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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나 DuNa Jan 09. 2024

브레이크가 걸리다

첫 임신, 빨간 피를 보다


2023년 12월 초.


생리가 늦어졌다. 원래 생리주기가 짧게는 3~4주, 길게는 5~6주로 상당히 불규칙해서 이번달도 살짝 늦는 그런 달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없던 설사끼가 며칠씩 지속되고, 여행에서 찐 살이 당최 빠지질 않은 데다 잠이 유독 늘었다. 하루는 저녁에 자는데 식음땀이 날 정도로 열감이 오르기도 했다. 잦은 배뇨감에 화장실도 자주 갔다. 이외에는 대체로 생리 전과 비슷한 증상(단단해진 가슴, 배의 묵직함, 약간의 두통 등)이 있어 헷갈렸다.


12월 2일 오후.

마음의 평안을 위해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해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 떴다. 역시나 임신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맥주 한 잔을 마셨다.


12월 5일 오전.

지속된 증상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테스트기로 검사를 했다. 연한 두줄이 떴다.  우리 둘 다 ‘너무 이렇게 쉽게 임신이 된다고?’ 기쁜 마음보다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12월 6일 아침.

임신테스트키 2종으로 다시 한번 검사해 봤다. 모두 전날보다 더 선명한 두줄이 떴다.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받은 기분이 들었지만 여전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 두줄 양성 떴을 때 더 현실감이 있었다.


태명을 지어주면 아이를 갖는다는 사실이 보다 실감이 날까 하여 조니에게 한국의 태명 문화를 설명해 줬다. 서양권에는 태명 개념이 없다 보니 조니는 신기해했지만, 임신 초기를 넘기면 그때 지어주자고 했다. 아무래도 임신 초기에는 유산도 잦기 때문에 혹시 몰라 처음부터 너무 애착을 형성하지 말자고 했다. 섭섭하지만 일리가 있기에 조금 참기로 했다.


호주에서 임신을 하게 되며, 가장 먼저 가정의 GP(Gerneral Practitioner)를 찾아가야 한다. GP를 먼저 만나 피검사 및 소변검사를 진행한 후 임신 확인을 진단받고, 그 이후 주수에 맞춰 의뢰서(Referral Letter)를 가지고 초음파를 보러 간다. 물론 이 이후에는 공립병원을 갈 것이냐, 사립병원을 갈 것이냐, 나라에서 지원하는 의료보험 메디케어(Medicare)의 유무, 출산까지 보장하는 사립의료보험 유무에 따라 여러 경로로 나눠진다.


12월 8일.

GP 방문하여 피검사 및 소변검사 진행했고, GP의 조언에 임산부 종합영양제 구매했다.


12월 15일

GP 재방문하여 HCG 수치로 3~5주 임신확인 및 첫 초음파(Dating Scan) 의뢰서 및 사립병원 OB 추천서를 받았고, 비타민D 부족으로 임산부용 비타민D 영양제 구매했다.


하필 연말 휴가철이 껴있어서 첫 초음파는 약 5~7주로 예상되는 12월 22일로 예약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호주에서는 7주 넘어서 보는 것을 권장을 하기에 빨리 초음파를 통해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해가 지난 직후인 1월 2일로 예약을 했다.


극초기였기에 입덧, 먹덧, 몸무게의 변화 등 아무런 임산부가 되면 생긴다는 신체적 변화는 없었다. 내가 진짜 임신을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동안 너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쉽게 이뤄졌다고 안심한 탓 것인가. 곧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2월 23일 저녁.

처음 약간의 갈색혈이 보였다.


12월 24일

오전에 소변을 보면 연한 갈색빛이 냉 혹은 혈이 조금 묻어났으며 오후에도 지속됐다.


12월 25일~26일.

양이 오히려 늘어나 결국 팬티라이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2월 27일.

팬티라이너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양이 늘어 결국 일반 생리대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생리 마지막날과 같은 갈색 찌꺼기 같은 조직도 보이기 시작했다.


12월 28일.

오전까지 갈색혈 보였다. 오후 점심 이후 생리통처럼 배가 약간 아프기 시작했고 소변색이 빨갛게 변할 정도로 붉은빛 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눈앞이 새하얘졌고 머리는 무언가로 쾅 한 대 맞은 것처럼 순간 멍했다. 뒤처리를 하는 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인생은 장애물도 없고,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같았다. 언제든 고속도로 표지판을 보면서 원하는 대로 목적지를 바꾸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자동차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브레이크를 살짝 밟고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늦추면서도 안전하게 끝까지 목적지까지 가느냐, 차가 도로 한복판에 갑자기 그냥 멈춰서 버릴 것이냐, 혹은 다른 부품에도 몰랐던 고장이 연거푸 발생하면서 가드레일에 차를 박느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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