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독일에서 월세방을 구하는 일

09.04, 슈투트가르트에서

by 이원장

지나온 공간 : 슈투트가르트 거주 구역의 한 쉐어하우스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시계를 보니 10시였나. 목이 텁텁하고 머리가 조금 띵했다. 정말 간만에 느끼는 숙취였다. 마신 양을 떠나 어제 온갖 것을 섞어 먹긴 했다. 맥주, 와인, 브랜디, 막걸리(페데르바이저)까지. 과학적인 근거까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섞어 마신 다음 날은 평소보다 숙취가 더 심한 것만 같다. 아, 그냥 섞어 마시는 날은 보통 많이 마신 날이라 그런 걸까?



어제의 나그네 동지들에게 연락을 하니 둘이 먼저 일어나 사이좋게 조식을 먹는 중이라 했다. 서둘러 가보니 음식을 거의 치우려는 중이라 부랴부랴 먹을 만한 것들만 챙기고 해장용 커피를 내리러 갔다. 에스프레소 버튼이 없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받아 대강 우유 위에 부어버렸다. 조잡하게 묽긴해도 라테 비슷한 맛이 났다. 한쪽엔 삶은 계란이 6-7개쯤 남아있어 단백질 섭취를 위해 전부 다 집어와 앉았다.



내가 이 정도로 머리가 아프면 보통 같이 마신 사람들은 죽어있기 마련이었는데, A와 B의 밝은 아침 표정으로 봐서는 술에 꽤나 강한 자들인 듯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싱긋 마주 보고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수 있지. 계란 껍데기를 까고 커피를 마시며 각자 오늘의 예상 일정을 브리핑했다.



나는 오후에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을 가는 것 외에는 일정이 없어 여유로웠다. 직장인 B는 깔끔한 휴일이었다. 시간에 쫓겨 꼭 뭘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독일에 살고 있는데, 뭘. A는 오전에 집을 하나 보러 가기로 되어있다고 했다. 개강 전 미리 와 호스텔 머무르며 월세방을 알아보는 중인데, 이 날이 첫 방문이라 했다. 설명을 듣다 보니 독일 가정집, 주택가의 생김새와 이곳의 월세 시스템이 궁금했다. 마침 B도 이 분야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독일 거주 3년 차의 인생 선배 아니었나! 다 할 일도 별 거 없겠다, 함께 가보기로 했다.

슈튜트가르트

독일에서 월세방 구하기


독일에서 자취방을 구하는 개념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먼저 외국에는 전세가 없고 월세만 있다는 건 워낙 널리 알려져 있으니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벌이가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과 젊은 층은 보통 3-4인이 모여 셰어하우스를 월세로 렌트해 지낸다. 집세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이유 때문인지, 한국의 1인 원룸 형태의 건물이 독일에는 별로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대학생의 거주에는 선택권이 많지 않다.



독일에서 방을 구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부동산 중개 사이트나 광고를 보고 시장에 나온 매물을 확인한다. 거기서 간단한 집 사진, 위치, 월세와 보증금, 입주 가능 날짜를 확인한 후에, 마음에 든다면 일종의 ‘지원서’를 작성한다. 여기가 한국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인데, 마음에 드는 방이 있다면 직업, 나이와 성별, 의사소통 가능 여부, 라이프 스타일, 지원 동기(!) 등을 간이 이력서에 작성해 메일로 보내야 한다. 조건 좋은 방의 경우 수십 장 이상의 지원서가 날아오기도 한다고.



