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육각형 도시 슈투트가르트

9.02 슈투트가르트에서

by 이원장

지나온 공간 : 하이델베르크 역, 슈투트가르트 슐로스 광장(Schlossplatz), 슈투트가르트 인터내셔널 유스호스텔


하이델베르크 역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아침에 사둔 사과를 점심 삼아 씹어먹으며, 절뚝거리는 왼 다리로 캐리어를 끌고 정류장에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에 맞게 도착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버스는 정차한 채 출발하지 않았다. 승객도, 기사도, 버스도 있었는데 시간이 되어도 출발하지 않았다. 아마 그 이유는 미결로 남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여하튼 그래서 버스는 예상보다 15분 늦게 출발했다. 슈투트가르트행 기차는 역에서 14시 32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돌고 돌아 출발한 버스가 나를 기차역 앞 정류장에 내려준 시간이 31분이었다. 왼 무릎에 대한 생각은 뒷전에 둔 채 캐리어를 공중에 띄우다시피 하며 일단 승강장을 향해 내달렸다. 겨우 승강장에 들어서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멀리서 막 떠나가는 기차가 하나 보였다. ‘아닐 거야, 꿈일 거야’ 그렇게 속으로 빌었건만, 지금 떠난 기차가 바로 그 기차가 맞았다.


몇 번의 위태위태한 상황을 연출하더니 드디어 기차를 놓쳤다. 애석하게도 독일에선 한국과 달리 얼마간 환불마저 기대하기 어려웠다. 잊고 있던 무릎이 지끈거렸다. 오래간만에 달려 열나고 흥분한 몸에 급작스러운 분노가 올라왔고, 온통 감정을 뒤덮기 시작했다. 가만히 굴다리 밑 음지의 벤치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선득한 바람이 목 뒤로 불며 땀을 식혔다. 심호흡은 자꾸 한숨이 되어 주변 땅을 꺼트렸다.


다음 열차는 한 시간 뒤 출발 예정이었다. 숨을 고르며 이런 감정의 원인, 그 밑바닥을 파고들어보려 애썼다.


늦게 온 버스 때문에?

무릎이 아파서?

배가 고파서?

그렇게 지연되던 기차가 하필 딱 오늘 1분 지연도 없이 출발해서?

달려왔는데 기차를 눈앞에서 놓쳐서?


사람은 아쉬운 순간에, 자신이 기대하는 바가 좌절될 때 가장 화가 난다. 통증을 참고 마구 달려왔는데 직전에 기차를 놓치니 아쉬웠을 터이다. 나는 ‘절대 못 탈 거야’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헐레벌떡 지연된 기차에 겨우 탑승하는 나 자신을 은연중에 상상하고 있었다. 그 통제되고 아름다운 그림이 찢기니 화가 났다.


하지만 가만 생각하면 애초에 너무 늦게 버스에서 내렸기 때문에 기대할 연유가 없는 그림이었다. 사실 1분 안에 누가 역전 정류장에서 역내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겠나? 그저 ‘잘하면 탈 수 있었을 텐데 달려볼 걸’이라는 후회를 없앨 정도만 최선을 다해 달리고, 그냥 그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다. 버스가 지연될지도 모른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으면 십분 더 일찍 나섰어야 했다. 기차는 그저 제시간에 떠났을 뿐이다.


핑계를 비빌 곳은 없고, 그나마 탓할 것이 있다면 조금 안일했던 나 자신이었다. 결국 다 내 탓이었고, 지나간일로 남은 시간을 벌겋게 썩히고 있는 사람도 나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릴지, 계속 씩씩대며 남은 한 시간을 보낼지. 나는 전자를 선택해보기로 했다. 잔뜩 가쁘게 성난 호흡을 잠시 앉아 분석하고 있으니 다시 숨을 천천히 고를 수 있었다.


정신의 문제를 생각으로 날려 보내니 몸이 남았다. 숨 가쁘게 달려와서 떠난 기차를 바라봤을 때 땅을 발로 차고 벽을 주먹으로 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건, 달려온 만큼 흥분한 몸 때문이었을 테다. 배가 고프고 무릎도 아팠다. 육체에 연료를 주고 힘을 빼며 쉬기로 했다. 그래야 예민해진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역사 안에는 나름 유명한 지역 체인 빵집이 있었다. 유리창에 진열된 케이크와 빵을 보며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애플파이를 골랐다. 평소에는 혼자 잘 먹지도 않는 제과류지만 이날은 단것이 좀 필요하다 느꼈다. 애플파이와 마끼아또를 주문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이왕 놓친 거 느긋하게 지나가는 한 명 한 명의 표정과 걸음걸이까지 유심히 지켜봤다.


