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7, 파리에서
지나온 공간 : 뮌헨 중앙역 앞 호스텔, 파리의 빵집과 식당, 파리 정육점, 에어비앤비 숙소
현재 시각 새벽 02시 11분. 뮌헨 중앙역 앞 호스텔 로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오전 03시 24분 파리행 기차를 타기로 예정되어있다. 그렇게 이른 시간엔 대중교통을 거의 운행하지 않기에, 중앙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숙소들을 물색했다.
6일의 저녁 일정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을 예정이었다. 씻고 나면 두세 시간 정도만 누워있다 나가야 할 텐데 굳이 숙소에 큰돈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별 고민도 없이 정한, 지금 1층 로비로 피난 온 이 역전 호스텔이 독일의 마지막 숙소가 되시겠다.
가장 저렴한 8인 혼숙 도미토리(독일 호스텔에선 남성 도미토리 방이 거의 없다. 여성 전용, 아니면 혼숙 도미토리이다.) 방을 예약하긴 했으나 리셉션에서 방 키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아수라장을 예상하진 못했다. 다른 호스텔에서는 혼숙이라 적히긴 하였어도 동성으로만 이루어져있기도 했었고, 예약도 널널해 혼자 넓은 방을 쓴 적도 여러 차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저렴한 가격만큼이나 공간에 대한 소유권과 프라이버시가 확연히 줄어든 느낌을 받았다. 8명 꽉 찬 방에 방문을 열자마자 본 것은 한 외국 여성의 돌아누워있는 엉덩이였고, 방에선 암내와 각종 발구린내가 어설프게 조향된 악취마저 느껴져 단번에 순탄치 않은 휴식을 예감했다.
한국 남성들은 도미토리 '혼숙’을 흔히 경험해보지 않아 이미지를 떠올리면 글래머러스한 외국 여성, 혹은 타부시된 섹슈얼한 상상을 할 수도 있겠으나 - 실상은 섹시와 아주, 아주 거리가 멀다.
이 날은 어느 독일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 했다. 늦게까지 자기 친구들을 찾아 방문을 들락날락, 그들 나름 볼륨을 줄인다고 줄인 목소리로 핸드폰 불빛을 반짝거리며 새벽까지 얼마나 떠들어대던지. 덕분에 기차 시간에 딱 맞춰 알람을 설정한 보람도 없이 두 시간 일찍 깨어나 머리만 감고서 짐을 싸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로비로 내려와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맥북을 켜 밀린 기행문을 쓴다. 기차 놓칠 일 없어졌으니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해야하나.
10분 정도 연착된 ICE(독일 고속열차, 이ㅅ-체)를 타고 뮌헨 중앙역에서 국경을 넘는 여정을 시작했다. 맥북을 폈다, 다시 덮다,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설국>처럼 긴 터널을 지나 국경을 넘으면 엄청난 풍경 변화가 펼쳐지길 조금은 기대했지만 독일과 비슷한 긴 들판이 이어질 뿐이었다. 06시 30분쯤 맨하임(Mannheim)에서 잠깐 내려 우왕좌왕 환승했다. 두 번째 기차에서 자다 깨다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현지시각 09시 51분, 파리 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에 살며 ‘A Movable Feast’ 란 표현을 남겼다. 부르봉 왕가 루이 14세부터 프랑스 공화국의 마크롱 대통령 시절까지, 파리만큼 이름만으로 대중들에게 낭만과 설렘을 안기는 도시가 역사상 또 있을까.
<Empire state of mind>의 뉴욕과 <라라랜드>의 LA 같이 자본을 등에 업은 미국 대도시에게 화려한 설렘의 자리를 조금은 양보한 모양새지만, 수백 년간 서양 문화의 수도로서 미식과 의복에 끼친 영향력과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헤리티지를 보면 이곳이 낭만의 도시 타이틀만큼은 넘겨줄 의향이 전혀 없단 걸 알 수 있다.
숙소로 가려면 파리 시내 교통 티켓인 나비고 패스 (Navigo Pass) 일주일권을 끊어야 했다. 행인들에게 물어 지하철 서비스 센터를 찾고, 그 뒤로 길게 늘어선 줄 맨 뒤에서 캐리어를 깔고 앉았다.
