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왜 서양인은 말싸움을 할까

09.02 하이델베르크에서

by 이원장

지나온 공간 : 호스텔(롯데 백패커스), 하이델베르크 고성, 대형 식료품 마트(Tegut)


일찍 잠든 덕인지 생각보다 일찍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무릎 상태도 체크할 겸 뒤편 오르막길을 산책하고 아침 거리를 사 오기로 했다. 머리를 감을 것도 없이 후드 모자를 훌렁 덮어쓰고 재빠르게 길을 나섰다.


숙소 뒤편 오르막길은 하이델베르크 고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볍게 정찰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어 둘러보았다. 덥지 않고 청량한 하늘이 좋았다. 수백 년은 되었을 벽을 손으로 만지며 올라갔다. 뒤덮인 담쟁이덩굴에 따라오는 손가락이 살포시 걸렸다. 무릎은 여전히 통증으로 삐걱댔다. 아무래도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발걸음을 이내 돌리고 일찍 문을 여는 마트로 가서 아침 장을 봤다.

숙소 뒤편, 고성을 향해 오르는 길



하이델베르트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 대학도시답게 종교 개혁의 중심지였던 하이델베르크. 현재는 이곳에서 구교 신교가 함께 미사를 본다


아침 7시에 구시가지를 돌아보니 어제의 부산함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어제 기념품 판매대부터 야외 테이블에 사람이 깔려있던 하이델베르크 성령 교회(Heiliggeistkirche) 앞은 사람 하나 없이 비둘기 몇 마리만 찬바닥에 배를 깔고 앉아있었다. 관광객이 몰려있을 철학자의 길이나 카를 테오도어 다리 대신 이 시간에 여기를 걷는 것도 사상을 만들기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조용히 정돈된 텅 빈 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여행지에서의 아침 산책은 복잡했던 묵은 생각은 풀어 흩트리고 전에 없던 신선한 생각을 샘솟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아침으로는 돈마호크(돼지 갈비뼈에 등심이 붙어 나오는 부위)를 한 덩이 사서 들어왔다. 파슬리와 소금, 후추, 로즈마리로 시즈닝을 하고 기름을 둘러 적절히 구웠다. 투숙객에게 무료 제공되는 커피를 한잔 내려 우유와 섞어 라테를 만들고 어제 남은 납작복숭아와 함께 먹었다. 힘이 나고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하루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샤워 후 머리를 매만지고 청색 데님 셔츠와 베이지 치노 팬츠를 꺼내 입었다. 정갈한 아침을 보낸 만큼 매무새를 깔끔히 했다. 아무도 보여줄 사람이 없더라도 이런 옷차림으로 일정을 시작하면 마음가짐부터 말쑥해진다. 오늘은 그래도 남의 나라 유적지를 가는 날이니 너무 후줄근히 가지는 말아야지. 이날 갈 곳은 하이델베르크 고성, 숙소 옆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경사진 모노레일 같은 푸니쿨라는 3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매우 천천히 올라갔다. 참고로 비용이 걱정이라면 성 입장료에 푸니쿨라 이용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그냥 타도 괜찮다. 물론 직접 걸어 올라가며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도보로 가는 게 최고겠지만. 어느 블로그에 보니 도보로 오르막을 좀 오르면 표 없이도 그냥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고 적혀있기도 했는데 확실하진 않다. 나는 올라오는 건 도보로 하고 내려올 땐 푸니쿨라를 타려 했으나, 역시 무릎 상태 때문에 오르내릴 때 모두 푸니쿨라를 이용했다.



먼 거리에서 보았을 때는 푸른 강 위 녹음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붉은 성으로 느껴졌던 하이델베르크 성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인생 명제처럼 실제가 멀리서 보았던 환상만 못했다. 특히 표를 내고 들어가는 성 내부는 더욱 그랬다. 내부를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크게 덩어리 째 분리되어 떨어진 채로 남아 있는 성 외벽을 구경할 수 있고, 조금 지나 그 옆 작은 잔디 공원에서 흐르는 네카어 강을 비롯한 하이델베르크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다시 여기에 온다면 성 내부로 들어가는 대신 직접 걸어올라와 공원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싶다. 흐르는 네카우 강과 세월에 폐허가 되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는 성벽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안주 삼아 한 병을 비울 것이다.

