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독일인의 자전거 사랑

09.01 프랑크푸르트에서

by 이원장

지나온 공간 :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 공원, 브런치 카페(Sunny Side up Westend)


셋째 날 아침, 햇살에 자연스레 일찍 깨어나 신발을 신고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으로 향했다. 호카 오네오네(Hoka Oneone) 사의 클리프톤 엣지. 내 족형에 잘 맞아 가끔씩 러닝을 할 때면 꼭 챙겨 신는 신발이다. 실력을 갖춘 취미까지는 못 되어서 3킬로 정도를 30분 왕복으로 가볍게 뛰었다 오기로 했다.


원래 강가의 아침 공기란 것은 실제 오염도와 관계없이 괜스레 맑은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친환경 도시 프랑크푸르트의 강바람은 그러한 심리적 요소를 배제하고 심호흡을 수십 번 반복하여도 여전히 상쾌할 만큼 좋았다. 야외 운동 그룹인지 스무 명쯤 모인 외국인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고 그 앞으로는 걸음 보조기를 양팔에 낀 할머니가 씩씩하게 산보하고 있었다. 금융 중심지의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정장에 헬멧을 쓰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제일 많이 마주쳤다. 한국에 있을 때 한 번씩 평일 오전에 여의도 공원과 그 근방의 한강공원에서 뜀박질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독일은 자전거가 많다.

프랑크푸르트에선 이를 증명하듯 자전거를 위한 편의 시설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어딜 가나 자전거 보관대가 있고 역 앞에는 출퇴근하는 이들의 자전거가 수북하게 쌓여있으며, 트램(Tram) 선과 자동차 선이 어지러이 교차된 도로에도 당당히 색으로 구분된 자전거 도로가 적절한 너비로 인도 옆에 붙어있다. 유모차가 달린 자전거, 카트를 연결해 장을 보는 거대 자전거 등 용도에 맞게 특수 설계된 낯선 자전거도 자주 눈에 띈다. 레저용으로 주로 활용되는 한국의 자전거와 달리 진지한 교통수단이자 필수품으로써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운전자의 태도도 자전거에 매우 호의적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운전자 그 자신도 분명 다른 곳에선 자전거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독일의 이런 선진 문화를 부러워하며 국내 인식과 시설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일부 자전거 이용자들의 몰상식한 태도가 원인이 될 수도 있으나 분명히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자전거의 교통수단으로써 인식이 좋지 않고, 자전거 도로 등 관계 시설도 미비하다는 것이다. 일부 구간에서 관찰되는 인도 내 자전거 도로는 보행자들이 침범하기 때문에 제 속력을 내기 어렵고, 그렇다고 도로를 이용하자니 운전자들의 경적 세례를 받기 십상인 것이 국내 자전거 문화의 현실이다.


노란 불까지 들어오는 자전거 신호등

그렇다면 자전거 관련 제도의 정비와 시설 확충이 있으면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고 독일과 같은 자전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글쎄, 내 생각은 ‘아니올시다’ 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바꿀 수 없는 환경적인 요소다.


첫째, 한국과 독일은 날씨가 다르다. 독일은 겨울을 제외하면 쾌청한 날씨가 주를 이룬다. 한여름엔 물론 온도가 높긴 하나 우리나라처럼 습하지 않아 여전히 자전거를 타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쾌청한 날씨가 적다. 여름엔 덥고 습하며 겨울엔 찬바람이 들고 도로가 언다. 겨울에 아껴둔 강수량이 따뜻한 여름에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다. 봄과 가을은 지구 온난화로 점점 짧아지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재킷 한 장이나 셔츠 한 장 걸치는 날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선 자전거가 주된 탈것이 되기 어렵다.


