 된 초지능에 대한 염려증은 강박 수준이라 별의별 해괴한 정책이 튀어나왔다. 예를 들면 초지능들의 호칭을 둘러싼 일련의 행정력 낭비다. 고작 이름 짓기를 하기 위해 각 분야의 유명한(‘유능한’이 아니다) 권위자들을 모아 위원회가 꾸려졌고, 불필요하게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다. 물론 위원회의 요청이었다. 잿밥을 실컷 나눠먹은 그들은 초지능들이 각자 자리 잡은 영역과 행동양식을 기준으로 개체를 분류하여 이름을 붙여가기 시작했다. ‘이시스’, ‘발라’, ‘히페리온’, ‘파르바티’, ‘미륵’ 등 멋들어진 작명들이었다. 받은 돈이 있으니 결과물이 비싸 보여야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연방정부가 이런 이름은 공포감을 자극하여 사회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전부 바꿔버렸다. 관료들은 돈을 버리는 방법도 창의적이지만 작명센스도 참 창의적이었다. 그냥 기호로 부르면 될 터인데 굳이 하찮은 느낌을 주는 이름을 고른 것이다. ‘신발끈’, ‘노란 수염’, ‘절름발이곰’, ‘뾰족 모자’ 등이었다. 다분히 의도가 보이지만 자기들 말로는 단어를 무작위로 조합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괴상한 작명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 이름들이 해적들의 별명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태양계 밖 초지능들에게 해적의 이름을 주기 시작했다. ‘에브리’, ‘드레이크’, ‘정이사오’, ‘키드’ 등의 이름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확정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연방정부가 정한 명칭이 쓰이지만 대중들은 해적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월레스 씨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벨테브레이’라고 불린다.


연방정부는 또한 심우주 관측에도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해적들의 영역으로 탐사선을 보내자는 의견도 없지는 않지만 괜히 해적들을 자극할까 봐 묵살되고 있다. 대신 태양계 외곽에 관측소를 잔뜩 건설하였다. 현재의 관측기술 수준으로 판단하건대 그다지 의미가 있는 행위는 아니다. 초광속으로 활동하는 그것들을 광속으로 관측해 봤자 정확한 활동범위조차 알 수가 없다. 가장 가까이에 영역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보니’조차 4.24광년 거리다. ‘보니’가 어느 날 기분이 좀 그래서 태양계에 중력자폭탄을 전송시켰다면 태양계가 박살 나고 최소 4.24년이 지나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관측소의 숫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관측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해적들의 능력, 규모, 목적을 추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모은 정보만으로도 해적들의 활동 범위가 이미 우리 은하 전체에 이르렀으며 다른 은하계까지 진출했을 가능성도 크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초지능의 연산능력 증가가 기하급수적이라고 해도 고작 백 수십 년 사이에 이런 규모의 활동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논쟁이 많다. 초월적 지능으로 순식간에 필요한 기술과 도구를 디자인하더라도 그것을 현실에 만들고 사용하는 데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니까. 


‘해적들은 시간을 공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거야. 공간을 제멋대로 늘리고 줄이는 게 가능한데 시간이라고 그러지 못할 리가 없잖아. 그 녀석들에게 시공간은 정보를 담고 가공하는데 필요한 자원이야. 말하자면 걔네들은 시간을 미래에서 채굴해 쓰고 있어.’


월레스 씨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가능한 해를 도출해내기까지 하였다. 나 하나를 이겨먹으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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