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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바다' 다시 시작해야 할 때!

넘쳐나는 1회용품 어쩔~

아나바다 운동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에서 주도한 환경운동이다. 
'아' 아껴쓰고
'나' 나눠쓰고
'바' 바꿔쓰고
'다' 다시쓰고


코로나 19로 팬데믹 상황이 되자 세상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어른들이 마음껏 쓰고, 더 좋은 것을 위해 마구 훼손한 자연을 물려주게 된 것 말이다. 팬데믹 상황으로 겪지 않아도 될 수많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으며 어른들을 얼마나 욕하고 살것인가?


1992년 12살 소녀 세 번 스즈키의 UN 연설을 보았는가?


훼손된 환경으로 인해 벌어질 세상에 대해 전 세계에 알린 연설이 있은 후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고 울컥한 마음을 지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고, 간간히 회자될 뿐 소녀의 제안을 실천하는 이는 적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고, 우린 자연생태계의 흐트러짐과 인간의 욕망으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스크 없이는 외출조차 할 수 없고, 바이러스가 옮겨올까 걱정하며 이웃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웃과 거리만 두는가?'


의심의 눈초리 또한 거둘 수 없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 제일 먼저 떠 오른 건 역시 환경의 문제다. 지구환경을 지금처럼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바이러스의 습격은 더 큰 것으로 다가온다며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낸다. 산업화의 고도 성장은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닌 거 같다. 자연에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들은 고도의 기술로 넘쳐나지만 정작 재활용되는 것은 미미한 수준이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만 해도 매주 월요일은 자원을 모으는 날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에 페트병, 플라스틱, 음료수나 술병들을 하나씩 주워 등교했다. 가져온 자원을 선생님께 확인 받고서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캠페인으로 동네 그 어디를 가도 월요일이면 굴러다니는 페트병이나 유리병은 눈을 비비고 보아도 볼 수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옷도 첫째가 입고 둘째, 셋째... 물려 입었다. 구멍 정도는 기워입었고, 천이 헤어지더라도 천을 덧대어서라도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리폼 기술이 뛰어남에도 구멍이 나면 그냥 버린다. 리폼보다 새로 사 입는 것이 더 쉽고 비용도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멀쩡한 옷도 그냥 버려진다.


남자아이의 경우 활동량이 많아 옷이 금방 찢어지고 구멍이 나는 것이 일인지라 이런 것은 물려주기 어렵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경우 구멍도 나지 않고 옷도 제법 깨끗이 입기도 하지만 예쁘다고 산 옷이 참 많다. 이럴 땐 주저하지 말고 나눠주자. 몇 번 입지 않은 것은 온라인 마켓이나 프리마켓에서 판매하면 그 수익금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한 번은 책과 빈병, 플라스틱, 옷가지들을 정리하여 고물상에 가져간 적이 있다. 아이와 자원 재활용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쓰지 않는 물건을 가져가면 재활용하거나 더 어려운 나라에 저렴하게 팔기도 해서 좋고, 우리는 적지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받게 된다고 설명하며 고물상을 방문했다.


고물상 주인은 내가 가져온 물건을 분류하며 푸념하듯 말했다.

"이런 고물상은 할머니들 보고 주으라 하세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핀잔을 듣고 말았다. 경차에 한가득 싣고 왔지만 고물상 값으로 받아 든 돈은 5천 원이 채 되지 않았다. 핀잔을 준 주인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플라스틱을 전문가 답지 않게 담아왔기에 다시금 분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귀찮기도 했고, 폐지 줍는 할머니들도 있는데 그분들에게 양보하지 차까지 끌고 와서 파느냐는 뜻이 담겨있으리라.


고물상 주인의 핀잔에 마음이 상했다. 


나는 특별히 그날 아들에게 자원 재활용을 몸소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것이 정말 살아있는 교육이 아닌가? 이 아이는 굴러다니는 플라스틱을 보더라도 리사이클 할 수 있다는 자원순환원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가정에서 쓰다 버리는 재활용품들이 제대로 분류되어서 자원이 잘 활용되면 좋겠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자원 재활용을 몸소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아파트에서는 분리수거를 하면 그 환급금이 관리비로 수용되어 주민들에게 쓰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어린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분류를 잘하면 더 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어린이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그것이 학교에서 책상머리교육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소 경험하여 생활습관으로 베면 더 좋을 것 같다. 


동네마다 있는 고물상이 살아있는 자원 재활용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본다.


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재활용의 가치를 제대로 안다면 환경훼손은 줄어들 것이고 어린이들은 아름다운 환경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택배박스가 넘쳐나고 1회 용품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1회용품의 쓰나미가 넘쳐 재활용품이 쌓이고 있다.


1980년 자원순환교육은 정부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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