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09.03 슈투트가르트에서

by 이원장

지나온 공간 :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슐로스 광장의 슈투트가르트 와인마을 축제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낯선 이들이 마을에 들어서면 꼭 자기 집에 초대를 했던 ‘나’의 외조부 이야기가 나온다.

크레타 섬의 꽤 큰 마을에 사시던 내 외조부에겐 매일 저녁 등불을 들고 거리를 다니면서 혹 갓 도착한 나그네가 없나 찾아보는 버릇이 있었다.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는 안락의자에 앉아 길쭉한 터키식 장죽에 불을 붙이고는 나그네를 내려다보며 지엄한 분부를 내리는 것이었다.

“말하소!”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영감님?” “

“자네 직업이 무엇이며, 자네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자네가 본 도시와 마을이 무엇 무엇인지 깡그리, 그렇지, 깡그리 이야기해 주게. 자, 알을 해보소.”

이렇게 되면 나그네는 있는 말 없는 말, 겪은 일 안 겪은 일을 되는 대로 주섬주섬 주워섬겼고, 우리 외조부는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장죽을 문 채 귀를 기울이며 이 나그네를 따라 여행길로 나서는 것이었다. ……… 할아버지는 마을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 칸디아나 카네아에도 가보신 적이 없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왜 그 먼 곳까지 가? 이곳을 지나가는 칸디아나 카네아 사람들이 있어서 칸디아와 카네아가 내게 오는 셈인데, 내 뭣하러 거기까지 가?"


독일에서 다섯째 날 아침, 나는 나와 다르게 살아온 두 명의 나그네와 하루를 보냈다.




아침 8시쯤 일찍 깨어나 호스텔 조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직감적으로 한국인임을 알 수 있는, 장기 투숙객 포스를 풍기는 하얀 피부의 동양인 한 명이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한국인과 대화할 생각에 설레어 무작정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세요?”

“아, 네!”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여행 중이신가 해서.”

“아, 저는 여기로 며칠 전에 유학 왔어요.”

“아, 그러세요? 괜찮으시면 그 테이블로 가도 될까요?”


조식을 먹으며 읽던 책. 삶은 계란이 나와서 8개 쯤 먹었다.

그렇게 머리도 안 감은 채로 어떤 도시를 다녀왔는지, 들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무슨 공부를 하는지, 왜 독일로 유학을 왔는지, 한국에선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 통성명에 가장 중요한 나이와 이름만 쏙 빼놓고선 머리도 안 감은 채 세 시간가량을 그렇게 떠들었다.


마침 특별한 일정이 없다길래 점심부터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술을 좋아한다는 점도 중요한 접점이었다. 오늘의 중요 일정은 와인 축제였으니까.





다른 한 명의 나그네는 온라인 유럽 여행 카페에 동행 글을 통해 연락하여 함께 와인 축제를 가기로 되어있었다. 낮술을 매우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슈투트에서 다른 일정이 있냐고 묻는 말에 ‘그냥 한번쯤 슈투트에 가보고 싶어서 오는 거라 아무 일정 없다’ 는 대답이, 짐이 많으면 내 숙소에 맡아준다는 말에 ‘딱히 짐이 없습니다’ 라는 답장이 왔다. 그 두 마디로 심상치 않은 사람임을 직감했다. 나쁘게 말하면 선입견이지만, 사람이 어찌 자기 경험과 첫인상으로부터 자유로우랴. 게다가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반쯤 썰린 참다랑어 대가리를 원양어선 갑판에서 바라보는 장발 다이버 차림인걸.


조식을 먹으며 유학생 분과 같이 만날 두 번째 나그네가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추측해보았다. 오지 탐험을 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일 것만 같다, 관리하기가 귀찮아서 머리에 펌을 한 것이며 평소엔 머리를 묶고 다니는 장발 남자일 것이다, 등산화와 청바지를 입고 히치하이킹으로 유럽 일주를 다니는 배낭맨일 것이다 등등.


그에 대한 추측은 첫 만남에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단 남자가 아니었고(죄송합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직장을 잡아 일하고 있는 독일 취업 2년 차 여인이었다. 키가 크진 않지만 당차 보이는 느낌에 투어 드 프랑스 선수들이 쓸 법한 오클리 선글라스를 이마에 걸치고서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건 맞았네.’


저녁에 술만 마시면 낮엔 무얼 해도 좋다는 그와 슈투트가르트 첫 번째 일정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Mercedes-Benz Museum)’으로 향했다.