금발 머리에 안경을 낀 남자가 말쑥한 정장을 입고 옆구리에는 브리프케이스를 낀 채 인상을 찌푸리며 서둘러 뛰걷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으로 검정 레깅스에 분홍색 줄무니 티셔츠를 입은 통통한 여학생이 큰 헤드셋을 검정 폭탄 머리에 인 채 산들한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었다.


저 둘도 같은 기차를 타는 걸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개인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일 테다.


아삭하고 달콤한 애플파이를 베어 물고 뭉근하고 고소한 라테로 입안을 적셨다. 몸이 좀 풀리고, 그러니 흥분이 가라앉고 분노가 잊혔다. 세포 덩어리의 시스템이 참 얄궂다. 이렇게 화가 가시다니.

다음 기차를 타고 두어 시간쯤 걸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역 안은 매우 혼잡하고 정신없었다. 대공사를 하고 있는 중인지 임시 표지판과 철제 가림판이 가득했고 나가는 길은 복잡하고 얽혀있었다. 몇 번을 이리저리 헤매고 방향을 바꾼 끝에 역을 나와 슈투트가르트의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슈투트가르트.

한국의 해외축구 팬들에겐 분데스리가 팀명으로 더 잘 알려진 도시. 그러나 슈투트가르트의 위상은 그보다 훨씬 위이다. 독일에서 6번째로 큰 대도시(통근권을 포함하면 3번째)로 공업, 교통, 경제의 중심지이며 프랑크푸르트 못지않는 영향력을 가진 독일 남부권 최대 도시이다.


포르쉐, 보쉬, 벤츠의 본사와 공장은 물론 수 백대의 슈퍼카와 클래식카를 전시해둔 모터월드가 위치해 있어 '자동차 도시'로 불리기도 하며, 대외적으로 유명하진 않아도 시민의 사랑을 받는 실속 있는 주립 박물관과 과거 강수진 발레리나가 활동했던 세계적인 명성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및 오페라 하우스가 위치한 문화 도시이기도 하다.


*뮌헨에 자리 잡은 BMW(Bayerische Motoren Werke ; 바이에른 모터 워크)와 슈투트가르트에 자리 잡은 벤츠 사이의 도시 대결 구도는 유명하다


서유럽에서 보기 드물게 숲과 언덕이 많은 자연 친화적 도시이기도 하다. 평지에 위치한 독일 다른 대도시들과 달리 분지 지형으로 요철이 많아 일단 산이 많다. 다른 유럽 도시들이 일자 해변과 수평선이 펼쳐진 망망한 동해 바다 같다면 슈투트가르트는 중간중간 녹푸른 섬이 장식처럼 박혀있는 남해의 다도해상국립공원이 떠오른다. 중앙역을 나오면 사람들이 오가는 도심 멀리 너머에 우리나라처럼 야트막한 뒷산이 이어져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슈투트가르트에는 산과 비탈을 포함한 녹지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고 네카어 강이 흘러 도심 근방에서도 농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독일 레드 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한데, 나를 굳이 이곳에 방문하게 만든 와인 축제가 매년 열리는 고장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슈투트가르트는 자연, 금융, 문화, 공업, 농업 등 빠지는 분야 없이 꽉 찬 육각형 능력치를 보여주는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역을 나오니 도시 중심의 쾨니히 거리로 건너는 큰 횡단보도가 있었다. 무릎은 여전히 툭툭 거리는 통증이 있었고, 병원을 가긴 어려워 소염진통제를 사 가기로 했다. 길을 건너자 오른편에 Apotheke(약국)가 하나 있었다. 독일 약국도 한국처럼 가운을 입은 약사가 처방전을 받거나 환자의 요청에 맞는 약을 내주는 형태였다. 다른 점으로는 안쪽으론 조제 로봇이 있어 쉽고 빠르게 약을 조제했고 한쪽엔 상담 공간이 구획으로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약사의 역할로 ‘상담과 복약 지도’를 들은 적 있는데 독일에서는 긴밀한 상담이 가능해 보였다. 나는 무릎 통증을 위한 소염진통제를 요청하며 혹시 나프록센이 있다면 그걸로 달라고 했다. 약을 받아 계산하고 나왔고, 좀 덜 아프기를 기대하며 곧장 한 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독일 약국에 들어서면서 가장 처음 본 것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차’였다. 최소 수십 종류는 되어 보이는 차 제품 라인업을 보고 있자니 녹차, 홍차, 우롱차와 같이 단순 향미를 위한 차가 아닌 게 분명했다. 티백 외에도 환자가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허브 계열 의약품이 아주 많았다. 바르고, 뿌리고, 마시는 약 등 종류도 매우 다양했다. 아로마 테라피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허브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이완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고, 마음을 가볍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발전한 방식은 질문과 해답, 그것을 뿌리 깊은 과학과 통제된 설계를 통해 이성적인 논리로 찾는 과정이 아니었나. 아무리 허브티가 좋다 해도 눈이 맑아지거나 관절통을 제거하는 데에 임상과학적으로 유효한 논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전문가인 약사가 처방의 개념에 가깝게 이를 권할 정도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것도 한의학도 아닌 양의학에서 말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의료 기술 선진국 중 하나인 독일에서….