둘째, 우리나라 도시는 주로 평지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인 나라다. 거기에 더해 전통적으로 한국의 도심과 주거지는 주로 평지 옆에 요철 있는 산간에 형성되어왔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벼농사는 강가를 비롯한 평야에 위치하기 좋아 그나마 적은 평지들도 죄다 농지(논) 용도로 활용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문화나 시민 인식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중국 베이징의 살벌한 자전거 출퇴근 행렬만 봐도 알 수 있다. 평지가 90%나 되는 북경 지역이니, 시민들은 알아서 편한 것을 찾아 자전거를 탄다. 이와 반대로 같은 유럽이지만 1년 내내 흐리고 산지가 넘쳐나는 스코틀랜드는 어떨까. 그들이 자전거를 애용한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햇빛에 대한 인식 차이도 한몫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햇살을 ‘눈부신 자외선’으로 인식하며 직사광선을 피하려 하고 혹시라도 야외에 오래 있을 시 얼굴이 허옇게 뜨더라도 선크림을 꼭 바르려고 한다. 이에 반해 유럽을 비롯한 서양인들은 햇살을 영양가 넘치는 어떠한 기운(?)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마치 광합성을 할 줄 아는 사람처럼 태양 아래 벌겋게 목살을 태우는 것을 즐긴다. 그러고 보니 선크림을 바르는 유럽인은 단 한 차례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이들은 어지간한 비도 우산 없이 맞고 다닌다. 물론 비 맞기를 즐긴다기보다는 신경을 안 쓴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캐나다에서는 학부모들도 비 오는 날 등교하는 아이에게 너는 설탕이 아니니 그냥 비 맞고 다니라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고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독일 전 총리가 바르샤바에서 우산 없이 무릎을 꿇을 수 있었던 건 일단 비를 맞아도 괜찮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럽인들은 비에 젖고 햇살에 달궈지는 것에 관대하다.


1970년 12월,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 나치 희생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진정어린 사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모든 빛나 보이는 것에는 반드시 그 맥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와 환경의 맥락을 무시한 채 무작정 들여오는 제도와 기술은 어설픈 모방 수준으로 남거나, 박힌 돌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갈 뿐이다. 독일 수준으로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고 시설이 많아지면 한국에서도 자전거가 주된 교통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러기는 어렵지 않을까. 다만 현재 서울시의 따릉이 시스템을 확충하거나 지하철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계단에 얇은 자전거길을 설치해 이동을 간소화하는 방식으로 보조 교통수단으로써 자전거를 더욱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자전거 도로의 폭이 넓어져 기존 자동차 도로의 폭이 줄거나 차선이 줄어들면 기존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초 예상보다 이용자 수가 적기라도 한다면 자전거 도로를 포함한 기반 시설의 철폐를 요구하고 세금 낭비를 지적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어설픈 제도 모방은 차라리 도태되어 사라지기만 하면 다행이요, 더 나아가 기존의 그것과 문화-제도적 충돌을 일으키며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과거 조선 개화기에 있었던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은 실패와 성공을 떠나 출발부터 어불성설이었고, 임오군란은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신식 군대만 도입하려던 상황이 가져온 대표적인 문화 충돌이었다. 철학과 사상, 즉 정신문화를 배제한 채 기술과 일부 제도만 차용한다는 생각은 간단해 보이지만 오히려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다. 우리는 몸과 정신, 환경을 분리하여 조절할 수 없다. 공공 기관의 정책 결정 시에도 해당 분야 전문가의 기술적이고 표면적인 조언뿐 아닌, 깊이 있는 사고가 내장된 지식인의 참여와 선택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십 분의 짧은 러닝 뒤 샤워를 마치자 슬슬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공복 유산소를 통해 상쾌함으로 치환된 혈당을 회복하려 아침 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이 날 첫 끼를 먹은 곳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미국식 브런치 집으로, 태평양의 햇살과 다양한 개성이 표출되는 캘리포니아의 명랑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Sunny Side up Westend, Instagram @sunnysideup.ffm

우유가 들어가는 음료를 주문하면 일반 우유(Regular Milk)를 넣을지 두유를 넣을지 꼭 물어봐주고 대부분의 메뉴에 비건 버전이 존재하는, 주재료로 아보카도, 계란, 양배추, 석류, 오트밀 라떼, 버터 없이 구운 잡곡빵 등을 사용되는 카페. 거기에 이 카페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깔끔하고 힙하게 정리되어 팔로워는 2만 명에 육박하고 채용 공고 게시글에는 직원과 사장이 함께 모여 박장대소하는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어떤 느낌의 가게인지 감이 올 것이다. 한국 어디선가 많이 본 인스타그래머블함을 갖춘 트렌디한 식당과 비슷했다. 나는 추천받은 써니 사이드 업 스툴레(Sunny side up stulle)와 라테 마키아토(Latte Machiato)를 주문하였다. 훌륭한 컨셉과 인테리어에 가려질 뻔해서 그렇지 맛도 상당히 훌륭했다. 가격까지 고려하면 더욱 괜찮았던 곳이라 다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침을 먹을 일이 있다면 다시금 찾아와 같은 메뉴를 시켜서 먹어볼 것 같다.

keyword
이전 04화제3화, 독일도 와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