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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나 DuNa Jan 12. 2024

수술대 위에 오르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저녁 7시.

남성 부인과 온콜 전문의 Dr.B 도착했다. 앞서 도착한 Dr.M 여성 전문의처럼 바로 응급실로 왔는데 서류가방을 든 채였다. 두 전문의는 함께 다시 복부 초음파를 했다. Dr B는 유심히 초음파 검사를 하더니, 아주 담담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해 줬다.


“현재 자궁외임신이 확실합니다. 안타깝지만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가지 특이점은 수정란의 위치가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수정란이 자궁각(나팔관에서 자궁으로 이어진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지, 입구에 가까운 나팔관에 위치하고 있는지 초음파상으로 정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자궁각에 위치하고 있다며 더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미뤄봤을 때 입구에 상당히 가까운 나팔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주사 약물치료 혹은 복강경 수술을 통해 치료가 가능한데, 복강경 수술을 통한 나팔관 제거를 권장합니다. 만에 하나 아주 적은 가능성으로 위치를 잘못 진단했을 수 있겠지만 나팔관 쪽이라고 꽤 확신이 듭니다. 복강경 수술을 진행한다면 오늘 저녁 당장 하면 좋겠습니다.”


이어 우리 마음을 알아챘는지 나팔관 제거 수술 후 임신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히 설명해 줬다. 먼저 나팔관이 하나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임신이 가능하며, 복강경 수술을 후 약 3개월 후부터 다시 자연임신 시도할 수 있다. 자궁외임신은 재발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음 임신 때는 초기부터 초음파도 일찍 보고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하고, 만에 하나 또 자궁외임신이 되어 남은 나팔관을 제거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IVF(인공수정) 등 다른 방법으로 임신이 가능하니 걱정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전문성 있는 설명과 확신 어린 전문의의 말에 우리는 이내 수술 집행에 동의했다. 빠르게 수술을 위한 준비가 진행됐다.


Mr B는 수술 준비를 위해 응급 병실을 나서기 전,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러한 일이 생긴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절대 산모의 잘못도 아니고,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니 절대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 빨리 응급실에 와서 치료를 받은 건 잘한 선택이고, 산모의 빠른 판단으로 더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던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복강경 수술이 확정되었고, 조니는 시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나는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응~ 딸, 이 시간에 웬일이야”하고 전화를 받으셨는데,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울음이 터졌다. 내 울음소리에 “딸, 무슨 일이야?”  엄마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엄마, 나 지금 응급실이야… 자궁외임신이래.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한대” 이 말 이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상을 옮길 직원이 도착을 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저녁 8시.

병상에 누운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고 이동하는 길 내내 조명이 어두웠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날부터 1월 1일까지 병원도 쉬는 날이라, 최소한의 인력만 남겨두고 근무 중이었다.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여기는 또 너무 밝았다. 마취과 전문의가 마취 진행에 앞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다. 본인이 어떤 수술을 받고 있는지 아는지, 알레르기, 전신마취 경험, 마취 후유증 등 질문과 설명을 받았다.


양팔에 꽂힌 캐뉼라에 식염수인지 무언가를 주입했다. 수술대가 있는 수술실로 이동했다. 병상을 수술대 옆에 딱 붙인 후 나를 수술대 위로 옆으로 밀어 옮겼다. 주변을 둘러봤다. 낯선 방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다소 차가운 공기. 나도 모르게 눈물을 닦던 휴지를 손이 쥔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긴장감 속에서 어느새 잠이 들었다.


저녁 11시.

다시 눈을 떴다. 마취 기운에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간호사는 수술이 잘 됐다며 곧 병실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실로 이동하는 내내 미친 듯이 추웠고, 내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간호사가 따뜻한 이불을 2개나 더 덮어줘서야 진정이 되었다. 병실로 이동하는 길에 비몽사몽 시간을 물었다. 11시라고 했다.


병실에 도착했다. “우리 병원에서 가장 멋진 뷰를 가진 병실이에요!” 간호사가 말했다. 운이 좋아 1인 병실에 가장 멋진 뷰를 가진 병실을 사용했다. 창문밖을 보니, 이미 어두컴컴해졌다. 뷰고 나발이고, 조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저녁 11시 30분.

잠이 들락말락했는데, 어수선한 소리에 깼다. 조니가 잠깐 들른 것이다. 공립병원이다보니 보호자는 병실에 함께 머물 수 없고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면회시간을 훌쩍 넘겨 수술이 끝난 나와 조니를 배려해서 간호사가 잠깐 조니가 나를 볼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이다. 조니는 내가 수술하는 동안 집에서 챙겨 온 속옷, 카디건 등을 병실에 놓고 고생했다며 이마에 뽀뽀를 해주곤 바로 떠났다.


깊게 잠에 들지 못했다. 계속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했다. 당직 간호사 허리춤에 걸린 열쇠고리 소리가 너무 울렸고, 옆 병실에 있는 환자의 코골이 소리도 너무 컸다. 잠을 자다가도 열쇠고리 짤랑거리는 소리가 커지면 잠이 깼다. 내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는 그럼 바로 진통제와 물을 줬다.