그럼 그 지원서를 누가 읽고 또 서류 심사는 누가 하느냐, ‘당연히 집주인인 임대인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독일은 실거주인의 의견을 가장 앞에 둔다. 1차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은 기존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이다. 서류를 확인한 후에 2차로 면접까지 기존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우리도 익히 하는 ‘방 보러 갈 때’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론 기존 세입자가 지원자를 집으로 초대하여 마치 한국의 부동산 중개인처럼 집주인을 대신해 집을 구경시켜준다. 집을 구경시켜주는 행위가 곧 면접 과정이라 대화를 하며 상대를 파악한다. 만약 여기서도 흡족한 반응을 얻어 기존 세입자들의 최종 동의를 얻으면 드디어 집주인과 상의해 본격적인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



위의 과정 때문에 특히 외국 유학생의 경우 방을 알아보는데 큰 애를 먹는다. 미리 지원서를 여럿 보내 놓는다고 해도 서류부터 퇴짜를 맞기도 하거니와, 방을 보러 일찍 도시로 간다고 해도 계약까지 성사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어플로 몇 번 클릭해 가계약금만 보내 놓으면 일사천리로 도장 직전까지 서류를 만들어놓는 한국 부동산과는 다르다. 돈과 시간이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조차 사회 초년생은 집을 알아볼 때 어수룩한 티가 나며 막막하기 일쑤인데, 몇 차례는 더 꼬아놓은 독일의 셰어하우스 임대 문화에 귀찮음을 넘어서서 복잡한 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만도 하다. 기댈 곳 없는 그런 마음의 틈을 파고드는 한국 임대인들도 있다.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려 한국처럼 미리 돈을 받아 계약을 확정하거나 복잡한 면접 과정 없이 편하게 세입자를 받는 집주인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B의 말에 따르면 돈만 빼먹는 못된 사람들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무너지기 쉬울 것을 뻔히 알면서, 없는 확신에도 애써 기대 보려 하는 나약해진 마음을 밑동까지 빼어먹는 그러한 인간 부류를 매우 싫어한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대가 없는 따뜻함과 이유 없는 친절을 받아들이기 힘든 몸이 되어, 다른 인간에게도 쉽사리 정을 주기 힘들어진다. 전염병처럼 차가운 몰인정을 세상에 퍼트리는 일이다.




A는 이곳에 오기 전에 쉰여 개의 지원서를 넣었고, 그중 다섯 군데에서 방을 보러 오라는 '서류 합격' 연락을 받았다. 오늘이 그 첫 번째였다. 방 사진은 조금 좁아 보였지만 위치한 동네가 괜찮고 U-Bahn이 근처라 캠퍼스를 오가기 편했다. 사실 조건을 떠나 찬밥 더운밥 속 편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수업 날짜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고, 집이 없는 불안정한 상태에선 어떤 공부도 집중하기가 힘들 테니까. 티 나지 않게 굳어 긴장한 그의 표정도 그걸 아는 것 같았다.



호스텔 근처 역에서 U-Bahn을 타고 20분쯤 걸렸나, 첫 번째 집 근처 역에 도착했다. 유럽 전철길답지 않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왔다. 새삼스레 슈투트가르트가 분지 지형임을 실감하며 여기는 자전거 통학은 어렵겠단 생각을 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좋았다. 역에 내려 집을 찾아가는 길에 작은 놀이터가 있고, 꼬마 백인 남자아이 몇몇이 뛰어놀았다. 옆에서 유모차를 잡고 있는 아버지는 종이 신문을 읽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갓길에 주차되어있는 차들이 여럿 보였다. 다행히 깨진 유리창이나 허름한 폐차는 보이지 않고, 꽤나 값이 나가는 차들도 간간이 보였다.

이런 거리 모습을 묘사하는 내가 속물 같지만 낯선 유럽 땅에서 살 집을 찾는 데에 나름 유용한 편견 기반 지표들이다. 날씨도 그렇고, 거리 풍경도 이만하면 안전해 보였다.



역에서 5-10분 정도, 외곽이긴 해도 이 정도면 역세권이었다.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오니 큰 쓰레기 수거함이 있는 마당이 있었다. 보기로 한 집이 4층이라, 작은 문을 열고 긴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갔다. 참고로 유럽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기보단 수리-보수하며 거리 정취를 이어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다. 물론 그런 건물에 지하 주차장도 있을 수가 없다. 파리는 더 하다고 들었는데 관광객을 불러오는 고풍스러운 거리에는 다 그만한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드디어 도착하니 키가 큰 독일 여성 (족히 178은 되어 보였다)이 문을 열어 우리를 환영했다. 생글생글한 미소를 잃지 않고, 얇게 그린 눈썹을 줄곧 살짝 위로 들어 눈인사하는 그녀에게서 몸에 배어있는 친절과 선함이 느껴졌다.