북적북적, 독일보다 정신없는 파리의 첫인상. 독일이 깔끔하게 다려 입은 흰 셔츠에 기능성 바람막이를 걸친 직장인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라면, 프랑스는 살짝 늘어진 흰 티셔츠 위로 생전 처음 보는 빈티지 재킷을 걸친 젊은이가 잎식물 화분을 왼팔에 끼고 걷는 모습만 같다. 꼭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 옷차림도 그러하다.
조금 낡았을지 언정 고루하지 않다. 편하게 입었지만 살짝 드러난 발목만으로도 느껴지는 우아한 여인의 몸매 같은,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싶은 도시. 그래서 파리를 낭만이라 부르나 보다. 우리가 아늑한 집과 따뜻한 밥을 뒤에 두고 여행길에 올라 밑창이 닳도록 걷고 낯선 잠자리에 몸을 뉘이려 하는 것처럼.
숙소는 센 강변, 바스티유 광장 근처 파리 제12구에 위치했으며, 에어비앤비를 통해 4박 일정을 미리 예약해두었다. 한번 환승을 거치고 지하철 역에 내려 도보로 2분 정도 걸으니 11시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맡길 수 있는 시간은 12시부터라 시간이 조금 떴는데, 늦은 아침을 챙길 겸 동네 빵집 중 가깝고 평이 좋은 곳으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새벽 2시에 일어나 물 말고는 배에 집어넣은 것이 없었다.
공복을 인지하니 배고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맥북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잔뜩 앉아있는 카페를 지나 절반 조금 못 되게 손님이 앉은 작은 빵집으로 들어갔다. 스윽 빵 진열장을 바라보다 퀸-아망(kouign-amann, 여러 얇은 겹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달콤한 파티쉐리)과 마끼아또(Macchiato,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얹은 커피)를 주문해 자리에 앉았다.
그다지 따뜻하지도 않은 빵을 깨어물었을 때, 대충 내린 것 같이 보이는 에스프레소 위에 슬쩍 얹힌 우유 거품이 입술에 닿은 순간, 미뢰가 내게 전달한 말은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였다.
어느 TV프로에서 개그맨 출신 치과의사가 나와 한국 치과의사의 기술 실력이 매우 높다며 자랑하는 걸 본 적 있다. “외국 나가보면 우리나라 치과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 지를 알게 됩니다. 동네 조기 축구회에 호날두랑 메시가 뛰는 격이에요.”
이 집의 퀸-아망을 깨물었을 때 심정이 이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프랑스 동네 빵집에선 메시가 빵을 굽고 손흥민이 커피를 내린다. 편하게 들린 집 앞 빵집이 이러하니 굳이 다른 빵집을 더 찾아다니는 수고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비몽사몽에 오자마자 아무 빵이나 골라 집어넣은 게 이런 맛이라니, 어찌 됐던 파리에선 빵을 아주 많이 먹어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Ble Sucre (7 Rue Antoine Vollon, 75012 Paris) >
빵을 다 먹고 맥북을 꺼내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내 친구와 그의 회사 동료였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내 친구는 개발자로 독일에 출장을 왔고, 그 뒤로 휴가를 붙여 나와 파리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와 같이 온 회사 동료도 사흘 정도 함께 다니기로 했다.
이렇게 셋. <고독한 미식가>처럼 마음의 소리를 독백으로 내뱉지 않는 현실에서, 느낀 바를 공유하며 감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흐레 홀로 여행 끝에 본 못난 내 친구 얼굴이 그렇게나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근처 숙소로 집주인을 만나 함께 짐을 맡기고 키를 받았다. 혹시 이른 입실이 가능한지 물어봤지만 아직 청소 업체가 집을 정리할 시간이 더 필요한 듯했다. 베를린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건너온 이들은 아직 점심을 못 먹었다. 나도 조금 전에 퀸 아망을 먹긴 했지만 그걸로 배가 찰리가 없었다. 시간이 빌 때 파리의 첫 점심을 함께 들기로 했다.
