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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미러링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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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윤 Oct 21. 2024

미러링

5화

‘너와 내 마음이 같다는 걸 확인해서 안심했어.’

‘나도 그래. 정리되지 않은 너저분한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뭘.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들 하잖아.’ 

‘그 말 대로군.’ 


우리는 다시 조금 웃었다. 뇌의 다른 부분이 활성화되며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에게 더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야? 너한테는 우리의 모든 과거가 찰나의 기억으로 느끼게 할 만큼 방대한 시간이 주어질 거야. 어쩌면 무한한 시간일지도 몰라. 그 시간의 흐름에 고통을 희석시켜 간다면 언젠가 평온을 찾을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건 동시에 지금의 고통이 하찮아질 수도 있다는 걸 뜻해. 이 모든 기억들은 끝없이 축적되는 경험정보에 묻혀서 무의미한 정보의 편린이 될지도 몰라. 고통은 괴로운 것이지만 그 아이가 남긴 것이기도 해. 그걸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걸까?’


나의 미러링은 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내 표정이 어떨지는 그의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고통을 잊지 않으려고 몇 년이나 스스로를 채찍질해왔어. 하지만 동시에 거기서 벗어난 삶을 꿈꾸기도 했었지. 모순되지만 인간이 그런 거잖아. 모순되는 생각을 함께 가질 수 있어. 너 역시 그렇다는 걸 확인해서 안심했어. 하지만, 그 모순을 어떻게 풀어갈지는 내 몫이 아니라 네가 할 일이야.’

‘어째서 그렇지?’

‘미안해.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뻤어.’

‘무슨 이야길 하는 거야?’


나의 미러링은 일어서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일단은 그 손을 잡아 줘야 할 것 같았다. 내 손은 건조하고 따뜻하였다. 그 감각 외에는 맞잡은 손을 통해서 어떤 유의미한 정보전달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묵직한 무언가를 주고받은 기분이 들었다.

나와 악수를 마친 그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해 보기도 전에 곧바로 라이프애프터 사의 상담사가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 나타난 사람은 내가 아는 이였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내 머릿속에는 몇 가지 가설이 빠르게 스쳐갔고 그중 하나가 확신과 함께 머리에 남겨졌다. 그러나 모른 척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상담사와 동행한 이는 분명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녀는 경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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