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나 DuNa Jan 14. 2024

상처가 아물어 가는 시간

수술 후 몸과 마음의 치유


수술 직후 내 몸은 엉망이었다.


퇴원 후 첫 3일간은 평평하게 침대에 누울 수가 없어서 높게 쌓아 올린 베개에 몸을 기대서 자야 했다. 눕거나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배가 땅겨서 움직이기 힘들었고 뱃심이 드는 어떠한 움직임도 할 수가 없었다. 수술 전 전신마취 후유증으로 어깨통증이 있다고 했는데, 어깨통증은 한 3일간 지속됐다.


입맛이 없는데 진통제 때문에 조니가 억지로 먹을 것을 챙겨줬다. 먹는 양도 줄었다. 먹는 양도 줄었는데 몸무게는 오히려 늘어났다. 수술 직전 67kg였는데, 수술 직후 69kg를 찍더니, 하루가 지나니 70kg를 찍었다. 아니 나팔관도 하나 줄었는데 왜 몸무게가 느냐고 시무룩해진 나를 보며 조니는 “수술 후 체중이 느는 것이 정상이고, 회복이 되면서 자연히 줄어드니 걱정하지 말고, 몸 회복하는데 집중하라”라고 잔소리를 했다.


혈압 커프 때문에 생긴 상처

허벅지와 배 주변을 손바닥으로 쓸듯이 만지면 살갗이 아팠다. 배꼽 주변에 옅게 피멍이 들기 시작했다. 수술 내내 혈압을 재기 위해 팔뚝에 둘렀던 커프(cuff) 때문에 오른팔 팔뚝에는 마치 우리집 고양이 루나가 할퀸 것마냥 여러 긴 선의 멍이 들었다.


숨을 깊이 들여 쉴 수가 없었다. 수술 후 생리같이 하혈도 한 6일간 지속됐다.


수술 후 3일차 - 12월 31일, 새해 전야.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다. 날이 좋아 아침 산책을 나섰다. 조니 팔에 의지해 인근 큰 공원에 가서 뛰노는 강아지들을 보며,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자주 가는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이날도 역시 디카페인이 아닌 일반 라테를 마시며, 다시 한 번 비임신 상태를 실감했다.


매년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에 특식과 몰드와인(Mulled Wine)을 만들어 먹었는데, 올해는 특별하지 않는 여느 날과 같이 조용하게 보냈다.


수술 후 6일차 - 2024년 1월 3일.

하혈은 이제 멈췄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있던 통증도 거의 없어졌다. 팔뚝에 있던 상처는 안 보일 정도로 옅어졌고, 카뉼라를 꽂았던 팔에는 핏줄을 따라 멍이 뒤늦게 올라왔다. 복부에 절개했던 3곳에 붙였던 방수밴드도 떼어냈다. 절개부위의 실은 녹아 없어지기 때문에 병원을 다시 찾을 필요는 없다.


쭈그려 앉았다 일어나거나 배변을 보는 등 뱃심이 많이 필요할 때는 아직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의사가 알려준 배변을 묽게 해주는 약을 계속 먹었다. 꽤 효과가 좋았다. 몸무게도 다시 수술 전 몸무게로 돌아왔다.


수술 후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다. 단지 수술 전이었던 일주일이 아닌 임신 전 한 달 전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


퇴원할 때 받았던 퇴원수속레터(Discharge Letter)를 읽었다. 이 레터에는 응급실 방문 목적부터 진단 내용, 수술 진행상황 및 결과, 퇴원 후 조치들이 상세히 적혀있다. 내용을 찬찬히 읽으며 그날을 다시 떠올렸다.  


"LMP 기준 8주하고 5일.

Crown Rump Length(태아 머리부터 엉덩이까지의 길이) 기준 5주하고 6일.

심장박동수 137bmp, 정상범위."


첫 초음파를 보기도 전에 응급실에 왔기에, 처음으로 태아의 정확한 주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태아는 수술 때까지만 해도 아주 건강하게 심장박동이 뛰고 있었다. 내가 임신을 했는지 실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신체의 변화를 못 느꼈기에, 그동안 내 뱃속에 생명이 있음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심장박동수 137bmp를 읽고, 작은 생명의 심장이 열심히 뛰고 있었구나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태명조차 지어주지 못한 이 아이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꾸만 떠나보낸 이 작은 생명이 떠올라 울컥했다. 일부러 안 보던 드라마를 정주행하기 시작하고, 오랜만에 요리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정리되지 않는 이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스스로 지난 일주일간의 일들을 글로 적어 내리기 시작했다. 일장춘몽과 같았던 지난 한 달, 폭풍우와 같았던 지난 한 주를 적어 내리면서 울기도 많이 울고, 쓰다가 답답함에 밀린 집안살림에 눈을 돌려 다른 곳에 집중을 했다.


수술 후 열흘이 지났다. 수술 후 일주일간 냉장고에 채워졌던 시엄마와 지인들의 보양 음식들도 거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움직일만해지니 집안 곳곳 청소할 곳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늦은 새해맞이 대청소를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쌓여있던 묵은 짐들도 버렸다. 가구배치도 바꿔 새로운 느낌을 줘봤다. 약 열흘간의 병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을 시작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날의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내 양팔에는 아직도 카뉼라 바늘 자국과 피멍이, 복부에는 절개자국과 실밥이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피멍은 점점 옅해졌고 상처는 천천히 아물어가고 있다. 분명 좋아지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는 지금, 오히려 마음은 더 차분해졌다. 혼자 마음 치유의 시간을 통해 지난 한 달의 시간을 진정 과거로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태명조차 지어주지 못한 아이야.  

충분히 소중해하지 않아 날 용서해 줘.

너를 통해 부모가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준비된 부모, 단단한 부모가 될게.  

한 달간 고마웠다. 잊지 않을게.

이전 05화 태아와의 이별을 느리게 실감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