갈라진 성 일부와 옆 공원. 표 없이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도 이왕 표를 끊었으니 짧은 공중 다리를 건너 성 내부로 들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와인 캐스크(오크통)와 약국 박물관이 있어 구경했지만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그보다 고성 안의 건물을 실제 업무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 근정전까지는 못 되더라도 궁녀들의 방 내부를 개조해 컴퓨터와 책상을 놔두고 사무실로 쓰고 있는 격이니까. 몇백 년 된 석조 건물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게 아직까지 거주용으로 쓰는 서유럽이니 성 유적지마저 생활사무공간으로 사용하는 게 우리보단 친숙하겠다 싶었다.


다리를 건너 들어온 방향 그대로 쭉 내부로 들어가자 성의 커다란 베란다가 나왔다. 가리는 시야 없이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와 멀리 신도심, 네카어 강과 카를 테오도어 다리, 철학자의 길이 있을 얕은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인증샷을 많이 찍는 장소로 보였다. 보기뿐만 아니라 머물기에도 좋았다. 커플부터 가족, 노부부와 친구들, 다양한 사람들이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보며 길고 차가운 돌의자에 앉았다. 저녁에 더 심해지긴 했지만 여행 중 이날이 가장 외로움을 많이 탄 날이지 싶다. 몸도 성치 않으니 괜스레 더 서러웠다.

내려다 본 하이델베르크 전경. 중간에 카를 테오도어 다리가 보인다.


사진을 하나 남겨야겠다 싶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누구에게 부탁할지 고민했다. 멀리 하얀 피부에 안경을 쓰고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함께 온 할머니를 사진 찍어주고 있었다. 슬그머니 그쪽으로 가 사진을 부탁하려는 찰나, 대뜸 그녀가 먼저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나도 넉살 좋게 ‘I’m Korea famous Photographer’라고 농담하며 포즈를 잡아주고 여러 장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도 그녀에게 내 사진을 부탁했다. 결과물은 태어나서 외국인이 찍어준 사진 중 최고였다. 인위적인 각도로 좋은 비율과 선을 만들려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웃음 짓는 표정을 찍어내 사진에 순간의 행복을 담아주었다. 그녀의 할머니께서는 조금 떨어져서 혼자 경치를 감상하고 계셨다. 우린 잠시 멈춰 서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전 마음에 드는 걸요

“By the way, Where are you from?(그건 그렇고, 어디에서 오셨어요?)”


둥글고 뭉게뭉게한 발음으로 그녀가 물었고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대학생이었는데(외국인들 나이 가늠은 여전히 모르겠다), 마침 자기도 머잖아 서울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 그래 서울은 참 여행하기 좋은 곳이죠.


예상대로 그녀는 프랑스인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여기저기를 여행 다니는 중이라고 했쓰고. 나도 마침 독일을 돌고 나면 파리로 가 열흘 이상을 머무를 예정이라, 며칠 뒤면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탄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반색하며 자신이 파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녀는 유창하진 않지만 우아한 영어로 덧붙였다.


