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4 슈투트가르트에서
지나온 공간 :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Stuttgart Staatsgalerie), 슐로스 광장(Schlossplatz)
밥을 먹으니 많이 걸은 탓인지 엷게 늘어진 햇살 속에 나른했다. 숙소에 들려 잠깐 쉬다 나올까 했지만 시간이 좀 애매했다. 지체 없이 오늘의 유일한 계획이었던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은 유명하진 않아도 알찬 구성과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을 받는 박물관이다.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은 크게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으로 일부 소실된 구관을 대체하여 프리츠커 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의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의 설계로 1984년 신관이 문을 열었다. 내부 작품뿐만 아니라 신관 건물 또한 독일 포스트모던 건축의 시초로 알려져있으며 주변 도시 환경과 조화를 잘 살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미술관에는 중세 이후로 다양한 세기에 걸친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특히 19-20세기, 인상파 회화부터 추상화로 이어지는 근현대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이 많다. 폴 세잔, 모네와 마네, 폴 고갱,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에곤 쉴러, 피에트 몬드리안과 잭슨 폴록까지, 미술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교과서 등을 통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미술가들일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주립 미술관은 유명 관광지가 아닌 만큼 이러한 작품들을 널찍하고 조용하게 관람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물품 보관소와 여유 있는 작품 배치, 전시실 중간중간에 놓인 소파는 더욱 관람객 친화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유럽을 다니다 보면 이름 높은 작품보다 이름 모를 사람을 더 많이 보는 이름 난 박물관의 인파에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름 모를 작품을 홀로 잔잔하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이곳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관으로 들어서려 부지를 걸으면 핑크색 원기둥 펜스, 초록색 벽체 기둥 구조물, 내부로 들어가려 할 참이면 다홍색 드럼통 회전문을 마주치게 된다. 처음 보았을 때 마치 모래밭에 몬테소리 나무 블록이 배치된 듯한 난해한 색감을 느꼈다. 크림색과 갈색, 회색의 네모난 돌조각을 모자이크 문양처럼 쌓은 고대 석벽이 원색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는데, 콜로세움에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Shot sage Blue Marilyn, 1964)를 걸어놓은 것 같은 기괴함마저 느껴진다.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버린 신관 출입구는 불편함에서 의미를 찾는 현대 미술을 관람할 마음 가짐을 다잡아주기 위함이었을까?
유럽에서 일요일은 쉬는 상점과 관광지가 많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는 일정을 잡아 놓으면 알차게 다니기 좋다. 박물관은 보통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나 사람이 너무 많을까 걱정했지만 매표소가 텅텅 비어있어 휴관일인가 착각했을 정도로 한적했다. 시민 봉사자처럼 보이는 독일 할머니께서 매표를 담당하고 계셨는데 관람료를 여쭤보니 성인은 9유로이지만 대학생은 무료라고 하셨다. 국제 학생증을 발급받고 오는 것을 깜빡했기에 10유로 지폐를 꺼내려는 찰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학원 모바일 학생증을 보여드리자 쉽게 무료 티켓을 끊어주었다. 심지어 한국어로 된 학생증이었는데도 말이다. 앞으로 독일 사람 무뚝뚝하단 얘기는 하지를 말라, 명예 독일 대학생으로서 혼쭐을 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무료 짐 보관소에 짐과 겉옷을 넣고 위층으로 올라가 관람을 시작했다. 1번 전시실은 15세기 르네상스 시기 작품부터 시작했다. 그 이후로 1시간 가까이를 15-18세기의 회화를 둘러봤지만, 한 작품 빼고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없었다. 미술을 잘 몰라 드는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르네상스 영향을 받은 고전회화들은 개성을 변별하기가 어려워 이 그림이 저 그림 같고, 점차 관람하다보면 잘 그린 그림을 볼 때 느끼던 미적인 경외심마저 사라진다. 미술관의 예술 전시야말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분야가 아닐까.
사실 살면서 인상파 이전의 회화(특히 르네상스)에서 큰 영감을 주거나 흥미를 끄는 작품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가끔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ex. 미켈란젤로, 다 빈치) 화가의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익숙함에서 비롯된 미묘한 생동감과 감정이 조금은 전달되었던 것도 같지만 글쎄, 그런 곳은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았어서.
르네상스의 회화는 생생한 실재감을 바탕으로 한 이상미를 추구하였다. 신에서부터 인간으로 초점이 옮겨진 시기였고, 해부학이 발달하고 실제 모델의 사용이 이루어졌으며 원근법과 명암법이라는 공간 표현의 원리가 정립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유사 공리(公理)가 존재하다 보니 약간의 구도 변화나 배치, 섬세한 표현 외에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낼 부분이 별로 없다. 수학적 비례까지 적용된 조형미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잘 그린 그림들은 다 엇비슷해 보인다.
이에 반해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내려놓은 근현대 미술 작품을 보다보면 얼마나 제각기 방식으로 기괴하고 또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작가라면 모르는 작품일지라도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유추가 가능할 때도 많다. 저거 고갱 같은데, 저거 몬드리안 같은데, 저거 미로 같은데 - 그런 생각이 든다면 대체로 맞다. 정도에서 벗어나야지만 개성이 생기고 취향이 생긴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예술의 개성이란 것도 이와 비슷한 궤도가 아닐까.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불완전한 ‘나’에 충실하는 것.
