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칸트도 무릎이 아프면 산책을 못한다

09.01 하이델베르크에서

by 이원장

지나온 공간 : 프랑크푸르트 Flixbus 정류장, 하이델베르크 하우프트 거리, 카페(MORO)


하이델베르크행 기차가 여럿 있었지만 요금도 아낄 겸 FlixBus를 예매하였다. 너무 늦게 예약을 알아봐서 기차표가 비쌌던 탓이다. 비행기 예매와 비슷하게, 대부분 유럽이 그렇듯 독일의 기차는 빨리 예매할수록 더 싸다. 다만 환불이 좀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얼마라도 돈이나 아낄 겸 이동수단을 버스로 정했는데, 이것이 심히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닫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당하고도 연착의 나라에서 기차도 아닌 시외버스를 시간 맞춰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호텔을 나서 근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조금 지나 빠른 걸음으로 캐리어를 끌며 인터시티 호텔 바로 뒤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출발 5분 전에 도착했으나 어쩐지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잘못된 장소로 온 게 아닌가 싶어 한참 부산 떨며 이리저리 플랫폼을 잘 찾아온 게 맞나 확인했지만, 그냥 버스가 지연되었을 뿐이었다. 11시 10분 출발 예정이었던 버스는 출발 예정 시간만 계속 밀리면서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간접흡연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근처 정차된 버스 옆을 그늘 삼아 캐리어에 팔을 걸친 채 책을 읽으며 기다렸는데 어느새 그늘이 돼주던 버스마저 출발해버렸다. 주변에 그늘이라곤 흡연자들이 재떨이 삼아 점령한 벽가뿐이었다. 책을 덮고 옆에 계신 한국인 형님들께 말을 걸어 독일 교통 시스템에 대한 뒷담이 섞인 담소를 잠깐 나눴다. 사업차 프랑크푸르트에 두 분이서 함께 오셨다고 했다. 잠깐 시간이 비어 하이델베르크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려는데 이 사달이 난 거라고 하셨다. 이 날 연착이 한 시간 넘게 되었는데, 당일치기를 어떻게 하셨을지 모르겠다.



캐리어를 실으면서도 못미더웠다 사실. 누가 가져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12시 10분이 좀 넘어 바뀐 플랫폼으로 버스가 천천히 들어왔다. 여권과 표를 준비해 줄을 기다리는데 앞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대강 상황을 보니 신분증이 없는 한 남성이 검표원의 제지에도 그냥 버스에 올라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덩치 큰 제복 보안팀 두 명이 출동해 그를 버스에서 끌어내렸다. 자잘한 소동 끝에 캐리어를 넣고 버스에 반쯤 기대 누워 출발을 기다리다 앞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간을 보니 12시 30분. 생각보다 출발이 한 시간 반이 늦었다. 그래도 덩치 큰 독일인들이라 그런지 자리는 널찍해 몸에 맞아 좋았다. 여러모로 재평가되는 ‘빨리빨리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떠올렸다. 가는 길은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했다. 늦은 만큼 버스가 바삐 움직여주길 바라면서 기다리며 읽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마저 이었다.



“두목 말씀이 옳은지도 모르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현명한 솔로몬 대왕도 어쩌지 못한 경우가……. 봅시다, 어느 날 나는 조그만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아흔을 넘긴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삐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아니,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부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란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제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살고 있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어째 꼼짝 못 하시겠지?”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도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러나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이윤기 옮김 -


나는 조르바보다 사상을 패는 도끼 같은 책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나는 책에서 ‘나’를 참 닮았고, 될 수 없는 조르바를 동경했다.



하이델베르크.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성 높은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위치한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 도시 곳곳에 퍼져있는 캠퍼스를 다니는 대학생들이 인구의 30% 가까이를 차지해 대학의 도시로 불리며, '철학자의 길'을 걸었던 베버, 헤겔, 괴테 등 유명 문인과 철학자들이 모여 사상을 나누었던 철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지정 '문학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유럽 분자생물연구소와 막스플랑크 연구소 4개가 있는 수준 높은 독일 과학의 중심지이기도 하니, 철학/문학/생물학/물리학 등 문이과가 통섭된 모자람 없는 지성의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높은 지대에 오르면 네카어 강이 흐르는 주위로 야트막한 곡선을 이루는 짙푸른 산능선과 폐허가 되어 인공에서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보인다. 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과 역사가 한데 어우러진 도시라는 표현이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가슴에 와 닿는다. 풍경을 가로지르고 배회하는 카를 테오도어 다리와 철학자의 길을 조용히 걸으면 누구나 철학가, 풍경 화가, 시인,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수필가를 꿈꿀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참고로 여러 방송을 포함해 '철학자의 길'을 칸트가 걸었다는 낭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칸트는 평생을 자신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현재는 독일령)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열몇 페이지쯤 읽고 의자를 뒤로 젖혀 좀 쉬고 있자 내릴 시간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하이델베르크 성 바로 아래 있는 숙소까지는 꽤 멀었다. 걸어서 23분. 우버를 부르자니 5-10분 거리에 가격이 비쌌고,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멀어 버스를 타기도 애매했다. 숙소로 가는 길은 시내 중심가이자 관광지가 몰려있는 하우프트(Haupt) 거리를 일자로 15분 걸어야 한다고 나와있었다. 꽤나 커다란 캐리어와 백팩이 있었지만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차려 신은 구두도 별 개의치 않았다. 그 작은 무심한 오만이 불러온 나비 효과는 생각지도 못한 채.