한눈에도 꽤 되어보이는 천장 높이. 흑단 색깔 서까래의 높이만 2미터가 넘었다.

거실로 들어서자 당초 예상보다 내부가 훨씬 크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삼각형의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진 높고 뾰족한 천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사람에 따라 장점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나는 마음에 들었다.


공간의 높이


한국의 원룸과 아파트는 층고가 너무 낮다. 거주 공간의 수치 비교를 평면 기준의 전용 면적, 평수로만 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평수에는 선택지가 있었을지 언정 대부분 우리는 같은 낮은 높이에서 살기를 강요받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높은 천장이 주는 개방감과 자유로움, 그리고 추상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젊은이들이 집에서 업무 하다 말고 굳이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는 이미 실험으로도 증명되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팀은 각각 2.4m, 2.7m, 3.0m 천장 아래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문제를 풀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 높은 천장 아래서 문제를 푼 참가자가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집중력 높은 사고를 보였다고 한다. 창의력을 쉽게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연구팀은 ‘천장고가 30cm 높아지면 약 2배의 창의력 증가가 이뤄진다.’라고 발표했다.



한국의 경우 주택건설 기준에 관한 규칙은 거실 천장고를 2.2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건설사들은 일반적으로 2.3m의 천장 높이를 채택하고 있다. 다음은 해외의 사례이다.



모든 가구의 층고가 높아졌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주택의 천장이 3m가 될 수는 없다. 용적률은 제한되어있고, 원자재도 한정 없이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법적인 기준을 10cm 정도 조금만 더 올리고, 천장 높이를 높게 시공하는 경우 용적률에서 보상을 해주는 정책으로 간다면 경제적인 논리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더불어, 획일화된 형태의 아파트가 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같은 평수의 아파트가 취향 없이 거의 동일하게 생겼다. 살 집이 아니라 기성품이자 자산으로써, 마치 금괴처럼 일정하게 생겨 구매자들이 고려할 것은 가격과 위치, 평수뿐이다.

이럴 경우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춰 예산 한도 내에서 최선의 집을 고르기가 어렵다. 누군가는 평수가 조금 좁더라도 층고가 높은 집을 선호할 것이고, 누군가는 바닥이 넓은 집을 선호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작은 거실에 여러 가족 구성원들을 위한 개개인의 방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넓은 거실을 생활공간으로 하며 작은 크기의 서재와 옷방만 있는 집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상품 선택권이 없다. 경제 논리에 매몰된 건설사의 4인 가족 기준의 30평대 디자인은 전국 어디에서나 같은 형태의 집을 짓고, 부동산 중개인이 과연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아파트는 가격, 위치, 평수로만 가치가 매겨진다. 이런 풍조에선 내 취향에 맞는 좋은 집이 아니라, 남들보다 비싼 집이 있을 뿐이다. 주거 공간의 가치를 위에서부터 줄세우며 비교 우위를 좇아 찾는 행복은 지속적이지도, 다수가 함께하지도 못한다.



구조에 다채로운 멋을 담는다면 개인별로 선호도가 다를 수 있을 텐데, 한국의 아파트는 숫자로만 평가되기 때문에 위아래로 급이 매겨질 수밖에 없고 우리는 이를 주식처럼 거래하게 된다. 수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에는 평수에 따라 3개의 집 구조밖에 전시되어있지 않다.