나중에 찾아보니 독일에서는 의사가 진찰을 보고 처방으로 차를 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소염진통제를 비롯한 약, 특히 항생제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하기 때문에, 민간 로컬 의원에선 정말 아프고 심각한 상황에서나 항생제를 처방해준다고. 추후에 만난 독일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가장 많이 받았던 처방이 이렇다고 했다. “아, 머리가 아프고 콧물이 정말 많이 나는구나. 어젠 열이 올라서 몸이 뜨거웠다고? 흠, 일단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약국에서 ‘이완 효과가 있는’ 허브차를 사서 한번 마셔봐.” 항생제 오남용도 문제지만 이런 식이면 이것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겠단 생각을 했다.


약을 먹고 걸으며 둘러본 쾨니히 거리는 한국 중소 도시의 중심에 있는 ‘시내’를 닮아있었다. 차가 들어오지 않는 적당히 매끈한 돌판 길에 가로수가 간간히 놓여있고 좌우 상가에는 식당과 옷가게가 있는, 명동 거리의 축소판 같은 느낌. 한국과 다를 게 없다면서 별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그 익숙함이 싫지 않았다. 이날은 진부함이 친숙함으로, 그리고 편안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숙소 방향을 잘못 들어 헤매다 예정에 없던 슐로스 광장 (Schlossplatz)으로 들어서게 됐다. 좁은 건물 사이 길을 지나고 눈을 들었는데 덜컥 광장이 나타났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기념비를 보고 주위를 둘러보자, 나는 이곳을 더 극적으로 만나게 해 주려 신이 날 헤매게 했나하는 착각을 했다.


광장은 탁 트여 있지만 공허하지 않고 활기가 넘치지만 번잡하진 않았다. 한가운데 기념비를 중심으로 분수대와 잔디밭이 마음 편한 대칭을 이뤘다. 잔디밭과 나무 공원이 자리 잡고 멀리 Eckensee라 불리는 넓고 얕은 잔잔한 연못이 하늘을 그대로 비췄다. 거위와 기러기는 무리 지어 날고 사람들은 뛰어놀았다. 기념비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만들어진 잔디 구역 사이로 U-Bahn(독일 지하철) 역이 올라와 시민들이 오르내렸다. 그리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면 유리 외벽을 사용해 현대적으로 지어진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이, 이제는 관공서로 쓰인다는 오래된 석조 건물 신궁전(Neues Schloss)이 네모나고 널찍한 공간을 감쌌다.

다른 유럽의 광장과 비교해 느껴지는 확연한 차별점은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산자락이 아니었나 싶다. 마치 우리가 경복궁이나 청와대의 정면을 바라보면 뒤편에 든든하게 자리 잡은 인왕산 자락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움푹 파인 슈투트가르트 분지 지형을 감싸는 얕은 산들이 줄지어 펜스처럼 둘러져, 마치 자애로운 산신이 팔을 뻗어 둥글게 말아 모든 인공적인 것들 - 대칭 배열된 분수와 잔디밭, 높게 솟은 기념비, 얕고 넓은 인공호수, 유리벽 미술관 - 을 품어주는 형국이었다. 신궁전을 배경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뒷산을 보며 채도 높은 인왕제색도를 떠오르기도 했다. 유럽을 몇 차례 다니며 아주 많은 광장을 가보진 못했지만, 나에게 순위를 매기라면 이날 오후 6시의 슐로스 광장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할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생기가 넘치되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자연과 문화, 활기와 고요가 대조를 이룬 듯 섞여 조화를 이뤘던 슐로스 광장. 여인을 보듯 누구에게나 반하는 순간이 있고 취향에 가까운 이상형이 있는 법이다. 내 눈엔 그날 그곳이 유독 아름답게 비쳤다.