멀리 갈 것 없이 구글 지도로 숙소 근처에 적당히 괜찮은 식당을 찾았다. 집에서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Eat mama’s>라는 캐주얼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었다. 찾아보니 빅마마 그룹이라는 요식업 회사에 속해 있는 음식점으로, 평점도 좋고 한국인들이 남겨 놓은 리뷰도 괜찮았다. 야외 테이블 자리에서 쭈뼛거리며 서성대다가 밖에 있는 직원에게 바깥 자리에 앉아도 되는지를 묻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 유럽 식당에서 주문하시는 분들은 한국과 사뭇, 아니 매우 다른 문화 때문에 당황해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어려움을 겪는 정도면 다행이련만, 문화적 차이 때문에 현지인에게 의도치 않은 무례를 범하기도 한다. 이곳 사람들도 또 당하고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라 직원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관광객 입장에선 자신의 실수를 전혀 모르니 대뜸 자신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인종차별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즐겁게 돈 쓰며 여행하러 온 한국인은 괜히 감정이 상하고, 현지인들도 한국 관광객에 대한 나쁜 선입견이 생기는 것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유럽을 여행할 때는 마음가짐을 살짝만 바꾸면 많은 문화적 차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한국에서 ‘서비스’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는 ‘우리는 돈을 내고 이 사람들의 용역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식당, 옷가게, 서비스 센터 어디에서든,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갑의 위치에 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유럽은 이와 전혀 다르다. 소비자와 제공자는 동등하고, 이들의 관계는 돈으로 맺어진 하청이 아니라 단순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일 뿐이다. 따라서 서비스직 종사자 입장에선 친절하고 즉각적인 응대가 의무가 아니다. 소비자가 구매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명령이 아니라 ‘요청’이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주문을 할 때는 한국 식당처럼 손을 번쩍 들어 슬쩍 호출하는 몸짓조차 결례가 될 수 있다. 이는 자기 집 개를 부를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불쾌함을 자아내는 행동이다.
따라서 파리에서의 음식 주문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곧장 자리에 앉지 않고 잠시 서서 웨이터가 다가와 자리를 안내를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금 조급한 마음이 든다면 조심스레 직원에게 혹시 빈자리에 앉으면 되는지 물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마자 부산 재래시장에서 하듯 “이모, 여기 돼지 국밥 두 개요!”를 외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웨이터가 바로 주문을 받으러 오진 않는다.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을 전담할 수 있는 준비가 되면 메뉴판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그를 기다려줘야 한다. 다가오는 웨이터와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Bon jour’하고 인사를 건네자. 유럽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인사가 모든 일의 시작이다. 웨이터는 메뉴판을 건네 주고 자기 할 일을 하러 떠날 것이다. 그러면 찬찬히 메뉴를 살펴보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곧장 질문해도 괜찮다. 지인들과 상의를 하고 메뉴를 고른 뒤에는 메뉴판을 덮어두면 된다. 메뉴판이 펼쳐져 있으면 웨이터는 우리가 아직 무엇을 먹을지 못 고른 상태라고 판단해 주문을 받으러 올 기색도 비치지 않을 수 있다.
주문을 하고 싶다면 담당 웨이터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공손히 기다리면 된다. 기다림이 지칠 때쯤이면 웨이터(Waiter)의 어원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파리의 식당은 여유를 배우는 곳이다. 너무 조급한 마음이 들거나 혹시나 우리 테이블을 못 봤다는 생각이 든다면 담당 웨이터가 지나갈 때쯤 살짝 손바닥을 들어 존재를 알리는 정도는 괜찮을 수도 있다.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주문을 받으러 올 것이다.
프랑스 식당의 주문은 기본적으로 음료(술, 커피, 물), 음식, 디저트로 구성되어 있어 개인별로 하나하나를 다 시키는 것이 당연한 풍조다. 격식 있는 레스토랑의 경우 음료마저 식전, 식중, 식후로 나눠 여러 차례 주문하기도 하지만, 길가의 대중적인 식당의 경우 음료와 음식을 1인당 하나씩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적으론 보통 점심에 맥주나 와인을 한 잔 시켰는데, 커피를 시키거나 그도 아니면 생수를 시키는 것도 괜찮다. 괜히 밥값이 더 드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나라의 로마법이자 서비스를 제공받는 값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한국 술집에서 소주만 시키고 안주를 주문하지 않는다거나 카페에 가서 4명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시킨다고 생각해보자. 불법은 아니지만 손가락질 하고 싶을 만큼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
음식을 다 먹고 나눌 이야기가 바닥났다면 이제 계산을 하고 나갈 차례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와 같이 벌떡 일어나 카운터에서 신용카드를 들이미는 건 파리답지 못한 행동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순간까지도 여유를 가슴에 새기며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한다.