“괜찮으면 내가 파리에서 다닐 만한 곳을 메일로 알려줄게요, 시간 맞으면 내가 가이드를 해줄 수도 있어요!”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는 경우가 또 찾아올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디서 그런 소심함이 발휘되었는지, ‘호의는 괜찮지만 친구와 같이 다닐 예정’이라는 말로 거절해버렸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 오케이, 하고는 여행 잘 다니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이내 때늦은 후회가 떨구고 나서 딴 병맥주의 거품처럼 한 템포 늦게 솟구치기 시작했다. 계속 영어로 말을 쓰다 보니 잠시 인지부조화라도 왔던 것일까? 그 순간의 나는 왜 그런 거절을 했던 건지. 메일로 맛집 추천이라도 받아둘 걸, 만약 파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면 어땠을까 - 갖은 생각을 했지만 이제 와 어쩔 도리가 없다. 굴러온 복을 발로 걷어찬,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실수로 마스크를 잃어버려 살짝 곤욕을 치렀다. 안내실에서 푸니쿨라를 타려면 마스크를 써야한다며 나를 제지 했는데, 그냥 주지 않고 구매를 해야 했다. 한 장 가격이 무려 2유로에 달했다.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정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숙소로 오니 12시, 체크아웃 시간이 살짝 넘었었다. 다음 행선지인 슈투트가르트로 떠나는 기차는 오후 2시 30분 출발로 시간이 조금 애매하게 남았었다. 안내 데스크에 양해를 구해 2층 소파에 조금 앉아 있다 떠나기로 했다. 2층에 올라가니 어제 본 미국인과 다른 여자 외국인 한 명이 더 있었다.


새로 본 그녀는 독일인이고 함부르크 근처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눈이 반짝거리더니 자기는 한국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당연히 BTS가 나오려나 했는데 그녀는 샤이니를 너무 사랑한다면서 ‘누난 너무 예뻐’를 흥얼거렸다. 내가 지금 하이델베르크 호스텔 2층에 있는 것이 맞나? 그 간지러운 노래를 여기서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옆에 있던 미국인은 대뜸 ‘폴킴’ 노래 중 좋아했던 게 있는데 제목이 기억 안 난다고 했다. 나는 신나서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잠깐 불러주며 이 노래가 맞냐고 물었다. 내가 슬쩍 흥얼거려주자 둘 다 “모든 한국인은 가수라더니 정말이구나!” 웃으며 너스레를 떨어주었다. 이날 따라 여자들이 내게 참 친절했던 것 같다.


샤이니를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 최애는 사실 ‘정지훈’이라고 했다. 비(RAIN)라고 하지 않고 ‘정-지-훈’ 한글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면서. 옆에 있던 미국인이 그게 누구냐고 묻자 유튜브로 공연 영상과 영화 장면들을 찾아 보여주며 신나게 설명하는데,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개봉 연도와 <태양을 피하는 방법>, <안녕이란 말 대신> 등 데뷔 초 노래까지 줄줄 읊는 그녀를 보며 이거 보통 덕후가 아니구나 싶었다. 마무리로 자기가 ‘김성진’이라는 이름의 한국인과 예전에 사귄 적이 있는데 그가 정지훈을 닮았다고 했다.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아직까지 파악할 수가 없다. 전국에 계신 김성진 씨, 혹시라도 샤이니와 비의 팬인 독일 여성과 사귄 적 있다면 진실을 밝혀 주세요.



삼십 분쯤 시간이 흐르자 어제 본 벨기에 남자도 숙소에 도착해서 올라와 함께 대화했다. 밖을 안 돌아다니고 왜 여기 왔냐 물으니 땀을 너무 흘려 샤워를 하러 왔다고 했다. 서양인들은 자주 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대낮에 샤워를 하러 돌아온 그가 깔끔한 사람인 건지 아니면 땀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흘린 건지 궁금했다. 그들 덕에 기차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심심하진 않았다.


생각지 못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벨기에 남자가 내게 '철학자의 길'을 다녀왔냐고 물었다. 원래 가려했는데 무릎이 아파 못 갔다고 대답해주자, 그가 안 가기를 잘했다는 것이었다. 왜냐고 묻자 그는,

"체크인 해주는 사람(엠마)한테 거기가 힘든 길이냐고 물었는데 그냥 가볍게 걷는 정도(trekking)이라고 했거든, 근데 다녀왔더니 너무 힘들었어. 그건 등산(hiking)이야."라고 답했다.