내 제안으로 끼워놓은 자동차 박물관이지만 사실 나는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고 그만큼이나 무지하다. 2년 전쯤 차를 구매할 때 주변 사람들한테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 알고 있는 현행 모델에 대한 지식 전부이고, 세차, 정비, 소모품 관리, 자동차의 구조 -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렸을 적 읽은 ‘자동차가 부릉부릉’에 나왔던 내용의 일부와 퀴즈에 나올 법한 교양 수준의 잡지식이 전부다.


<최초의 자동차 운행은 칼 벤츠의 아내가 프로토타입의 자동차에 아이들을 태워 친정집을 다녀온 사건이고, 중간에 기름이 다 떨어져 약국에서 가솔린과 비슷한 성분인 솔벤트를 사서 넣었기 때문에 기록 상 최초의 주유소는 독일의 한 약국이다>


뭐, 이런 느낌의 잡지식. 그래도 미술관에 큰 감흥이 없다는 분들과 함께하는 일정으로는 아무래도 배경지식과 관심이 필요한 미술 전시보다는 본능을 자극하는 화려함이 있는 자동차 전시장이 더 낫겠다 싶어 이곳을 골랐다. 미술관은 원래 혼자 가는 편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자동차 동아리를 했지만 디자인과 모델은 모르고 기본 구조에만 관심 있는 기계 공학 학사 한 명, 최초의 주유소가 어디인지 묻는 ‘1대 100’ 퀴즈가 나오면 맞힐 자신 있는 남자 하나, 낮술을 하면 왠지 자전거를 몰고 바다로 달려갈 것 같은 여장부 한 명은 지하철을 타고 벤츠 뮤지엄역에 도착했다.


해외 축구 팬들은 알겠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는 도르트문트의 ‘슈투트가르트 FC’의 모구장으로, 벤츠 뮤지엄과 함께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 옆에 붙어있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마침 이 날 샬케 04와 경기가 슈투트가르트 홈구장에서 예정되어있었다. 오는 지하철부터 빨간 유니폼과 파란 유니폼이 대조를 이루며 사람이 붐볐다.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떠들며 오느라 어느새 배가 고파진 우리는 길을 걷다 구단 부지 안에 있는 펍을 발견해 자리에 앉았다. 한마음 한뜻으로 맥주 한 잔씩 하기로 한 것은 물론이다. 그 당시 현지 시각, 해가 중천인 13시였다.


구장 옆에 위치한 식당에선 홈팀인 슈투트가르트의 빨간 유니폼을 입고 앉은 사람이 대다수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보고 주문하려고 보니 맥주(Draft beer) 종류가 메뉴판에 안 적혀 있는 것 아닌가. 종업원을 불러 맥주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 그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필스너(Pilsner)와 바이저(Weisser), 두 종류의 생맥주가 있습니다. 여기에 오는 축구팬들은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따로 맥주 메뉴판을 둘 필요가 없어요, 하하.”


이야, 내가 독일에 오긴 했구나!


주문 실패한 소시지 샐러드(독일 왔으니 소시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킨 메뉴였으나, 절대 시키지 마시라. 매우 신 절인 야채와 얇고 찬 소시지 몇 점을 무쳐낸 메뉴다)에 이러나저러나 맛있는 필스너를 마시며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A의 이야기

A는 고등학생 때 박민우 작가의 <일만 시간 동안의 남미>를 읽고서 세계 여행을 마음먹었다. 진솔하고 '척'하지 않는 문장들이 더 생생하고 꿈같이 다가왔다고 한다. 좀 더 정확하게 그의 말을 옮기자면, 세상 밖으로 '떠나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안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시간이 지나 중국으로 1년 반 간 유학을 떠난 그는, 오랜 꿈이었던 걸어서 구대륙 횡단을 실행에 옮겼다. 동부에서 걸음을 시작하여 중국을 가로질러 중앙아시아, 카스피 해를 건너서 코카서스 3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다니고 아시아의 끝인 터키(튀르키예)까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동유럽으로, 거기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서남부 유럽을 거쳐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희망봉을 보는 것이 최종 목적지였다.


읊기만 해도 숨 가빠지는,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생각나는 이 원대한 계획은 원래 총 2년에 걸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긴 여행에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나머지 그는 아프리카 대륙이 보이는 스페인 해안가에서 아쉬움을 삼키며, 그래도 꽤나 길었던 11개월의 일주를 끝마치게 되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이 진짜 엄청 예뻐요!"