‘개성’이라는 단어가 점차 환영받는 시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콘크리트처럼 변화하지 않았고, 경제 논리는 동일하다. 건축법이 변화하지 않으면 건설사는 오 년, 십 년이 지나도 수십 년을 반복해온 방식으로 아파트를 지을 것이다.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의 발걸음에 맞춰, 제도 또한 변화해야 한다. 아파트에도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A가 쓰게 될 방 한 켠에는 전에 살던 세입자가 미처 치우지 못한 자전거가 하나 올라와있었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4층까지 매일 자전거를 계단으로 운반했을까 싶다가 생각해보니 엄복동의 나라 한국도 자전거만큼은 치안과 관계없이 많이 도난당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거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니까.

한쪽엔 서양 영화의 다락방 같이 비스듬한 창문이 있어 햇살이 밝게 들어왔다. 광각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에 인위적인 공간감을 담는 다른 매물과 달리 사진에서 본 것보다 실제 크기가 훨씬 넓어 보였다. 넓이는 이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A도 꽤나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풍경화를 걸어놓았나 착각할 법한 비스듬한 창문


개인 방을 둘러보고 식기 세척기가 빌트인 되어있는 주방을 확인하고, 화장실 수압까지 체크를 마쳤다. 만족스러운 마음에 주방 식탁에 다 같이 앉았다. 설명했다시피, 이건 우리만 만족스럽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매사에 친절했던 젊은 독일 여성(리사)이 테이블 건너편에선 깐깐한 면접관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목이 말라 탁자에 앉으며 조심스레 물을 청했다. 리사는 어깨를 흠칫하며 먼저 마실 걸 주지 않아 미안하다고 하며 컵을 가져왔다. 내 옆에 놓인 생수 뚜껑을 따서 컵에 물을 따랐다. 면접관이라고 생각하니 괜한 실수를 해서 점수가 깎일까 봐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A는 한국에서 독일로 유학을 왔는데 이제 살 집을 찾는 중이며, 독일어는 대학교에서 초급 강좌부터 수강할 예정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같이 온 나에게도 대뜸 어떤 관계인지 물어봤다. 설명하기가 복잡해 그냥 친구라고만 대답했다. 뭐, 거짓말은 아니잖아?


리사는 독일에서 유치원 교사를 꿈꾸며 수습 기간을 거치는 중이라 했다. 그의 상냥하고 듬직한 호감형의 말과 외모는 누구든 아이를 맡기고 싶을 듯했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면접 아닌 면접이 흘러갔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한 명이 더 들어왔다. 3명이 함께 사는 집의 또 다른 기존 세입자였다. 이름은 소피, 불가리아에서 온 대학생 소녀. 인상은 선하고 조용해 보이나 친해지면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MBTI를 맹신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유형화하자면 INFP(J), 딱 그런 첫인상이었다. 왜, 요즘 그런 말 있지 않은가. 조용한 것 같은데 은은하게 돌아있는 맑은 눈의 광인. 물론 사귀고 싶은 재밌는 친구라는 좋은 의미로!


다행히도 리사 또한 A가 들어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소피는 늦게 온 탓인지 전권을 리사에게 위임한 듯했다. 비슷한 나이대에 같은 성별인 점도 플러스 요소이고,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땐 세 명 다 인상이 선하고 결이 비슷해 보여 잘 어울렸다. 사실 이날 보러 간 집이 매우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지원서만 수백 장을 받았고, 수십 명의 면접자가 있으며, 우리가 보러 간 날만 3-4명의 추가 면접자가 있다고. 리사는 그러한 과정이 너무 지치기도 했는지 빨리 세입자를 받고 싶다고 했다. 마침 A도 빨리 입주할수록 숙박비를 아낄 수 있어서 서로의 수요도 충족이 되었다.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입주날짜와 최종 계약이 가능한지 연락해보기로 하고, 리사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했다. 정말 친절한 태도는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행복의 향을 주변에 퍼트린다. 집 계약이 순탄해 보이는 분위기도, 친절한 오늘 하루도 기분 좋았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A에게 집주인으로부터 긍정적인 연락이 왔다고 했다. A는 첫 집이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이 집만 된다면 다른 집들은 더 보기도 귀찮다고 했다. 위치나 조건이 마음에 들었으나 사진 상 집이 좀 좁아 보여 고민하던 차였는데, 실제 확인했을 때 집이 널찍하니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고 했다. 더군다나 우리가 간을 보며 시간을 끌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으니 빠르게 확정을 하는 태도도 중요했다. 한국이었으면 아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을 테다. 그러나 타향에서 잘 통하지 않는 언어로 낯선 지리를 헤쳐가며 남의 집 대문을 연달아 두드리며 다닌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편한 일도 아니다. 옷 한 벌 사는 데도 온갖 비교와 고민을 해대는 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A의 결정이 이해가 갔다.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맛집이 있다 하여 홀가분한 기분으로 움직였다. 일요일이라 길에는 영업 중인 상점이 별로 없었다. 정거장에서 내려 한 블록쯤 걷다 꺾어 골목길로 들어가니 평범한 주택이 모여있는 길가에 야외 테이블을 내놓은 식당이 보였다.