다리 사이에 소변줄이 연결돼 있었다. 소변이 마려웠던 차에 마침 들어온 간호사에게 말을 하니, 소변줄이 연결돼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소변이 마려운데도 무의식적으로 몸이 경직돼 소변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잠이 들었다.


수술 후 다음날 새벽.


12월 29일 새벽 3시.

깼다. 꽤 잔 것 같은데 여전히 밖은 깜깜했다. 몇 시인지 알고 싶어 힘겹게 팔을 뻗어 가방 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겨우 새벽 3시였다. 몸은 무거운데 시간을 확인하니 정신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졌다.


휴대폰을 꺼내 자궁외임신을 검색했다.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씩 클릭해 가며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서 왜 이런 일이 나한테 벌어졌을까 슬펐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충분히 감사해하지 않고 사랑을 주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들었다. 아니 조니 말대로 태명을 지어주지 않고 애착이 채 생기기 전에 떠나보내게 되어서 다행이었던 것일까? 상반된 여러 감정들이 뒤엉켰다. 눈물이 또르륵 베개로 흘러내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 5시 30분.

다시 깼다. 온몸에 힘이 없고 늪에 빠진 것마냥 무거웠다.


아침 6시.

조니한테 문자가 왔다. 병원에 전화하니 10시부터 방문이 가능하다 하여, 9시 30분에 시엄마와 병원에서 만난 후 10시에 바로 오겠다 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는 말에 “Just want to go home and wash my face, brush my teeth”라고 대답했다. 전날 아침에 출근 후 여태껏 양치도 못하고, 얼굴도 전날 화장한 채로 엉망이 돼 있었다.


시드니 시내가 보이는 병실 뷰
병실에서 먹는 아침식사. 입맛이 없어 우유만 2병 마셨다.

아침 7시.

한국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했다. “몸은 어때?” 첫마디와 함께 엄마도 한숨도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하셨다. 새벽에 한바탕 혼자 온갖 감정과 사념을 삼켜서인지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약 30분간 통화를 했다. 엄마는 딸이 너무 멀리 살아 곁에 있어주지 못해 너무 속상해하셨다. 미역국이라도 끓여주지 못해 너무나 마음 아파하셨다.


아침 7시 30분.

조니에게 전화했다. 마친 Dr. B가 들어왔다. 스피커폰으로 같이 수술 결과를 들었다.


“수술은 잘 됐고 남은 나팔관, 자궁, 난소 상태는 모두 건강합니다. 단지 복강경 수술을 통해 환자가 endometriosis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혹시 endometriosis라고 들어보셨나요? Endometriosis가 생리통도 심하고 성교통과 같은 증세도 있었을 겁니다”


‘Endometriosis는 또 뭐지?’ 처음 단어였고 설명을 들어도 당최 뭔지 알 수가 없었다. Dr B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Endometriosis가 있으면 임신에도 영향을 주는데, 환자의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임신에 영향을 줄 위치에 있지 않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임신을 했다는 것 자체가 환자의 Endometriosis가 향후 임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합니다. 환자는 생리주기도 불규칙하고, endometriosis도 있는 데다 이번에 자궁외임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임신이 일반인보다 어려울 수 있지만, 충분히 또 자연임신이 가능한 몸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보통 남편분들이 더 좋아하시는데, 자주 성관계를 해 자연임신 확률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재치있는 의사의 설명에 그래도 근심걱정을 덜었다.


간단한 퇴원 후 관리, 진통제 처방 등 우리의 질문에 답한 후 Dr B가 병실에서 나갔다. 바로 Endometriosis가 뭔지 바로 찾아봤다. 자궁내막증. 처음 들어봤다. 항상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뭔가 건강의 이상을 발견하게 돼 마음이 심란했다.


오전 8시.

오줌줄을 뗐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후 방공 초음파를 해 배출한 소변량과 잔뇨를 확인하여 방광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고 한다. 이상이 없으면 바로 퇴원 수속을 진행한다.


오전 10시.

조니랑 시엄마가 도착했다. 혼자 있다가 가족이 오니 마음이 놓였다. 시엄마에 의지해 화장실에 가서 소변도 보고 방광 초음파 검사를 했다.


오전 11시.

간호사가 의사에 종합 보고 후, 퇴원 허가를 받았다고 안내했다.


오전 11시 30분.

퇴원수속레터를 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퇴원했다.


낮 12시.

퇴원할 때만 해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는데 집으로 간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어느샌가 스르륵 눈이 감겨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했다.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자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을 감싼 병원냄새, 복부부터 허벅지까지 칠해진 노란 소독약, 텁텁한 입이 싫어 바로 샤워부터 했다. 머리도 채 말리지도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오후 1시.

싱가포르에서 살 때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이 미역국을 가지고 왔다. 아침에 수술했다는 나의 연락을 받고 바로 미역국을 한솥 끓여 와 찾아왔다. 아무리 남편이 있고, 시댁이 있지만 한국사람이 아니다 보니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지인은 항상 나의 부족한 갈증을 채워준다.


지인은 자다 깬 나를 보며 누워있는 내 손을 맞잡아주면서 눈물을 흘려줬다. 그 어떠한 말 백마디보다 따뜻한 손의 온도였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까지 내내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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