아직 열정이 서려있던 그의 빛나는 눈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는 심신을 달랠 겸 마지막 경유지로 인도네시아와 발리를 택했다. 한 달간 해변을 거닐고 요가를 하며 재충전을 마치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공부를 마쳤다. 대학 졸업 후 짧다면 짧고 아니라면 아닐 회사 생활을 하고 나서 그는 생각했다.


[나는 어떤 가치를 좇고 싶고, 어떤 일과 공부가 그것에 나를 가깝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


역마살을 아직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그는 역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NGO에서 일하며 결국 발을 딛지 못한 아프리카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는 NGO 아프리카 지부에서 일할 때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환경공학을 공부하러 이곳 독일로 유학을 왔다. 이 도시로 온지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삶이 슈투트가르트로 흘러들어 우리를 만났다.




벤츠 박물관의 외관과 내부는 현대적인 설계에 세밀한 마감까지 공들인 모양새였다. 노출 콘크리트와 금속 인테리어를 기본으로 한 미니멀 건축의 평균 완성도는 독일이 가장 높지 않을까. 가장 놀란 의외의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문과 벽의 단차는 없다시피 매끈하게 이어졌고 애플 전자제품 외형처럼 매트한 금속과 특별한 덧마무리 없이도 깔끔히 마감된 콘크리트는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청결하면서 모던한 내부는 물론이다. 핸드 드라이어, 양변기 등 시설은 사용자 입장에서 설계되어 배려가 느껴졌고, 따뜻한 주광색 조명이 자칫 차갑고 냉정한 느낌이 들지도 모를 휑한 공간을 편안하게 채워주었다.

벤츠 뮤지엄의 화장실 문과 벽

식당이나 카페 등, 낯선 장소일수록 화장실은 공간 전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신과 공간을 독단으로 마주하게 되는 곳은 화장실 밖에 없기 때문이다. 괜찮아 보였던 식당에서 밥을 먹다 화장실을 갔는데 너저분해서 실망한 적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낮은, 가장 소외된, 가장 신경을 덜 쓸 법한 공간에도 모던함과 따스함을 부여하며 벤츠 뮤지엄은 시작부터 좋은 인상을 내게 남겼다.


무료로 제공되는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시의 시작점인 7층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날 때 한번 벤츠 뮤지엄의 승강기 운행 장면을 검색해보시라. 기계 문명에 인간미를 가미한 유려한 디자인과 그것의 부드러운 움직임은 대충 오르내릴 목적으로만 만든 느낌이 아니었다.


7층에 내려서 발을 내딛자 처음 본 것은, 놀랍게도 ‘말’이었다. ‘말 없는 마차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내놓은 칼 벤츠의 박물관은 인류의 육상 지도를 넓혀주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최초의 탈것, 말을 향한 존중으로 시작했다.

벤츠의 진짜 올드카


마차와 증기기관을 거쳐 드디어 세 바퀴 달린 최초의 자동차가 나왔다.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만든 1세대 자동차가 나오고, 벤츠의 아내가 최초로 시범 운행한 자동차도 볼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적고는 있지만 자동차라는 사물 그 자체보다는 이런 모든 모델과 프로토 타입을 보존하여 전시한다는 사실이 더 경외감을 자아냈다. 아래로 내려가면 벤츠 회사가 수집가나 고물상에서 아카이브 용도로 구매한 빈티지 모델에는 매입가를 적어놓았다. 구닥다리 차 한 대 가격으로 슈퍼카 이상의 돈을 지불하며 그들이 걸어온 역사를 면밀하고 생동감 있게 전시해놓는 열정이 대단했다. 각 층을 걸을 때도 벽을 손으로 쓸어보며 요철 없는 판판함에 여전한 감탄이 나왔다.



전시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례로 내려가며 연대별로 당시의 상용 모델 및 스포츠카, 콘셉트카를 전시해두었다. 개인적으로는 벤츠의 50년대 클래식 카가 가장 아름다웠다. 요즘 전기차들은 과히 미래지향적으로 디자인하여 차갑고 딱딱한 인상을 주고, 아드레날린을 과시하며 출력을 강조하는 스포츠카들은 기술적인 날렵합과 우렁참을 표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는 따스한 크롬강 감성의 금속 재질을 살리면서 유려한 곡선으로, 필요한 만큼의 크기와 균형 있는 외형을 형성한 1955 벤츠 190SL 같은 디자인이 좋았다. 부드럽지만 힘을 갖춘 맵시였다.