슐로스 광장(Schloss Platz)

숙소로 가는 길에 Rewe 마트에 들어가 저녁거리를 좀 샀다. 점심을 과일과 빵으로 대강 때웠으니 저녁은 알차게 단백질로 채우고 싶었다. 닭안심 한 팩, 계란 열 알, 핑크빛 맛나 보이는 훈제 족발 그리고 뤼데스하임에서 생산한다는 아스바흐(Asbach : 독일 브랜디의 한 종류, 36도)까지. 아스바흐는 뤼데스하임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드는 브랜디로, 오랜만에 도수 높은 증류주를 홀짝이고 싶었다. 독일에서만 팔기도 하니까 이제 언제 먹어보나 싶기도 하였고. 고깃덩어리와 독주를 보고 있자니 먹지도 않았는데 며칠은 버틸 듯이 든든했다.


지도는 최소한으로 활용하며 정처 없는 걸음으로 거리를 구경했다. 대도시이긴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처럼 빌딩 일색이기보다는 개성 있는 디자인의 건물들이 많았다. 언덕과 경사지가 있어 환경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더 재미있고 독특한 설계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노출 콘크리트 시공의 건물이 많이 보였다. 다만 그 마감과 평균적인 완성도는 독일 건물들이 압도적으로 수준 높았다. 한국에서 일부 건물이 낮은 완성도로 귀결된 부족한 의지와 능력을 일부러 선택한 너저분한 감성으로 포장하는 걸 본 적 있었다. 내부 천장은 울퉁불퉁해 곧 시멘트 조각이 떨어질 듯하고 하다 만 페인트칠이 벗져진 벽, 외벽에는 뜬금없는 단차와 미묘한 회색의 부조화. 내가 걷던 슈투트가르트 거리의 일상적인 건물은 그런 요행이 없었다. 낮은 퀄리티를 취향이라고 들이밀며 부족함을 변명하는 대신 정직하게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으로도 자기만의 감성을 드러낼 수 있단 걸 독일 건물 디자인은 보여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독일 건물. 눈과 발이 즐거웠다.

참, 경사지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설계의 밑바탕이 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분지 지형은 심심하지 않은 전경과 도시를 둘러싸는 든든한 뒷산의 배경이 된다고 했지만 이 날 내겐 지옥의 원인이었다. 15kg가 넘는 캐리어와 백팩, 저녁거리를 끌고 밀며 30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30분 정도면 나의 두 다리로도 괜찮으리라 판단해 의욕 넘치게 거리를 쏘다녔지만, 숙소에 가까워질수록 경사도는 매우 가팔라졌다. 시지프스는 도대체 어떤 심경으로 바위를 꼭대기로 밀어 올렸나? 특히 중간에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아도 끝이 안 보이는 긴 계단이 하나 있었는데, 끝에 오르니 로마네 분수 ‘진실의 입’ 같은 장식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래로 흐르는 물을 뱉는 그 주둥이를 보고 이곳을 ‘통곡의 계단’이라 명명했다. 경사지는 마치 인생과 같다. 멀리서 볼 땐 희극이고, 가까이서 걸을 땐 비극이어라(이러한 이유로 슈투트가르트의 자전거 활용률은 독일 대도시 중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중간에 멈춰서서 찍은 사진. 위로 수염 난 얼굴 모양의 물 배출구가 보인다.