하우프트 거리의 초입은 서양식 고풍을 조금 끼얹긴 했지만 한국의 명동 거리와 상당히 흡사했다. 각종 대형 의류 브랜드 매장과 휴대폰, 기념품 상점이 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걷자 식당과 카페 거리가 나왔다. 날씨가 좋으니 밖에 깔린 식탁과 의자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유럽에서 보고 싶어 하는 돌길과 낡은 석조 건물이 깔린 거리, 밖에 나와 낮에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차가운 현대 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선 찾기 힘들었던 따뜻하고 유서 깊은 분위기가 묻어 나왔다.

하이델베르크 하우프트 거리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데, 어떤 한 발걸음에서 왼쪽 무릎의 <툭>하는 느낌과 함께 불편함을 감지했다. 자기 자신의 몸은, 특히 자주 다쳐본 사람들은 그 예민한 감각을 안다. 이 통증이 일시적인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힐지. 아무래도 내 느낌은 후자였다. 딱딱하고 울퉁불퉁하여 캐리어를 끌기도 힘든 낡은 돌길은 이곳저곳 쑤셔 돌아다니고 3일 동안 헬스를 하고 러닝을 하고 트레킹을 하며 버틴 무릎에 더 큰 충격을 가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이 걸어야 할 날에 구두까지 신고 온 아둔한 나 자신을 탓했다. 이 불편함을 무시하면 나는 곧 통증을 느끼는 상태로 전환된다. 더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숙소로 가야만 했다. 최대한 오른 무릎으로 체중을 실어 걸으며, 가는 길에 있는 마트에서 점심으로 해 먹을 요리 재료를 샀다.


유럽 여행을 다닐 때면 높은 외식 물가 때문에 제대로 균형 잡힌 식사를 챙겨 먹기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고기는 더 가격이 비싸 엄두도 못 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 숙소에서 요리해먹는 걸 시도해봐도 좋다. 외식과 장바구니 물가가 큰 차이가 안 나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해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넓은 땅덩이에서 자급자족하는 먹거리 생태계를 구축해 방목형 축산을 추구하기 때문에 신선하고 질이 좋다. 또 여행자들에게 더욱 편리한 점은 정육점에서 각자의 레시피대로 시즈닝 한 고기 종류가 많다는 점이다. 시즈닝 한 소고기 등심, 속에 버섯을 채워 돌돌 말아둔 돼지 안심, 야채와 고기를 끼워 만든 꼬치 등 그램 수에 맞게 사서 별도의 양념을 살 필요 없이 숙소에서 굽기만 하면 된다. 이날 나는 파프리카, 후추, 소금, 파슬리로 시즈닝 된 이베리코 목살 스테이크와 올리브 절임 조금, 요리에 곁들여 마실 맥주(Heidelberger helles, 하이델베르크 지역 라거)를 한 병 샀다. 2유로쯤 했던 납작복숭아도 한 팩 넣어 빠지는 것 없이 샀다.


숙소는 롯데 백팩커스(Lotte Bagpackers)로 이름 지어진 호스텔로, 4인실 도미토리에 예약을 해뒀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푸니쿨라) 승강장 바로 옆에 있고 여러 관광지를 도보로 다니기 용이한 위치가 장점이었다. 참고로 호스텔 이름은 한국 기업 롯데와는 아무 연관이 없고, 그냥 이름만 같을 뿐이란다. 한국 여행객들이 하도 많이 물어본 탓인지 리셉션 데스크 옆 벽에 ‘호스텔 이름의 유래’라고 제목이 써진 안내문이 붙어있고 한국 기업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둘 다 우연의 일치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이름을 따온 듯했다. 변요한과 존 레넌이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인 것과 비슷하겠지(둘 다 성경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John)에서 이름을 따왔다).