자전거로 비유를 하자면 폭발적인 기능을 담아낸 스피디한 카본로드나 어떤 진흙탕 오르막길도 견뎌낼 것 같은 MTB 대신,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함께 갖춘 클래식 바이크를 일상에서 타고 싶은 것과 같다. 매끈하게 연결된 은색 프레임과 갈색 가죽으로 마감된 핸들과 안장, 왠지 앞에 갈색 바구니가 있거나 뒷 짐받이에 월넛 색상의 나무상자를 실어야 할 것만 같은 자전거. 기능성을 깔끔히 담은 따뜻한 디자인은 시대와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고 아름답다.

1955 Benz 190SL
클래식 바이크 모델 구스타브 28

사실 그 외에 두세 시간은 소요되었을 전시 관람 시간에 비해 특별히 쓸 말이 없다. 차에 관심도 지식도 적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빈약하기도 했고, 영감이 떠오르거나 고찰을 하기보단 화려한 자동차 모델을 보며 ‘이야 므찌네!’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사실 자동차 그 자체보단 전시 층 사이 내리막 복도 벽마다 설치해둔 연도 표가 더 흥미로웠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포스트모더니즘, 히피 반전 문화, 세계화와 환경오염 등 자동차의 발전과 함께 변화하는 독일과 세계의 역사적 상황을 병렬로 비교해두어 많은 생각과 상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맨 아래 기념품 상점도 둘러보았으나 다들 딱히 끌리는 물건이 없어 나왔다. 일단 배가 고팠고, 와인이 급했다.



와인 축제장을 가기 위해 슐리츠 광장(Schlossplatz) 역으로 향했다. 품위와 역사가 느껴지는 문화 시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슐리츠 광장은 과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드는 슈투트가르트의 중심이었다. 청명한 하늘이 초록 잔디밭과 함께 있는 작은 호수(Eckensee)에 비쳤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굳이 축제장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듯 앉아 여럿이서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고 눕고 윗옷을 벗고 춤을 췄으며, 한쪽에선 독일 아저씨들이 비어퐁과 수건 돌리기를 섞어 놓은 듯한 술 게임을 하며 벌칙으로 맥주를 마시고 놀았다. 평온하지만 활기찬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아, 와인이 시급했다.

슐로스 광장. 여행에서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담으로, 포도밭은 보통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소도시에 위치하기 마련이지만 슈투트가르트는 특이하게 도심 중심지와 매우 가까운 곳에 포도밭이 위치해있다. 벤츠 공장과 박물관에서 차로 불과 몇 분만 차를 타면 포도밭이 나타나니, 자동차 공장에서 곧장 포도 마을이 나오는 광경이 낯설게 느껴질 만하다. 남향 경사지에 포도밭이 위치하는 독일 와인 재배지 특성과, 언덕이 많은 분지에 위치한 슈투트가르트의 지형적 특징 때문에 나타난 이색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아침 일찍 벤츠 뮤지엄을 갔다가 와인 밭 길을 가볍게 트래킹 하며 와인 한 병 정도를 비우고, 그 여세를 몰아 그대로 와인 축제장으로 갈 계획이었다. 내 다리가 멀쩡하기만 했다면 말이지. 몇 년간 문제없다가 타국에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무릎이 야속하기만 했다. 설움을 풀 와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행사장엔 당초 예상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요일 개념 없이 다녀서 잊고 있었는데,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북적대는 인파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알아서 이곳저곳을 굴러다닐 수 있었다. 홍대 축제의 학생 주점처럼 임시 가건물치곤 나무로 깔끔하게 지어진 식당 부스를 줄줄이 구경했다. 그릴에 소시지와 고기를 굽는 곳, 프리첼을 걸어둔 안주 플레이트, 치즈와 살라미를 차분히 늘어놓은 유리 진열장이 보였다. 음식이 괜찮아 보이는 곳은 사람이 가득 차 자리가 없었고 가끔씩 보이는 빈자리에도 ‘예약석’ 안내판이 올려져 있었다. 고민하며 괜찮은 자리를 찾느라 자꾸만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마저 아까워진 우리는 일단 한가한 구석 부스로 가 한 잔씩 시켜 앉았다.


