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 왓챠, 퀴어, 로맨스 영화 추천/결말 해석]
개봉일 : 2019.11.07. (한국 기준)
감독 : 제임스 아이보리
출연 : 휴 그랜트, 제임스 윌비, 루퍼트 그레이브즈, 덴홈 엘리어트, 사이먼 캘로우
사랑을 위해 선을 넘는다는 것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무려 33년 전 작품 <모리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최근 재개봉한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본과 재개봉을 앞둔 <전망 좋은 방>을 제작했다. 며칠 전 콜바넴을 다시 보고 오기도 했고, 전망 좋은 방을 보기 위해 예매까지 해놓고 나니 <모리스>가 떠올랐다.
모리스의 팬층이 은근 두텁기에 ‘이 영화는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보고 나니 딱 알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보면 마음이 부풀어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 마치 콜바넴의 고전 버전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다른 점이라면 <콜바넴>은 ‘그해 여름’에 피어오른 짧은 사랑을 얘기하고 있고, <모리스>는 긴 시간에 얽힌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33년 전 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만큼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그 시절 유행했던 화면전환과 편집 스타일이 눈에 보이긴 하지만,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오래된 영화다’싶은 느낌보다는 ‘고전 영화의 형식을 채용한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말이다.
동성애가 죄악이자 저주였던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태어난 클라이브와 모리스. 둘의 사랑은 선을 넘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자 타락의 길을 걷는 일이었다.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일 먼저 드는, 자유롭지 못한 둘의 사랑은 잔잔하지만 격동적으로 이어진다.
20세기 초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우연히 만나게 된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낡은 관념의 무료한 대학 생활 속에서 서로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발전해가고, 누구보다 가까웠던 두 사람의 우정은 서서히 사랑의 감정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사랑 하나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모리스와 그 모든 걸 잃는 게 두려운 클라이브의 사랑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모리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어린 모리스와 함께 해변을 걷고 있던 미스터 듀시는 모리스에게 성에 대해 알려준다. 그는 아직 영글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처음으로 성을 알려준 남자 어른이었다. 듀시는 신체란 하느님이 주신 성전이며, 이성을 만나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자 의무라 말한다. 20세기 초. 사람들은 지금보다 신에 대한 믿음이 깊었고, 특정 종교에서는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칭했다. 당시 유럽권 일부 나라들은 동성애를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영국은 동성애를 죄로 취급했다.
모리스는 듀시의 가르침처럼 죄를 저지르지 않으며, 올곧게 자라 대학생이 된다. 흔들림이 없다 못해 따분한 대학생활을 이어가던 모리스는 1909년 2학년 가을학기.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리슬리를 찾아 문을 연 모리스의 앞엔 바닥에 주저앉아 악보를 찾고 있는 클라이브가 있었다. 모리스는 혼을 빼앗긴 듯 클라이브를 바라본다. 그게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첫 만남의 해가 지나고 1910년 봄 학기. 지난 방학을 즐겁게 보내지 못한 서로를 안타까워하던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경직된 위로의 포옹을 한다. 둘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떠들썩하게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황급히 맞닿았던 몸을 떼어내지만, 순간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모리스는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클라이브를 사랑하는 것인지, 우정인 것인지.. 만일 사랑이라면 이것은 죄악인 것인지.
지옥이 어떤지 넌 몰라
동성 간의 사랑이 죄악이라 배웠던 모리스는 이 선을 넘으면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내려앉아있는 사랑은 너무도 명확하고 아름다웠다. 모리스는 그저 클라이브를 사랑하고 있었다. 확신이 든 그는 늦은 밤 클라이브의 침실 창문을 넘어갔고 사랑을 받아들인다.
품위를 위해 네가 날 버렸다면 난 어둠 속에서 살았을 거야
한 발짝 더 먼저 용기를 낸 클라이브는 모리스가 망설이는 동안 온갖 고통을 맛본다. 동성 간 넘어선 안될 선을 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서로의 사랑을 일깨워주었고, 둘의 만남은 아름다운 육체와 사랑에 가득 찬 정신의 조화였다.
모리스와 클라이브는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가족들을 소개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둘의 사랑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지만, 둘의 진한 우정은 모두가 아는 것이었다. 클라이브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이상할 만큼 긴밀하고 가까운 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일부 의혹의 눈초리를 받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만남을 지속한다. 그렇게 완만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피워가던 둘은 1911년, 리슬리가 풍기 문란으로 체포된 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된 리슬리를 직접 보게 된 클라이브는 불안감에 떨기 시작한다.
