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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나 DuNa Jan 11. 2024

자궁외임신 진단을 받았다

불길한 징조는 역시나 빗나가지 않는다


붉은 피를 본 후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바로 조니에게 전화를 했다.


“조니…”


이름을 부르곤 한참 말이 안 나왔다. ‘소변을 봤는데 피가 왕창 나왔어’라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 쉽지 않았다. 피가 나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 둘 다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조니도 무언가 직감했는지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그제야 화장실에 갔다가 붉은 피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조니는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V공립병원 응급실에 가라고 했고, 우린 응급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월 28일 오후 3시.

나는 바로 조기퇴근을 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V 병원 응급실로 가주세요”라고 이 짧은 한 문장을 말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떨렸고,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오후 3시 15분.

응급실에 도착해 접수대에 방문 목적을 말하는데, 왜 이렇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입 밖으로 내뱉으면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임신을 했는데, 아까부터 피가 많이 나와서…”라고 접수 후 대기공간에서 내 이름을 호명하길 기다렸다.


오후 3시 30분.

조니도 이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괜찮을 거야”를 주문처럼 계속 나한테 말해줬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오후 4시.

Triage Nurse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Triage Nurse는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를 분류하는 역할을 하는 간호사로 나의 방목목적, 증상 등을 확인하였다. 옆집 푸근한 아주머니와 같은 인상의 간호사는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이 글썽거리는 나를 보며 “Sweetheart(자기야), 너무 걱정 많았겠다. 괜찮을 거야”라면서 상세히 내 증상을 확인하고 이내 나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했기에 곧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해 줬다.


오후 4시 30분.

응급병동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했다. 대기 병실에 들어가 다시 한번 증상을 설명했고, 피검사를 위해 피를 뽑았다. 왼팔에는 카뉼라(Cannula)라고 약물 주입을 위한 관을 꽂았다.

이때만 해도 수술까지 받을 줄 상상도 못헸다


바로 간호사를 만나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안정됐다.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나는 일부러 “우와 내 인생 첫 응급실 체험이다!”, “거참 기억에 오래 남을 2023년 연말이다” 등 서로 실없는 농담을 했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오후 5시.

초음파실로 이동했다. 초음파실 이동 전 소변검사를 위해 소변 채취를 먼저 진행했다. 화장실에서 소변통을 채우는데, 빨간 소변으로 가득 채워졌다. 소변통 바닥에 알 수 없는 체내에서 나온 침전물도 보였다. 순간 울컥했지만 이내 울음을 삼키며 소변통 겉면을 말끔히 닦고 나왔다.


초음파실 침대에 누웠다. 복부 초음파를 먼저 했다. 초음파사(sonographer)가 아무 말 없이 꽤 오랜 시간 초음파 화면을 들여다봤다. 이내 붉은 피를 언제부터 봤고, 양(생리대를 어느 정도 채우는지, 생리대를 얼마나 자주 교체해야 하는지)은 어느 정도 되는지 많은 질문들을 묻더니, 질 초음파가 더 자세히 보이기 때문에 질 초음파를 해야겠다고 했다. 질 초음파도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전문의와 함께 보는 것이 좋겠다면서 의사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아, 무언가 크게 잘못 됐구나’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초음파사가 의사를 데리고 오는 그 짧은 시간에 엉엉 울었다.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질 초음파 기기가 아직 체내에 삽입된 채로 울고 있었을 내 모습을 지금 와 떠올려보니 얼마나 볼썽사나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니는 내내 내 옆을 꿋꿋하게 지키며 “아직 모르는 거야, 의사가 설명해 줄 때까지 우리가 멋대로 판단하지 말자. 괜찮을 거야”를 다시 주문처럼 말했다.


의사와 초음파사가 초음파 화면을 보면 대화를 나눴다.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국어로도 어려운 의료 용어들을 영어로 들으니 더더욱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의심적은 부분이 있는지 자궁경부 검사(pep smear) 검사도 진행했다. 이내 모든 검사를 마치고 초음파사는 종합적인 의견은 전문의가 안내해 줄 것이라면서 이만 응급 병실로 이동하면 된다고 하였다.   


초음파실에서 응급 병실로 이동하는 짧은 거리를 걷는데 순간 밑에서 무언가 큰 덩어리가 꿀렁하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 불길한 징조였다.


오후 6시.

처음으로 응급병실에 발을 들였다. 약 3시간 만에 응급실 접수대 앞 의자 대기실에서 시작해서 Triage 병실, 대기 병실, 초음파실, 그리고 응급병실로 이동했다. 응급 병동 중앙에는 간호사, 의사, 온갖 서류 및 컴퓨터가 있는 컨시어지와 같은 공간이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칸칸이 응급병실들이 있었다. 각 응급병실은 커튼으로 공간이 구분돼, 커튼이 문 역할을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던 공간에 내가 들어왔다.


병상에 눕자마자 의사는 오른팔에도 카뉼라를 꽂았다. 병상에 누운 나는 조니에게 초음파실에서의 의사와 초음파사의 대화를 물었다. 조니가 이해하기로는 수정란의 위치가 자궁으로 이어진 관(tube)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위치가 불확실하다는 대화였고, 이게 어떤 의미인지 우린 그때까지만 해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 대화를 했던 의사는 온콜(on call) 부인과 전문의가 병원에 오고 있다며, 전문의가 도착하면 종합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오후 6시 30분.

여성 부인과 전문의 Dr W이 도착했다. 바로 내가 머물고 있는 병실로 왔는지 가방를 맨 채 우리를 보러 왔다. 병실 한켠에 가방을 내려놓고 복부초음파, 팹스미어를 다시 해보고는 ectopic pregnancy가 의심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부인과 수술 전문의를 추가로 불렀으니 이 전문의가 도착하면 같이 진단하겠다고 했다.


여성 전문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니에게 ectopic이 뭐냐고 물었다. 태아가 자궁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 안착이 됐다고 설명해 줬다. 아뿔싸, 이게 말로만 듣던 자궁외임신이구나. 바로 알아챘다.


조니가 화장실에 다녀왔다. 빨개진 눈으로 나한테 와 “로라, 우리가 그 3명 중 1명이야”라고 말했다. 첫 GP 방문 때, 의사가 임신 초기 3명 중 1명꼴로 유산을 겪는다고 말했었다.


“무슨 말이야? 자궁외임신은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인 거야?”라고 되물었다.


조니는 고개를 저으며 나한테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ectopic pregnancy를 검색한 구글 화면에 ‘won’t develop into a baby(아기로 자랄 수 없다)’라는 문장이 보였다.  


조니는 처음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보였다. 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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