제2화 <뤼데스하임> 편에서도 설명했지만, 독일은 맥주의 나라이지만 또한 와인 소비 또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4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와인 소비국이기도 하다. 세계 생산량 10위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자국 생산 와인을 국내에서 거의 다 소진해버려 수출보다 수입을 많이 할 정도.

*독일의 와인 수입량은 세계 1위다 (2021)


모즐, 니헤, 라인가우, 라인헤센, 팔츠 등 독일에도 여러 와인 생산 지역이 있다. 슈투트가르트는 그중 뷔르템부르크 지역으로 분류되어있는데, 화이트 와인을 주로 생산하는 타 지역과 달리 슈페트부르군더(Spatburgunder)로 불리는 피노 누아 품종을 비롯한 레드 와인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위에 적은 알량한 지식 때문에 나는 기어코 레드를 시켜야겠단 마음을 먹었다. 나머지 일행은 첫 잔으로 샤도네이와 리즐링, 화이트를 한 잔씩 시켰지만 나는 와인 리스트에 아는 이름이 별로 없어 서버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내가 보통 선호하는 건 바디감 있는 레드이지만, 첫 잔이고 또 안주 상관없이 간단히 들이킬 생각이라 중간 정도 무게감(Medium body)으로 추천받은 트롤링어(Trollinger) 글라스 한 잔을 주문했다.


글라스가 잔당 7유로에서 10유로 정도로 저렴하진 않았다. 지역 축제를 저렴하게 즐기게 해 주질 못할 망정 바가지 씌우는 느낌으로 운영하는 것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똑같구나 싶었다. 그래도 뭐, 이런 날은 원래 뒤통수 맞는 맛으로 오는 것 아니겠는가. 동해로 떠나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핫도그를 4천 원 씩이나 주고 사 먹어도 여행으로 들뜬 기분에 맛만 좋은 것처럼.


주문한 와인 세 잔을 서버가 들고 왔는데, 와인잔 밑바닥 찰 정도로만 주는 우리나라 식당과는 달리 여기선 거의 생맥주를 따라오듯 가득 따라서 왔다. 자세히 보니 잔에 표시된 눈금선만 해도 무려 250ml인데 그것마저 훌쩍 넘겨 따라왔다. 세 잔을 시켰으니 한 보틀을 넘게 시킨 셈이다. 이 정도면 잔당 만원도 그리 비싼 건 아니겠다 싶었다. 표면장력 수준으로 따라온 내 잔을 조심스레 들어 건배하며 오늘의 노고를 서로 치하했다.

첫 잔 트롤링어와 첫 메뉴 감자샐러드

첫 모금을 마시니, 분명 레드 와인일진대 화이트 와인에 붉은 색소를 탄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가볍고 산도가 높았다. 여기서 <화이트 와인 같다>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좋은 의미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와인의 가벼움’과 시큼털털한 맛에 실망했다는 의미로 쓰였다. 자료를 찾아보다 알게 되었는데 트롤링어는 뷔르템부르크 지역의 전통 품종으로 가볍고 높은 산미를 갖춘 루비색을 띠는 와인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만 나는 로컬 푸드 같은 느낌이었는데, 다른 와인 생산지에서 굳이 생산하지 않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곱게 일이 유로 더 주고 메를로(Merlot)를 시킬 걸 그랬다는 후회가 잠시 밀려왔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해주었는데 독일은 어지간하면 와인의 무게감이 없어서 풀바디(Full body)라고 설명하는 정도는 되어야 바디감이 조금 느껴지는 와인이라고 한다. 앞으로 독일에서 레드 와인은 무조건 풀바디를 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행히 나머지 두 명의 화이트 와인은 괜찮았다.


사실 와인 맛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끌벅적한 여행지에서, 흥겨운 외국인들 가득한 자리에서 대화가 편한 한국인끼리 만나 넉넉한 와인으로 건배하니 그저 뭐든 좋았다.


짠짠짠!

시끌벅적하고 거대한 German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B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여 일을 한 지 1년이 넘는 사람이었다. 어쩐지, 모든 것이 너무 자유롭고 자연스럽더라니. 그는 A와 달리 아프리카를 길고, 깊게 다녀왔다. 썰린 참치 대가리를 갑판에서 바라보는 포즈를 하고 있는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생각나 물어보았다.