뭉뚝한 감상만 남은 18세기 이전 회화 전시실을 지나고 마네-모네로 시작하는 인상파 전시실로 들어섰다. 자연스레 이전 전시실과 비교하며 감상하다보니 왜 인상파로부터 현대 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하는지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인상파는 감정, 의도, 표현, 개인의 시작이구나. 강렬한 붓자국과 현실에 없는 색감으로 그려낸 그들의 그림은 분명히 개인적인 감상을 담고 있었다. 스쳐 지나간 장면을 그린다는 것은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할 수밖에 없고, 사람의 기억이란 것은 모든 세부를 기억하지 못하고 굵직한 인상을 색감으로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전혀 다르게 그리는 일, 그러나 그것에 정답은 없는 일.
편하게 둘러보고 있는데 사과 정물화로 유명한 폴 세잔의 인물-풍경화 하나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폴 세잔의 다른 작품인 <목욕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그림이었다. 사과가 아니라 사람이네, 하고 가볍게 보고 넘기려던 그림의 모델에서 문득,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Les Demoiselle d’Avignon)>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순간 세잔이 입체파의 효시로 평가받는다는 지식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왔다.
이제껏 전시가 정말 즐겁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정말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내 까짓 게 뭘 알아, 설명이나 외운 다음 느낀다고 착각하는 거지.’
스스로에게조차 확신이 없었고 짧디 짧은 지적 허영심을 진정한 즐거움이라 착각하는 게 아닌지, 시간을 내서 전시를 갈 때마다 한 꼬집의 전율과 한 움큼의 의구를 바꿔 돌아왔다.
그러나 이 날의 감정만큼은 이렇게 글로 남겨 발행하여 영영 퇴고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다. 나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전율 섞인 눈물이 조금 흘렀다. 성장한 자신에 대한 감격인지, 예술가에게 아주 잠깐이나마 스쳐 빙의되고 남겨진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날의 청승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내게 당당하게 전시를 갈 수 있는 명분이 되어줄 것이다. 그 순간을 다시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설렘만으로도 전시는 내게 충분히 즐겁다.
미술관의 시간은 금세 흘러가 어느새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 인터넷에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을 검색해보면 잠깐 시간이 떠서 둘러본 미술관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알차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아쉽다는 경험담이 많다. 나 또한 초반 전시에 너무 긴 시간을 써버린 걸 안타깝게 생각하며 몇 개의 현대 미술 전시실을 존재할지도 모를 나중으로 기약한 채 뒤돌아섰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돌아가 달라고 안내하는 직원 뒤 멀리에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한 점 얼핏 보였는데, 저것만 보고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볼지 속으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여전히 밝았다. 어딜 갈지 몰라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걸어 슐로스 광장에 도착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잔디밭에 잠깐 누웠다. 하늘은 푸른 나팔꽃 색깔, 햇살이 맑고 바람은 간지러울 정도로만 불어주니 야외엔 사람이 많았다. 밤송이처럼 찌르는 햇살을 피해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그들을 구경했다. 널따란 단을 가진 계단에선 아이부터 대학생까지 스케이트보드로 이리저리 발재간을 부렸다. 한쪽엔 웃통을 벗은 젊은이들이 네모난 전축을 틀고 춤을 췄다. 내가 조금만 할 줄 알았다면 달려가 동양의 춤사위를 보여줬을 텐데. 대학생 때 춤 동아리를 할 걸 그랬다.
희끗한 머리가 섞였을 법도 한, 마흔은 족히 되었을 다 큰 어른들도 잔디밭에서 대학교 MT에서나 하던 놀이를 하며 뛰놀았다. 수건돌리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고리던지기 같은, 나도 안 한지 몇 년은 되었을 유치한 놀이들. 자극적인 밤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동네에서 일요일이라 식당들도 쉬어버리니 휴일에 심심한 사람들이 이렇게 밖으로 밖으로 모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별다른 유희거리가 없어서 하는 시골 놀이라고 할지라도 김홍도 풍속화 같은 이런 정경이 더 좋다. 우리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만지기보다 동네 친구들과 미끄럼틀을 타고 모래성을 쌓으며 뛰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출출해져 근처 마트로 메를로(merlot) 와인을 사러 갔다. 따뜻한 조리 음식을 파는 매대에선 여러 종류의 구운 소시지를 팔았다. 독일에 와서 제대로 된 소시지 한 번 먹지 못한 억울함을 조금 달래주길 기대하며 몇 개를 집어왔다. 피자빵 비슷한 것도 사와 종이봉투를 대강 찢어 펼쳐두고 먹었다. 계산할 때 종이컵을 부탁해 받아왔고 일부러 코르크 마개가 아닌 트위스트 캡 와인으로 골라왔다. 붓고 마시고, 자르고 씹고. 사람들은 흥겨운 그대로인 것 같은데 하늘빛만 점차 어둡게 변했다. 하늘이 짙은 자수정 빛깔 같은 와인색으로 숙성되었을 때쯤 와인을 다 비워냈다.
숙소로 돌아와 남은 아슈바흐(Asbach)를 털었다. 마지막이었다. 기분 좋게 거나하게 술을 마신 것도 이 날이 독일에서 마지막이었다. 달아오른 얼굴에 복닥하게 널뛰는 가슴을 꾹꾹 담아누르며 잠자리에 들었다. 진정해라, 캄 다운.
이상하게 독일을 영영 떠나는 전날 밤인 것만 같이 느껴졌던, 9월 4일 슈투트가르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