햇살을 받으며 손을 잡은 연인, 독일인답지 않게 멋지게 차려 입고 커피를 마시는 할아버지 네 분이 손님으로 있었다. 다른 한쪽 테이블엔 바이커 재킷을 입은 멋쟁이 청년이 신문을 읽으며 담배를 태웠다. 가만 보면 저기 할아버지 한 분은 다홍빛 면바지에 페도라를 쓰고 계시질 않나, 여하튼 이탈리아를 방불케 하는 독일에서 흔히 보기 힘든 멋쟁이들이 모인 카페였다. 다들 가족들과 쉬는 일요일 낮에 굳이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니 기본적으로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경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자리에 앉아 서버에게 어떤 메뉴가 있는지 묻고 내 몫으론 염소치즈를 섞은 달걀 오믈렛과 라테 마키아토를 시켰다.


만족스럽게 음식을 먹으며 조금 전의 입주 면접을 다시 떠올렸다. 이러한 시스템은 자칫 정당화된 소수자 차별로 이어질 수도 있진 않을까. 사실 모든 면접은 불공정과 차별로 이어지기 쉽다. 객관적인 수치로 쉽게 환산하기 어려운 주관적 평가가 측정의 기본 형태이기 때문에, 기업과 정부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법과 제도를 통해 면접의 공정성을 최대한 유지하며 차별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주 면접의 경우 어떠한 제재 장치도 없다. 심지어 ‘그냥 나와 안 맞을 것 같다.’라는 명목도 훌륭한 거부 사유로 인정이 된다.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니 흡연, 음주 등 생활 습관을 고려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인종과 외모를 보고서 선입견에 기반한 거절 의사를 밝혀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 외국인에 의한 테러가 발생한 직후라면, 해당 국가의 유학생은 쉽게 셰어하우스를 구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러한 면접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피부색이 다른 사람은 물론 중국인도 쉽게 수용되지 않을 것이다. 소수 집단일수록 부정적 사건 하나하나가 그 집단을 대표해버린다. 언론 보도된 살인범 두 세명만 모여도 범죄 도시로 낙인찍어버리는 한국에서, 소수의 외국인이 내국인과 어울려 사는 셰어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면접 제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며 들어오려면 먼저 인종, 나이, 성별을 포함한 차별을 금기시하는 인식이 사회의 기본값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이라고 모든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선입견 없이 타인을 대하진 않는다. 어쩌면 그건 한 개인에게 조차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낯선 집단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은, 기후-경제 위기를 직면하여 세계의 성장이 둔화된 근래에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고 내 나라 일 아닌 전쟁을 수수방관하며 원자재를 무기로 삼고 타국과 협력해오던 생산 시설을 자국 내로 옮긴다. 코로나 사태로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요즘 인터넷 공간은 나와 다른 성별, 다른 직업, 다른 지역, 다른 세대를 싸잡아 단점을 짚어가며 집단을 매도한다. 그러나 본능대로 살다 간 무너질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 문명 아니었나! 친절한 독일 여성과 함께 한 셋방 면접을 겪고서 생각한다. 자유로운 면접의 첫 번째 조건은 타인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운 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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