“어디 원양에서 참다랑어 낚시라도 다녀올 때 찍은 사진이에요?”

“아! 그거요! 그건 남아공(남아프리카 공화국) 쪽에서 상어 보러 간 건데.”


아, 참치를 잡은 게 아니라 상어 먹이로 들고 간 것이었구나. 그런데 고래도 아니고 상어 투어라니, 보통 상어는 피하려고 하지 않나…?

나만 든 생각은 아니라 믿는다.


그는 상어가 아니라 사람이 무섭다고 했다. 그것도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애매하게 아는 사람, 별것도 아닌 관계에도 족쇄를 채우려는 일부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가장 두렵다고. 상대방이 나에게 도움을 줄 의무가 있다는 듯 행동하고, 뭐하나 보태준 적 없으면서 자기 기준에 타인의 모습을 구겨 넣으려 간섭한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은 보통 이런 대사를 뱉는다.


“한국인끼리 이런 데서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내가 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혹시라도 이런 말이 입에서 나오려 한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자. 그런 대사 앞에는 '(1억을 건네며)'라는 행동 지시문이 선행되어야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는 걸. 개인의 저렴한 의존적 태도를 공동체 사회의 문화적 특성으로, 불안정한 감정을 위한 주변 통제 심리를 타인을 위한 진심 어린 걱정이라 착각하지 말자.


아프리카를 돌아다닐 때 안 무서웠는지, 어디가 제일 무서웠는지 물었는데 대답이 잘 기억나진 않는다. 일단 꼭 최대한 거지꼴로 이상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면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B가 다른 친구와 여행을 다니다 생긴 일이다. 그의 친구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 함께 가자고 했는데 B는 괜스레 걱정이 되어 가지 않았다고 한다. 몇 주 뒤에 따로 여행을 간 그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는데 대강 내용이 이러했다.


“그냥 사람들이 정말 많은 시내 길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등에 칼을 들이밀곤 가진 걸 다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어. 세 명이 달라붙어서 내 주머니를 뒤졌어.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는데, 내 옆을 지나는 수백명의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어. 나는 이곳이 너무 무서워.”


B의 말에 따르면 요하네스버그 같은 곳은 여행 다닐 때 200미터 거리도 반드시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택시가 편리와 사치의 영역이 아니라 안전, 아니 더 나아가 방공호라니. 위험해서 택시를 탄다는 말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아 처음엔 코웃음을 쳤던 나는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온 것인지.


그런 일을 겪고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정말 아름다운 수상스포츠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시선이 궁금했다. 다이버 인스트럭터가 투어 도중 상어에게 물려 피가 철철 나는데도,

“오늘따라 상어 친구들이 장난이 심하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이야기를 밝은 눈으로 팔을 휘저어가며 신이 나서 하던 그. 한국인답지 않게 발랄하고 피치 높은 그의 말투와 리액션도, 껌을 짝짝 씹어도 불량해 보이기보다 순수하게 느껴지는 소년미가 화려하고 거칠었던 외국 여행의 유산처럼 보였다.



슈투트가르트 와인마을축제 구역은 ㄷ자 형태로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대번에 첫 잔을 비운 우리는 다른 구역에서 더 마시기로 하며, 가는 길에 화장실을 들리기로 했다. 익히 들어서 알겠지만 유럽에서 화장실을 찾기는 굉장히 힘들다. 공용 화장실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찾더라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나마도 깨끗이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백화점이나 심지어 지하철에 딸린 화장실마저도 입구에 동전을 넣어야 들어갈 수 있거나 청소관리인에 팁을 줘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유럽에서 박물관이나 식당에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거든 크게 급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들려 예방차 최대한 속을 비워내는 게 좋다.


만약 독일에서 길을 걷다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어 빨리 찾아야 한다면 ‘맥도날드’ 매장을 한번 검색해보자. 한국처럼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은 상시 개방되어 2층에 화장실이 있고 보통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우리 주위에는 마땅한 곳이 없어 고민하다 바로 옆에 있던 큰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컸던 슈투트가르트의 백화점과 외부 쇼핑 거리엔 경제 도시임을 증명하듯 유수한 하이엔드 브랜드가 많이 들어와 있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생각지 못한 리모와(RIMOWA) 매장까지. 몇 층 올라가니 마침 요즘 눈여겨보던 루이스폴센, 아르떼미데, 비트라에서 나온 인테리어 조명과 소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잠깐 한눈을 팔았다. 그러나 이내 목적을 떠올리며 화장실 들리고 곧장 2차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다른 구역의 축제장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철판에 소시지를 굽는 가게가 보여 들어가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서버 누님은 키가 크고 호탕해 보이셨다. 그녀에게 바디감 있는 레드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메뉴판에서 몇 개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안주를 고민하다 옆 부스에서 굽는 철판 소시지와 비슷한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서는 만들지 않지만 옆 부스에 부탁해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독일 사람들 친절하다니까!