거기까지면 괜찮았을텐데 그는 덧붙여 "엠마는 트레킹과 하이킹의 뜻을 모르는 게 틀림없어."라고 중얼거렸다. 내 귀만 귀였다면 한 외국 투덜이의 불만을 들어준 것으로 넘어갈 수 있었겠으나 문제는 주방을 정리하던 엠마, 즉 뒷담의 당사자가 그 말을 들었다는 데에 있었다.


자기가 언급되는 말에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냐만은, 그 둘의 언쟁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포인트가 있었다. 그들은 상대를 비난한 잘못을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그 길이 등산(Hiking)인지 트레킹(Trekking)인지에 대해 언쟁을 벌였다. 별것도 아닌 일에 점점 그 강도가 세지더니,


"아냐, 그 정도면 Trekking이지? 네가 평소에 운동을 안 하기(Not atheletic person) 때문이 아닐까?"

"무슨! 난 주말마다 사이클도 타는 남자라고. 그렇지만 그건 분명 Hiking이었어.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서 오자마자 샤워를 했다고. Trekking이 무슨 뜻인지는 아니?"

"물론 알고말고, 나는 전에 초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한 적도 있어. 그 정도는 어린애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닐 길인데, 하여간 엄살은."

"오, 그래? 정말 그 어린이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네. Hiking과 Trekking도 구분 못하는 선생한테 배웠다니 말이야."


가만 듣고 있자니 이게 초면인 사이에 이렇게 까지 언성을 높일 일인가 싶었다. 한국이었다면 한쪽이 그냥 져주거나, 속으로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우, 제가 잘못 생각했나 봅니다.' 하고 넘어갔을 일인데 말이다.



얼핏 서양인들은 겉과 속을 다르게 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제대로 표명하는 문화라고 읽은 것이 생각났다. 이들은 한국처럼 두루뭉술하게 돌려 말하거나 뭉개버리지 않고 자리나 관계에 상관없이 자기 생각이 있다면 이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한국에서도 이를 몸소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하루는 친하게 지내는 형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날이었다. 참고로 그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생활했다. 보통은 밤늦게라도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날은 소주부터 시작해 위스키까지 워낙 많이 마시기도 했고 밤이 너무 깊어져 자연스레 그 형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 형은 잠깐 별말이 없더니 그러라고 하며 소파에 이불과 베개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부자리를 다 펴고 누워 잘 준비를 하는데 뜬금없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다가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짚어가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OO아, 오늘은 일단 이렇게 자는데 네가 여기서 자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진지한 태도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때는 자연스레 “그럼 당연하지~ 갑자기 이렇게 됐는데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고 상황을 넘겼다. 나중에 그 형과 다시 술 마실 일이 있을 때 이 일을 언급하며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신기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꾸준히 해온 토론 문화가 이러한 행동과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그 순간에도 할 말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말을 했다고 한다.

미국은 술자리를 비롯한 모임에 나가게 됐을 때도 먼저 나서서 자기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로 그냥 묻혀버리는 문화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조용히 있는 사람에게 굳이 상냥하게 질문을 해주며 말할 기회를 부여해주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과묵한 게 아니라 그닥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비친다. 그러한 문화가 확실히 짚을 건 짚고 말할 건 말하는 성격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얼마 전 바에서 외국인을 만나 대화를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주문한 칵테일이 조금 잘못 나와서 바텐더에게 다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옆자리 외국인에게는 스쳐가는 말로 내가 실수했을 수도 있는데 괜히 두 번 만들게 하는 것 같아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러자 내내 웃으며 나랑 이야기하던 그가 갑자기 <겟아웃>에 등장하는 흑인 하녀처럼 고개를 가로저으며 ‘No, No, No,NO-NO-NO’를 반복하더니, 꽤나 진지한 얼굴로 “절대 그런 생각 가질 필요 없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주문한 음식이 바뀌어 나와도 미안함과 귀찮음에 대충 먹어버리는 경우가 좀 있는데, 서양권에선 어림도 없을 듯하다. 더 비싸고 좋은 메뉴라고 해도 말이다.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행동해야 하니까. 나는 바텐더를 무시하거나 모욕한 것이 아니고, 그의 잘못된 행동을 짚어주고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린 것뿐이다. 바텐더 또한 내 비판이 그를 향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향해있기 때문에 기분 상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를 제대로 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로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서양 문화가 형성되는 데에는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서양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이 큰 기초 자산이 되었으리라 생각을 한다. 서양 문화에서는 상급자, 선생님, 혹은 친한 친구가 너무 좋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해도 그가 하는 말과 생각은 그 사람과 별개이기 때문에 반박을 하거나 짚고 넘어가도 괜찮다. 이에 반해 일원론적 사고를 지닌 한중일의 동양 문화는 나의 말과 생각, 몸이 하나의 뭉쳐진 존재라는 인식이 있어 상급자의 말을 반박하는 행위를 그의 권위를 향한 도전으로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충효로 대표되는 복종의 개념이 나오게 된다. 머리를 맞대고 최적의 결정을 내려야 할 기업에서조차 수직적 지시 관계가 일반적이고, 팀원 모두가 부장님의 ‘그거 좋네’를 말하는 입만 바라보는 게 전형적인 회의 풍경이다. 현대의 기업까지 충효에 기반을 둔 복종 문화가 있는 게 과연 발전하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일까?