그나마 경사 급한 계단을 오르고 나니 완만한 오르막만 이어졌다(편했다는 뜻은 아니다). 숙소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에 커다란 유리빌딩과 거기로 이어지는 공중 유리 다리를 발견했다. 구글 지도상 위치가 맞긴 한데, 도무지 내가 아는 아늑한 호스텔의 이미지로는 보이지 않고 건축 사무소와 로펌 사무실이 임대로 들어와 있을 법한 크기와 외관의 건물이었다. 긴가민가 하고 있던 찰나,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 한 분이 나처럼 캐리어를 끌고 내 쪽으로 오고 계셨다. 그에게 혹시 여기가 호스텔이 맞는지 물으니, 할머니도 호스텔로 가는 길인데 맞는 것 같다고 하셔서 함께 다리를 건너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행히 4층으로 가니 리셉션 데스크여서 천천히 체크인을 했다.


슈투트가르트 인터내셔널 유스호스텔. 이것이 숙소의 이름이었다. 큰 빌딩을 통째로 사용하는 글로벌 체인 호스텔 기업으로 보였는데 안에 대형 세미나실과 대형 식당, 프로젝트 룸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객실은 최소 수십, 백여 개는 되어 보였다. 숙소는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가 짐을 풀고 여독을 풀 샤워를 했다. 시간이 벌써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맙소사, 이곳은 깨끗하고 사무적인 외관을 증빙하듯 공용 주방이 없고 대신 조식이 제공되는 식당만 있었다. 물어보니 음식을 가져와서 먹는 건 되지만 조리할 수 있는 재료, 기구 등은 없다고 했다. 이틀간 이곳에서 머무를 예정이었는데, 계란은 둘째치고 닭안심은 꼼짝없이 버리게 된 꼴이 되었다. 흠잡을 데 없다고는 했지만 고기를 사랑하는 내게 가장 커다란 흠이 있었다. 이곳은 스테이크가 불가능하다.


그나마 소안심을 사려다 닭안심을 사서 덜 배아팠고, 훈제로 조리된 족발을 사 와 배를 채울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고기와 빵을 가져와 자리를 잡고 나서야 알았는데, 호스텔 식당의 뷰가 기가 막혔다. 심지어 작은 문을 열고 나가면 야외 발코니가 있어 산과 도심이 어우러진 전경을 보며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었다. 도무지 40유로짜리 호스텔 뷰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주얼과 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족발은 정말, 정말 너무 짜서 우유로 한번 씻어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살겠다는 의지로 우적우적, 간이 안 된 퍽퍽한 빵과 함께 씹어먹었다. 그래도 석양이 아주 예뻤다. 식고 짜고 퍽퍽한 음식의 분위기와 다르게 석양 햇살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찬란했다. 아스바흐(Asbach)의 뚜껑을 툭 열어 컵에 왈칵왈칵 따라 부었다. 이 날은 어째 시원한 언더락으로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여기에 그런 것이 준비되어있을 리 없었다. 소금기를 씻을 겸 니트로 들이부었다.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알코올 치는 것 없이 부드럽고 포도 향이 진했다. 맛은 지금껏 한국에서 마셔온 다른 브랜디보다 훨씬 진한 무게감이 느껴져 도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순간 얼음만 있었으면 완벽했을 텐데.

Asbach. 가격도 저렴하니 마트에서 사 한번 쯤 경험해보는 걸 추천한다.

알코올을 좀 넣으니 오늘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하는 것만 같고, 기차를 놓치고 음식은 잘못 사 오고 아픈 다리로 오르막길을 한참 삐걱대는 하루였지만 여하튼 여기 잘 와서 태양을 보고 있단 게 고맙고 대견했다. 혼자 다 진 해를 안주 삼아 한 모금 씩 술을 털어 넣었다.

대뜸 보이스톡이 울렸다. 현지 시각 저녁 9시, 한국 시간 익일 새벽 4시에. 한국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신 친구였다. 이런저런 사연을 털어놓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어지간히 외롭고 힘이 부쳤는지 그가 참 고맙고 보고 싶어졌다. 그에게 옆에서 함께 여행을 왔으면 참 좋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통화했을까, 그도 집으로 들어가고 나도 이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다음 날 와인 축제를 가기로 했으니 두어 잔만 마시고 혼곤한 정신으로 글을 좀 끄적이다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통과 의례 같은 날인 거야, 생각했다. 처음의 설렘은 좀 잊히고, 아직 익숙하지 못한 사회의 비늘이 날카롭게 느껴지고 고독과 여독이 버무려져 최대한으로 증폭되는 날. 문턱을 넘었으니 내일부턴 나아지겠지. 다음 날엔 신나길 빌었다.


다섯 번째 밤, 내 마음만 빼고 모든 것이 조화로운 슈투트가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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