추천해준 와인 중 트롤링거가 또다시 있어, 방금 전에 마시고 왔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는 더 무게감 있는 와인을 원했다. 그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안으로 들어가 갑자기 레드 와인 한 잔을 따라 들고 왔다. 이게 가장 바디감 있는 와인인데, 한 번 마셔보고 마음에 들면 시켜보라는 의미였다. 친절함이 담긴 공짜 술이라니, 여긴 천국일까? 그 양이 돈 주고 시키는 한 잔보다 많았다. 셋 다 한 모금씩 마셔봤지만 호의가 안타깝게도 모두의 취향이 아니었다. 미안하다고 하며 리즐링과 샤도네이를 한 잔씩 시켰다. 맛보기로 제공받은 와인도 취향과 관계없이 깔끔히 비워낸 건 물론이다.


서버 누님은 ‘잇츠 오케이’하고 칠링 된 와인잔을 가져왔고, 곧이어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소시지가 나왔다. 리즐링은 향긋하니 달콤했고, 저가 화이트 와인의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신맛이나 소비뇽 블랑에서 맡아지는 열대 과일 느낌의 지린내가 없었다(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향이다). 소시지는 양이 적고 평이했다. 이날 대충 시킨 소시지들이 다 실패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가 독일일진대, 축제 음식의 한계였을까!

와인이 좀 들어간 우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각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프랑크푸르트에 산지 1년이 넘었지만 한국말로 대화한 지 몇 달은 되었다고 하는 상어맨이 있었고, 이제 막 유학 생활을 시작하려 월세방부터 알아보고 있는 일주일 차 독일 새내기가 있었고, 놀러 온 주제에 뭐가 그리 불만인지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외롭다 하는 등치만 큰 여린이가 있었다.


오늘 참 서로가 즐겁고 고마웠다. 아마 꼭 우리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이날 여기에 우연히 함께 존재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들이었기 때문에 즐거웠던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만 같다는 미쁜 착각 속에, 그래서 더욱 난연한 이 순간의 고마움을 표했다.


해가 지고 열 시가 다 되었다. 길가 선술집으로 가 가볍게 맥주를 마실까 했지만 날이 너무 좋았고 못내 아쉬웠다. 광장으로 가 잔디밭에서 마시기로 했다. 근처에 정말 다행히도 아직까지 열고 있는 REWE 마트가 있었다(보통 독일의 마트와 식료품 점은 저녁 8시면 문을 닫는다). 안주거리로는 야끼소바 비슷한 조리 식품과 살라미 한 팩을 샀고, 마실 것으로는 못다 한 레드와인을 묵직한 녀석으로 하나 샀다. 그에 더해, 독일 취업 비자 2년 차 주민의 생생하고 강력한 추천으로 지금 이때 아니면 쉽게 맛보기 어렵다는 페델바이저(Federweisser) 도 하나 구매했다.


페데르바이저(Federweisser)는 포도에 효모를 넣어 만든 발포 양조주로, 도수는 약 9-13.5도 정도인 독일 지역 술이다. 젝트(Zekt)와 같은 발포 와인과 다른 점은 별도로 숙성을 하지 않고 효모가 들어있어 발효가 진행 중인 상태로 병입 된다는 점인데, 그렇기 때문에 포도가 수확되는 늦여름-초가을(8-9월)에만 맛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유통 중에도 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공기가 조금씩 통하는 뚜껑을 써야 발효로 발생된 기체를 외부로 배출하며 병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 오래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구입 후 빠른 시일 내에 먹어야 한다고 한다.


과거에는 포도 산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지역 특산주에 가까웠는데 대량 생산하는 기업이 들어오고 보관 및 유통 기술이 발달하며 마트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술이 되었다고. 그러나 시기만큼은 무한정 늘릴 수 없어서, B도 이 술을 맛보기 위해 한참 동안 늦여름을 기다렸다고 했다.