음식을 다 먹고 수저와 포크를 내려놓고 있으면 웨이터가 다가와 계산서를 가져올지 묻는다. 계산서는 아마 가죽 포켓 안에 담겨 가려진 채로 전달될 것이다. 만약 카드로 지불할 생각이라면 계산서를 받을 때 카드로 지불할 예정이라고 미리 웨이터에게 귀띔해주자. 다음에 올 때 휴대용 카드 리더기를 가져와 조금 더 신속하게 결제할 수 있을 것이다. 현금이나 카드를 계산서가 든 가죽 포켓에 넣고 웨이터에게 전달하면 이제 정말 끝이다. 식당 분위기 따라 다르겠지만 길을 걷다 들어가는 평범한 카페테리아에서는 미국 정도로 팁이 의무시 되지는 않는다. 내 경우에는 정말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던 경우에만, 지폐로 지불할 때 잔돈 1-2유로를 팁으로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빵의 여운이 남아있어 화이트라구 파스타와 마-마르게리따 피자, 두 접시를 나눠 먹기로 했다. 생맥주 한 잔씩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각자 다른 도시에서 독일 음식에 힘이 잔뜩 빠져있던 우리에게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부자는 망해도 십 년 가고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세계 무형 유산에 등재된 프랑스의 미식 문화의 힘은 그 아래까지 뻗쳐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 줬다. 별 검색도 없이 입에 넣은 첫, 둘째 식경험이 이렇게나 마음에 쏙 드니 열흘 남은 앞으로의 파리가 더욱 기대됐다. 베를린 공항에서, 그리고 또 뮌헨 역에서 하늘을 가르고 국경을 헤쳐 이곳에서 만난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건배했다.
세시가 조금 넘어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와인 한 병을 사 와, 오자마자 코르크를 따서 함께 절반을 비웠다. 밀린 빨래까지 하고 나니 나른한 여독이 밀려왔다. 우리 셋은 각자의 방식으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누군가는 소파에 누워 벽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누군가는 탁자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파리 여행 가이드북을 뒤적거렸다. 또 누군가는 이층 침대에 올라가 휴대폰을 보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첫날 저녁은 함께 식재료를 사 와 요리를 해 와인을 곁들여 먹기로 했다. 메뉴는 소고기 스테이크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자취와 연애를 해 본 남자 대학생이라면 한번쯤은 도전해봤을 메뉴다. 다 같이 낮잠에서 깨어나 근처 대형 마트(까르푸)에서 파스타 재료를 사고, 오는 길에 점찍어 놓은 정육점에서 소고기 등심을 사 왔다.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야 저렴하니 푸짐하게 먹을 요량으로 등심 1kg을 사려했는데, 소통의 오류로 정육점 주인장이 2kg는 족히 될 덩어리를 뭉텅 잘라버렸다. 내일 저녁에도 또 해 먹지 뭐, 그냥 전부 달라고 하여 나왔다. 파리의 길가에는 정말 어느 블록을 가나 와인샵이 하나씩은 있다. 한 곳에 들러 10유로 내외로 소 등심과 곁들이기 좋은 와인 한 병을 추천받아 들고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도 비닐로 포장을 많이 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과 프랑스는 고기를 자르면 종이봉투에 담아서 주었다. 안은 코팅 되어 새거나 묻지 않는 재질로 되어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봉투를 펼쳐 고기를 확인했다.
프랑스의 등심은 마블링 하나 없는 선명한 붉은빛이었다.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탄력 있고도 부드럽운 질감이었고 발색은 선명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한국과 달리 소고기의 마블링에 대한 거부감이 대단하다. 마블링을 풍미의 척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인 지방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실 한우 등급 판정에 사용되는 마블링(Marveling)은 단지 근육에 얼마나 많은 지방이 끼어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필요 이상의 고열량을 섭취한 소의 피하지방이 축적되다 못해 자리를 못 찾고 근육 사이를 파고들어 가 생긴 것이 마블링이다. 지방은 고소한 풍미과 부드럽게 흐르는 기름기 섞인 육즙을 만들어 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공장형 축산을 통해 풀 대신 곡물을 먹으며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소의 몸뚱이가 있다.
