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나 DuNa Jan 13. 2024

태아와의 이별을 느리게 실감하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난 후


병원에서 밤새 못 잤던 잠을 한꺼번에 몰아서 잔듯 다음날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조니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찍 운동을 다녀왔다. 집에 오는 길에 라테와 크루아상을 사 왔다. 임신 후에는 항상 디카페인 커피를 사 왔는데, 이날은 일반 라테를 사 왔다. 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아이가 떠났음을 처음 실감했다.


유난히 날이 좋아 우리는 베란다에 앉았다. 햇빛을 쬐며 커피를 마셨다. 입맛은 없지만 진통제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니가 나온 크루아상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How do you feel right now? (지금 어때?)” 조니가 물었다.


“I am good. Lot Better.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 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애써 괜찮은 척 끊임없이 임신하지 않아 좋은 점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나 이제 다시 술 마실 수 있다.” “회도 먹고 치즈도 먹을 수 있어.” “1월 말에 멜버른 여행 가기로 했는데, 멜버른 가서 더 재밌게 먹고 놀 수 있겠다.” “예매해 둔 뮤지컬 공연이 예정일이랑 겹쳐져서 못 볼 줄 알았는데, 볼 수 있겠다.” 끊임없이 장점들을 나열했다.


더 이상 찾을 장점이 없어지자 방정맞게 떠들어대던 내 입주둥이는 이내 굳게 닫혔다. 입을 닫으니 눈이 말썽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괜찮냐는 가족, 지인, 회사 동료들이 걱정할까 봐 줄곧 “전 괜찮아요. 수술 잘 됐대요. 금방 회복할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는데, 조니 앞에서는 괜찮은 척이 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머릿속에 맴돌던 여러 생각들을 입 밖으로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탈했던 내 인생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이가 온 것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빨리 떠난 것일까. 지인의 말을 듣고 피검사를 한번 더 했더라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초음파를 일찍 봤더라면, 달라졌을까? 내가 자궁내막증이 있어서, 내가 건강하지 않아서 아이를 일찍 떠나보내게 된 것일까. 자궁외임신은 재발률이 높다던데 다음번 임신 때도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온갖 자책과 죄책감, 걱정과 불안들을 떠올리는 대로 마구 쏟아냈다. 조니는 이런 날 조용히 껴안아주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 말했다.


한바탕 울고 나니 마음속 슬픔이 덜어졌다. 그동안 내 마음과 몸이 아파서 내 상처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이제야 남편이 보였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날 보며 혼자 남았을 조니. 병원과 집을 오가며 나를 챙기는 동안 조니가 혼자 감내했을 그 불안감. 그제야 내 남편 조니의 마음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조니도 다친 마음을 이야기해 줬다. 전날 나를 수술실로 떠나보낸 후, 응급병동에 혼자 남은 조니를 꽉 안아주며 자신도 유산을 겪어봐 심정을 이해한다며 위로해 준 간호사 이야기. 불과 며칠 전 임신을 축하한다며 아기 침대를 물려준 지인에게 소식을 전했다는 이야기. 호주로 이사온 후 처음 떨어져서 혼자 집에서 잠을 자는데, 내 걱정에 새벽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끝에 “네가 임신을 한 걸 안 후에도 사실 내가 아이를 정말 원하는지 몰랐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아이를 진심으로 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 다음 임신은 같이 잘 준비하자.”라고 말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혹독한 수업을 통해 첫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있음을 깨달았고, 아이를 맞이할 마음가짐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