체크인 후 1층 남성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2층으로 올라가 늦은 점심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테이크 하기 좋은 스테인리스 팬과 고기 집게는 물론 식용유와 각종 향신료들이 갖춰져 있어 요리는 수월했다. 그때 시각은 거의 3시. 고기를 뒤집으며 원래 하려던 오늘 계획과, 이제 그걸 뒤집어야 하는 무릎 상태를 생각했다.


밥을 먹고 준비를 해서 나가면 4시쯤 될 테고, 숙소 5분 거리에 있는 광장에 나가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며 글을 써야겠다. 5-6시쯤 되어 숙소에 짐을 두고, 강 건너 헤겔이 걸었다는 철학자의 길을 거닐으며 뭣도 안 되는 사색을 해봐야지. 아마 사람은 많을 테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봐보자. 지대가 높은 곳으로 이동하면 하이델베르크 성과 시내가 강과 함께 펼쳐질 거야. 해가 질 때쯤 거기에 도착하게 천천히 걸어가자. 그저 흔들리던 물결이 붉은빛을 받아 고갱의 타이티 그림 같은 일렁임이 된다면, 그 위로 하이델베르크 성이 떠오르며 가슴을 일렁일 거야. 내 입은 곁에 누가 있건 없건 살포시 비틀어져 열리고 와-라고 뱉겠지. 그 음성의 크기는 내 귀에만 들릴 테지만 그건 분명 외침이야. 외침이고 말고. 스치는 모든 것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감탄하자. 조르바, 그래, 조르바처럼.



저 망상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잘 구워진 고기를 씹으니 고소한 육즙이 나와 볼과 입천장을 적시고 혀밑에선 침이 흘러나왔다. 병맥주를 수저로 따 꿀꺽꿀꺽 두 모금을 연달아 마시니 벌써 반이 줄어있었다. 그래, 이럴 땐 바이젠이고, 에일이고, 시원한 라거가 최고다, 최고. 두 덩이 넉넉히 사둔 고기에 올리브를 올려 반쯤 먹어 치우고 있자니 잠시 아픔이 잊혔다.




“시장하지 않으시다……. 하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들지 않았어요?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이윤기 옮김 -


아무래도 철학은 아픈 몸으로 하기 힘들 터였다. 고기와 맥주로 쉽사리 표정이 밝아진 얄궂은 몸뚱이는, 몇 번의 무리한 무릎 사용으로 또 침체될 것이 뻔했다. 육체를 충분히 먹였지만 다시 그를 괴롭힐 수 없었다. 아픔이 심해지면 내 영혼을 팽개치고 사색은 무슨, 시름에만 잠길 테니. 오늘은 몸을 쉬어 주기로 했다. 밥을 먹고 잠시 누워 다리 부기를 빼고, 철학자의 길을 생략한 채 근처 광장 카페에 잠깐 앉아있다 들어오는 걸로 계획을 변경했다. 최대한 덜 걷고, 그렇지만 이곳의 공기는 느끼고 싶었다.


광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학과 관광 도시다운 설렘 섞인 활기가 넘쳤다. 마르크스 광장을 조금 지나오는 길에 눈여겨본 카페에 들어섰다. 유럽에선 보통 식당이 커피를 함께 팔며 카페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음식을 하지 않고 정말 ‘커피’만 하는, 한국인이 알고 있는 바로 그런 카페였다. 규모가 좀 작긴 해도 내부에는 바처럼 스탠딩 테이블도 있고 로스팅한 원두를 파는 등 전문성이 느껴져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보통 카페를 오면 라테 마끼아또를 먹지만 이 날은 시원하게 들이켜고 싶어 샤케라또(Shakerato)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샷을 얼음이 담긴 셰이커에 붓고 취향에 따라 설탕을 넣은 후, 칵테일처럼 잔뜩 흔들어 내 얼음은 거르고 커피를 따라내 주는 음료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가장 가깝긴 하지만 쉐이킹으로 올라온 거품과 공기방울이 첫 모금의 감촉을 부드럽게 해 주고, 또 마냥 물을 부어버린 음료는 아니기 때문에 훨씬 진하다. 바리스타 아저씨가 바텐더처럼 절도 있게 코블러 셰이커를 고정하고 차각차각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흔들기 시작했다. 잔에 담아준 샤케라또를 받아 바로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부드럽고 향을 잃진 않았지만 시원하여 꿀떡꿀떡 넘어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이었다. 한국어 하나 안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Cafe Moro