동물 복지나 건강-웰빙을 떠나 맛의 측면에서도 지방이 많이 낀 고기는 몇 점만 먹어도 금세 물린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 눈에도 올바른 초식을 하며 길러진 것 같은 육향 짙게 밴 붉은 살코기 단면을 선호한다. 지방의 풍미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떤 지방보다 풍미가 풍부한, 이 나라가 자랑하는 버터를 요리에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스테이크는 하얗게 굳은 마블링을 녹여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과하게 굽지 않고 대신 향과 육즙을 보존할 수 있도록 낮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것이 정석이다. 이 나라의 소고기를 직접 보니 많은 프랑스인이 스테이크 굽기로 레어를 선호하는 이유가 이해 되었다.
*단백질(미오신)보다 지방의 변성 온도가 더 높다.
내가 요리를 담당하긴 했지만 사실 이날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애초에 2구 인덕션(하이라이터)으로 3명이 먹을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동시에 조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리가 아닌 ‘요리’로서 한 상을 차려내기 위해서는 최소 3구, 그리고 가능하면 직접 화력이 전달되는 가스불이어야 한다. 레스토랑에서 인덕션으로 장사하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사실 장비탓을 하기에는 애초에 파스타 간도 잘 못 맞췄고, 위에선 장황하게 레어로 구워야 한다고 말해놓고선 소고기를 거의 미듐과 웰던 사이로 오버쿡해버렸다.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와 그의 동료가 고마웠다. 와인샵에서 사 온 어린 프랑스 와인 두어 병을 오픈해서 잔에 미리 따라두었다. 이런 식으로 저녁을 먹으면 뭔 들 맛이 없을까. 맛이 기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분이 맛을 만든다. 파스타에 곁들일 양으로 사 온 별 기대도 안 했던 새우도 놀랄 만큼 맛있었다. 비리지 않고 녹진하면서도 달고 고소한 향이 일품이었다. 프랑스가 좋은 식재료의 천국이란 말을 들었지만 정말 다채롭게 훌륭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좀 걷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기엔 조금 불편한 울퉁불퉁한 돌이 깔린 길, 열을 많이 배출하고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백열 전구등. 그러나 그 이국적이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거리가 우리가 파리를 찾는 이유가 아니었나. 가로등에 비칠 만한 빗줄기가 얇게 내렸고 나는 재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의 대사가 떠올랐다. ‘Paris is the most beautiful in the rain(파리는 비가 올 때 제일 예뻐요).’ 나는 갑작스러운 비가 올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좁은 뒷골목을 겁도 없이 걷고, 근처에 생마르뗑 운하 (Canal Saint-Martin)이 있어 그 길을 따라 바스티유 광장까지 걸어갔다. 운하 주변에는 꽤나 큰 쥐들이 뛰어다녔고, 플라스틱 천막을 친 노숙자들도 보였다. 나는 한번 경험해 본 일이고 또 큰 거부감이 없어 괜찮았지만 처음 파리에 온 사람들이 기겁하기도 하는 광경이다. 새삼 느끼지만 세상에 완벽한 장소는 없다.
생마르뗑 운하를 내려가 다리 아래로 배들이 정박해있는 아르스날 항구(Port de l’arsenal)를 지나, 바스티유 광장과 오페라를 지나쳤다. 그 뒤를 걸으니 오래된 아치형 고가 철로 다리 사이 공간을 유리로 막아 실내로 탈바꿈한 뷔아뒥 데 자르(Viaduc de Arts)와, 그 위 폐쇄된 철길에 만든 하늘 정원이 보였다. 다리 사이 공간 하나하나는 갤러리, 인쇄소, 공방이 되어 긴 아틀리에 거리가 되어있었다. 비록 문은 닫아 들어가 보지 못하고 하늘 정원도 멀리서만 바라봤으나 훌륭한 도시 재생 사례라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한국의 경의선 숲길, 그리고 서울역 7017 공원을 생각했다.
꽤나 긴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식탁에 앉아 남은 술병을 비우며 앞으로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면 오늘 세 명의 역할 분담이 나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같이 갈 만한 흥미로운 장소를 찾아 알려주었고, 또 숙소에서는 요리를 맡았다. 친구 회사 동료(Y씨)는 꼼꼼하게 세부사항을 확인하는 능력이 있어 자연스레 총무가 되었다.
너는 어떤 역할을 하겠냐는 내 질문에 내 친구 K는, ‘존재로서의 의미와 자유로움의 상징’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아, 이런 거에 웃어주면 안 되는데.
밤이 깊어 자리를 치우고 누워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설레는, 첫날의 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