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기까지
우리는 아이를 원하는가?
참 오래 고민했던 질문이었다. 아이가 있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지, 아이를 진정으로 원하는지 나 조차도 내 마음을 알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물건처럼 한번 사서 사용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환불해버리거나 중고로 내다 팔아버릴 수 없는 노릇이고, 어디 남의 집 아이를 데려와서 1일 체험을 해보고 결정해 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도, 나는 조카바보 고모가 되지 않았다. 주변에 조카사랑이 넘쳐 내 자식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들을 보곤, 아마도 난 아이를 그렇게 좋아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아니 이런 우리가 어설픈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얼떨결에 시작된 첫 임신 생활이 제대로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차가운 응급실 수술대에서 끝이나 버렸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이 아린 일장춘몽과 같은 경험이 우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2017년 내 나이 27세. 조니 나이 30세. 우리는 홍콩에서 만났고, 내 나이 29세에 계획에도 없던 국제결혼을 하면서 싱가포르에서 둘만의 알콩달콩한 신혼을 즐겼다. 오래도록 원했던 반려묘 우리 루나를 만나면서 우리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꽉 찼고 즐거웠다. 인생의 변화에 필요할 때 즈음 우리는 호주 시드니로 이주했다. 조니는 자신의 집인 시드니로 돌아갔고, 나는 조니를 따라 시드니로 이민을 떠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해 보일 수 있는 생활이었다. 보통은 나고 자란 도시에서 한평생 살다가 간다는데 우리는 여러 나라와 도시를 옮겨 다니며 부족함 없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고, 매년 새로운 경험들을 즐기는 인생을 살았으니, 이런 삶을 사는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조니는 젊은 나이에 한국으로 치면 억대연봉을 받으며 커리어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앞길이 창창했다. 벌이가 좋은 남편 덕에 나는 수입에 대한 부담감 없이 소일거리처럼 일을 해도 우리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마음껏 즐기며 오롯이 우리 둘에게, 아니 우리 루나까지 해서 우리 셋에만 집중하는 이 생활에 너무 만족했다.
물론 그동안 아이에 대한 고민이 없던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에서의 한 모임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임신 준비 중이었는데, 모이기만 하면 임신과 출산 이야기뿐이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대의 지인들이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나도 아이를 생각해야 할 때인가 고민하는데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등 떠밀리듯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 모임에는 나가는 것을 피했다.
우린 아직 아이를 가짐으로써 얻게 될 보이지 않는 무한한 행복감보다 책임감에 대한 부담, 비용, 포기해야 할 것들이 먼저 떠올랐고, 준비가 안 됐다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다. 아이가 주는 무한한 행복감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선 미지의 세계였다.
혹독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떠돌이 해외생활은 잠시 중단하고 당분간 한 곳에 정착하자는 결정에 우리는 호주 시드니로 왔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잘 진행됐다. 낯선 시드니란 곳에서 나는 생각보다 빨리 새로운 직장을 찾았고, 시댁의 든든한 지원과 사랑, 좋은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니 어느새 2023년 끝을 달려가고 있었다. 이때 내 나이 33세. 조니 나이 36세. 내 자궁의 모래시계 속 모래는 이미 절반 이상 아래로 흘렀고, 언제까지 날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거창한 결심이나 계획은 없었다. 2주 휴가 기간 여행을 할 때부터 첫 시도를 해보자 정도였다. 그 이유도 호텔 침대보가 더러워져도 상관없기 때문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우린 그저 섹스 후 더러워질 우리 침대보가 싫어서 여행계획에 맞춰 임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겨우 그정도의 마음가짐이었다.
생리주기 불규칙이라는 엄청난 변수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나는 바로 임신이 되었다. 주변에 수많은 난임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남녀였기에 바로 계획대로 임신이 되었다. 너무 쉽게 임신이 되어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모든 것이 너무 쉬워서 오히려 소중해하지 못했고 감사하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빨리 찾아온 선물은 빠르게 사라졌다. 차가운 응급실 수술대에 올라선 후에야 이 선물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그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