저녁 즈음이 되자 가게를 정리하는 게 눈에 보였다. 천천히 일어나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호스텔 숙소 2층은 요리할 수 있는 주방과 그 옆에 밥 먹을 공간을 겸하는 친목 공간이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 그대로 맥북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없어 소파에 앉아 주방에서 내린 라테를 마시며 글을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로 떠드는 소리가 들리며 2층으로 두 사람이 더 올라왔다. 그들은 딱히 맛있어 보이진 않는 파스타를 대강 만들어 먹었다. 그 사이 한 명이 더 올라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해 넷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한쪽 벽에는 큰 세계 지도가 있고, 각 지역별로 핀들이 하나씩 꽂혀있었다. 핀은 지금껏 다녀간 여행객들이 자기 고향 위치를 표시하며 꽂아둔 거라고 했다. 우리는 한 명씩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말하며 핀을 지도에 꽂았다. 아마 아직 한국에 내 핀이 하나 꽂혀있을 것이다. 미국, 벨기에, 칠레. 태어나서 벨기에와 칠레 사람은 난생처음 만나보았다. 그들도 내가 첫 한국인이었을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미국에서 온 사람이 자기도 한국으로 잠시 교환 학생을 온 적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가 교환학생을 온 곳은 나와 같은 대학교였다. 새삼스레 다시 한번 착하게 살아야 함을 느꼈다. 언제 어디서 인연이 겹치는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


각자 하이델베르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묻고, 이 도시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칠레에서 온 사람은 세계 여행 중에 잠시 들려 쉬면서 구경하는 중이라 하였고, 미국에서 온 사람은 자기 친구가 독일에서 결혼을 하기에 그전에 미리 와서 몇몇 도시를 둘러보는 중이라 했다. 둘 다 도시가 나쁘지 않다고 했고, 나는 무릎이 안 좋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고풍스러운 유럽 풍경이라 여행 온 느낌이 확실히 들어 좋다고 했다. 벨기에에서 온 남자는 이곳이 참 지루한 동네라고 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그냥 줄지어 있고 돌길에, 광장 테이블에 앉아 맥주나 마시는(듣고 보니 그의 말도 맞았다) 게 뭐 별 거 있냐는 말을 했다. 이런 건 유럽 어딜 가나 있는 풍경이라면서, 자기는 베를린에서 노는 것이 좋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의 말도 맞았다. 그는 나고 자라면서 본 게 한적한 돌 건물이 늘어진 유럽 마을 풍경일 테니까. 경주 한옥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경복궁을 보러 와봤자 뭐 얼마나 큰 색다름과 경이를 느끼겠나. 차라리 서울 이태원에 가서 삐까뻔쩍한 술집과 클럽에 가는 것이 더 커다란 경험이겠지.


그렇게 두세 시간을 소파에 앉아 떠들었다. 나야 숙소에서 쉬어야 하는 날이니 오히려 좋았는데, 이 사람들은 왜 이 좋은 날, 좋은 도시에서 나가서 구경하며 놀질 않고 이 좁은 데에서 더듬더듬 영어 하는 나와 이야기하는지가 사실 이해가지 않았다. 아무리 여유 있게 다닌다고 해도 흐르는 남의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내가 한국인은 맞구나 싶었다. 9시가 다 되자 벨기에 남자가 다 같이 나가서 피자에 맥주나 먹자고 했지만, 나머지 둘이 좀 떨떠름한 눈치였다. 나도 그가 둘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느낌은 아니라 무릎 핑계를 대고 좀 쉬겠다고 했다.


글을 마저 쓰다 10시쯤 되니 배가 고파 근처에 나가 치킨 커리를 하나 포장해왔다. 포장하러 가는 조용한 거리 사이사이에 알음알음 야외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뒷골목이 많았다.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어난 앳된 대학생들이 앉아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대학교가 많다더니 개강총회라도 하는 걸까. 물론 그런 게 독일에 있을 리가 없겠지만. 늦게까지 여는 집이 몇 곳 없어 사 온 음식이었지만 배가 고파 그런지 맛있게 먹었다. 아까 사둔 납작복숭아로 입가심을 하고 샤워를 했다. 물기가 덜 닦여 윗옷을 반쯤 걸치고 나왔는데 처음 보는 여자 숙박객이 양치를 하다 거울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유럽인도 이럴 때 민망함을 느낄까. 아무리 샤워 부스가 있다 해도 샤워실이 남녀 공용인 건 참 적응이 안 된다.


방으로 돌아오니 다들 어디로 갔는지 고요하고 혼자였다. 다른 사람은 당일치기로도 다녀온다는 하이델베르크인데 1박을 하고도 별로 한 게 없었다. 정리할 사진도 몇 없어 금세 잠들었다. 내일은 무릎이 좀 덜 아프길 바라며, 그래서 영혼의 눈이 반짝일 수 있길 바라며.


셋째 날, 고풍 속에 싱그러운 활기가 넘치는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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