한국 사람들이 언쟁을 나쁘다 생각하고 토론을 기피하는 것은, 견해를 반박하는 행위를 사람의 정체성과 인성을 무시하는 행위로 확대 해석하기 때문이다. 주장은 주장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주장이 공격당하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니 사실 기반으로 정숙하게 묻고 답해야 할 청문회 자리에서조차 조금 막힌다 싶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닐까. 점심시간에 정치 사안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던 이들도 조금 의견이 충돌한다 싶으면 얼굴을 붉히고 서로를 향한 한숨을 내뱉는다. 오죽하면 정치와 종교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격언이 있을까.


프랑스를 비롯해 토론 문화가 강한 나라는 대낮 커피숍에서도 일상적으로 소리를 높여가며 언쟁을 한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논리를 펼치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반박한다. 그리고 자리를 일어날 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오늘 날씨가 참 좋단 얘기를 한다. 한국 사람이 얼핏 보고 ‘너네 왜 싸워?’라고 물으면 ‘우리가 언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들이 넘길 건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넘길 건 그냥 뭉개고 넘겨버리는 사회가 된 것은, 그러지 않으면 서로 얼굴을 붉히기 때문이다. 내 의견에 반박하는 걸 내 얼굴에 침을 뱉는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나와 다른 견해를 말하는 사람과 공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건전한 토론 문화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선 너무 부족한 자질이기도 하다. 매사에 논쟁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가끔은 피곤할 때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기는 태도가 알맞은 상황도 물론 많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논쟁이 필요할 때조차 이러한 태도가 나오는 건 문제다. 정작 토론에서 이겨야 할 때는 사실 기반으로 논리에 입각해 주장을 펼치고 수긍하는 태도로 임하는 게 아니라, 주장이 아닌 사람과 싸우려고 든다. 나와 다른 의견을 묵살하려다 못해, 견해를 넘어 사람을 미워하고 또 매장시키려 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나. 사람은 사람이고 의견은 의견일 텐데, 미워하는 사람의 의견이라면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증오가 정치에 이용되고 네거티브가 가장 효과적인 선거 운동이 된 현상에는 이러한 문화도 지분이 있지 않을까. 볼테르의 선언이 조금은 경종을 울리길 기대하며, 마음에 와닿은 홍세화 씨의 글을 첨부한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
내가 반대하는 견해를 죽이려고 끝까지 싸우는 게 아니라 그 견해가 지켜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선언은, 내가 반대하는 견해를 죽이려고 애쓰는 한국 사회에게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합니다. 볼테르는 이렇게 답합니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고. 즉, 서로 다른 견해가 자유롭게 표현되어 부딪칠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견해를, 다르다는 이유로 없애려고 하는 것은 내 견해의 옳음을 밝히기 위해서도 옳지 못한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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