페데르-바이저


나도 처음 들어본 술이라 B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페데르바이저는 보통 백포도 품종으로 만드는데, 마트에 가면 비슷하게 생긴 초록생 병과 빨간색 병이 있다고 했다. B의 말에 따르면 빨간색은 쳐다도 보지 말고 초록색을 사마 셔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빨간 병은 적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페데르로테(Federroter)로 조금 다른 술이었다.


안주거리와 마실거리를 사 슐로스 광장 잔디밭에 앉았다. 와인을 따기 전 페데르바이저를 먼저 마셔보기로 했다. 헐거운 뚜껑을 따서 종이컵에 따랐다. 화이트 와인의 달콤한 포도향이 눅눅하게 올라왔다. 맛은 매우 달달하고 너무 잘지 않은 탄산 기포가 혀를 간지럽혔으며, 꽤 높은 도수에도 치는 알코올은 전혀 없었다. 특이하게 과실로 만든 술인데도 사케나 탁주 등 쌀로 만든 양조주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구수함이 맡아졌다. 효모가 그대로 들어가 있고 발효가 진행 중인 상태로 병입, 탄산감 있는 구수함. 페데르바이저는 포도로 만든 막걸리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차갑게 식은 야끼소바를 먹으며 다들 “이거 왜 이렇게 어묵볶음 맛이 나지?” 하며 손뼉 치며 공감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깔깔대며 웃었다. 한 병에 8유로쯤 했던 레드와인을 따 같은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다행히 지하철은 아주 늦게까지도 운행했다. 모두 같은 호스텔이라 함께 지하철을 타러 갔다. 슐로스 광장역 우리가 타는 곳 반대 방향 승강장엔 외로운 사연을 각자 간직한 듯 보이는 두 남자가 처연히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거니 그들을 보고 있자니 둘의 외로운 사연을 이어주고 싶었다.


한 명은 젊을 적 사업에 실패하여 채권단을 피해 도망치듯 어린 아들과 아내를 뒤로 두고 집을 나온 남자. 그 뒤로도 몰래몰래 생활비를 현금 봉투에 담아 짤막한 편지와 함께 집 앞 우편함에 넣어두지만 그는 차마 아내와 어린 아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한다. 아들은 어느새 장성하여 대학생이 되었고, 여태껏 죽었다고만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신단 사실을 어머니에게 듣는다. 그는 백방으로 찾아다니다 그를 슈투트가르트에서 발견했다는 제보를 듣고 이곳에 온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저 둘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보고 싶던 그들은 눈앞에 있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서로를 갈구하고 찾고 마주 볼 뿐 닿질 못한다. 둘의 간극은 평행선처럼 이어져 그리워하며 걸어갈 뿐, 손을 잡고 만나지 못한다.


드라마 안 본 지 몇 년은 됐는데. 어릴 때 어머니 옆에서 TV 눈동냥을 너무 많이 했나.


술이 아쉬워진 우린 호스텔로 와 구내식당으로 갔다. 원래 술을 오래 마실 땐 점차 도수를 올리며 깔끔한 증류주로 마무리해야 한다. 마침 그 순간엔 내가 사둔 납작 복숭아와, 어제 오픈한 아스바흐(Asbach)가 있었다. 조그맣게 휴대폰으로 성시경 노래를 조용히 배경으로 틀었다. 브랜디를 한 잔씩 컵에 조금씩 따라 아주 오랫동안, 대화를 건배 삼아 부딪히며 서로의 말을 마셨다. 적당히 취기가 올랐을 즘에 내일 조식을 함께 먹자며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들은 세상의 눈을 피할 생각도 않으며 열정 있게 제 삶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시류를 거스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곡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예술 지망생처럼.


패기와 도전이란 것은 시간이 흘러 후회할 수도 있고, 그렇게 살다 도태될지도 모르고, 우연찮게 세속이 말하는 성공을 거둘지도 모르고, 이러나저러나 행복할 수도 있고, 그 결말은 나야 그들이야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눈이 반짝이는 열정을 마냥 옳다구나 하며 치켜세우거나 꼭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그들이 그저 멋지게 보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주니까.
People love what other people are passionate about,
you remind them of what they forgot

<라라랜드 LaLaLand> 에서 미아(엠마 스톤)의 대사


여섯 번째 밤, 내 마음 깊은 곳 나그네를 깨워주는 사람들과 함께 슈투트가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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