우린 변해야 해
모리스의 집에 찾아간 클라이브는 자신을 반기는 모리스의 어머니와 여동생 에이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문득 에이다에게서 모리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모리스와 목소리, 눈매, 코가 닮은 에이다. 지금껏 클라이브는 모리스의 여동생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동성애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에이다의 모습에 관심을 보인다.
클라이브는 이 사랑을 유지하면 모든 걸 잃게 된다며 모리스와의 사랑을 정리하려고 한다. 모든 걸 잃고 싶지 않은 클라이브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는 모리스는 잠시 대립하지만, 둘의 사랑은 한순간에 끝을 맞이한다. 그 후 클라이브는 앤 우즈와 약혼했지만, 모리스는 여전히 클라이브를 잊지 못한다. 클라이브가 예비신부와 함께 전화를 걸었던 날, 모리스는 클라이브의 8번째 친구였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이자 가장 긴밀했던 우정을 나눈 그에게 8번째 순서가 되다니.. 모리스의 감정은 순식간에 시들어버린다.
클라이브가 완전히 떠났음을 느낀 모리스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첫 번째 단계는 가장 가깝게 지낸 어른인 배리 박사에게 성적인 문제가 있다고 털어놓는 것이었다. 배리 박사는 가벼운 문제일 것이라 짐작하다가, 진중하게 얘기하는 모리스를 보고 헛소리를 한다며 단호하게 말을 막는다. 배리 박사에게 치료를 거부당한 모리스는 존스 박사에게 치료를 의뢰한다. 존스 박사는 가상의 여인을 설정하고, 그녀의 머리칼과 미모에 대해 모리스에게 이야기하지만, 모리스는 무의식의 끝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아닌 짧은 머리의 클라이브를 떠올린다. 모리스에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상상하는 건, 물이 새는 배에 나란히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절망적인 것이었다.
흔들리고 있는 모리스의 앞에 새로운 인물 ‘알렉’이 나타난다. 펜더슬리의 사냥터 지기인 그는 모리스가 사냥을 나갈때 마다 길을 안내하고, 잡은 토끼를 옮겨주는 일을 한다. 알렉은 모리스에게 작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고, 모리스가 사다리를 두드리자 모리스의 침실 창문을 넘어 침대에 도착한다. 모리스가 정해둔 경계이자 선을 용기 있게 넘은 알렉은 모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알렉은 사직서를 내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갈 예정이었지만, 영국을 떠나기 전 모리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모리스는 보트 창고에서 기다리겠다는 알렉의 쪽지를 받았지만 그의 마음을 의심한다. ‘하룻밤의 실수를 꼬집어 죄를 묻지 않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여러 두려움에 떨던 모리스는 용기를 내 알렉을 찾아간다. 그를 찾기 위해 배에 오른 모리스. 배에는 그의 가족과 짐만 놓여있었다. 알렉은 모리스를 기다리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알렉의 진실된 마음을 느낀 모리스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클라이브는 두려움을 못 이겨 사랑을 포기했고, 모리스와 알렉은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진다. 가장 먼저 사랑을 고백한 건 클라이브였지만, 가장 먼저 포기한 것도 클라이브였다. <모리스>에서 ‘창문’은 사회가 정해둔 선을 의미한다. 모리스는 클라이브를 위해 늦은 밤 그의 침실 창문을 넘었고, 알렉 또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모리스의 침실 창문을 넘는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한 번도 창문을 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클라이브는 창문 너머에 서있는 모리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는 여전히 모리스를 사랑하고 있지만 끝내 창문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끝을 맞이한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는 모리스의 클라이브를 향한 순애보 같은 사랑이 마음을 따갑게 찔러대고, 영화의 후반부에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가는 모리스를 바라보는 클라이브의 모습이 넓은 마음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결국 가장 길게 사랑하고, 가장 오래 후회하는 사람은 클라이브였다.
나는 <모리스>의 포스터를 보고 당연히 포스터에 크게 박힌 인물인 휴 그랜트가 ‘모리스’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그는 클라이브였고, 사랑을 찾아 선을 넘는 모리스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의 제목이 모리스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리고 왜 포스터에 클라이브가 크게 박혀있는지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엔 모리스가 있지만, 가장 진한 후회의 흔적을 남기는 건 클라이브다. 그는 한 계절을 넘기면 그대로 시들어버릴 듯 위태로운 사랑의 숨결을 외면하면서도, 그것이 끊기지 않길 가장 바랐을지도 모른다.
죄악이라 불리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자신이 있는가? 사랑을 포기할 것인가, 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인가. 사랑을 포기하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사랑은 깊은 만큼 무거운 죄악이자 저주였다. 하지만 그 저주는 추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찬란하고 부드러우며 풀내가 날듯 싱그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