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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을 아는 마음

추석을 앞두고 작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한 글쓰기 공간에(모두의글방) 수업을 위해 이것저것 꾸며놓고 보니 꾸미는 일이라면 똥손인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했고, 아직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시댁 식구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간 친정아버지 병시중으로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던 날들이었는데, 아버지를 천국에 보내드리고 나니 뭔가 허전함이 몰려왔다. 친정아버지 돌본다는 핑계로 시어머니는 안부전화며 찾아뵙는 것조차 뜸했으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신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음식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여 허전한 마음도 달래고 시댁식구들에게 인사도 할 겸 이번 추석은 우리가 준비하면 어떻겠냐고 여쭈었더니 모두들 좋다고 했다.


사실 어머님이 허락하실지 반신반의했다. 추석에는 늘 아버님을 위한 차례상을 차리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흔쾌히 허락하셨다.


다 같이 모이는 시간을 추석날 점심으로 정하고 나니 그때부터 바빠졌다. 부족한 그릇들을 준비하고, 테이블에 덮을 천을 고르고, 음식 솜씨 발휘할 재료들을 샀다. 요리는 요즘 건강식에 눈뜬 터라 튀기거나 기름진 요리는 제외하고 담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요리로 목록을 잡았다.


식전 애피타이저로 과일을 내고-감자샐러드&그래놀라-밀가루 뺀 동그랑땡-채소찜-와인 통삼겹살&부추무침-연어마끼-미역국-커피 순서로 코스요리를 준비했다. 지금껏 명절에는 시댁에서 함께 음식을 준비했었는데 내가 혼자 준비한다고 하니 너무 힘들어 어떡하냐며 한껏 걱정하는 어머님께는 남편과 아이들이 도울테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을 시켰다.  


우리 가족은 갑자기 바빠졌다. 


음식 준비로 바쁜 엄마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 의논했다. 아이들은 테이블 준비와 서빙을 보고 남편도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돕겠다고 했다.

드디어 추석날!!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는 간단히 인사말을 전했다.

"이번 저의 친정아버지 장례에 함께 해주시고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컥한 마음에 잠시 숨을 고르고)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생각하다가 귀한 음식으로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맛있게 드셔주시고, 오늘은 대접만 받으시면 됩니다. 그럼 과일부터 한 가지씩 서빙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잠시 울컥했지만 짧은 인사말이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와인잔에 물과 레몬을 띄우는 일은 첫째 아이가, 엄마 옆에서 과일을 담는 일, 접시에 플레이팅을 돕는 일은 둘째 아이가 담당했다. 서빙은 서로 돌아가며 눈치껏 일어서서 날랐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디퓨저 향과 음식 냄새가 거실 가득 어우러졌다. 늘 먹던 추석음식이 아닌 코스로 맞이하는 특별한 음식에


"와! 이거 호텔에서 식사하는 것 같은데" 하며 큰 아버지가 너스레를 떨었다.

식사가 끝나고 커피 주문이 이어졌다. 커피머신에서 커피가 뽑아져 나오는 것을 늘 관심 있게 지켜보던 아들이 어른들의 주문에 따라 아메리카노, 카페라테를 만들어 나르니 모두 기특하다며 한잔씩 더 주문하기도 했다. 대접받은 식사에 감동하고, 한잔씩 받아 든 커피에 즐거웠던지 너도 나도 음식 칭찬이며 아이들 칭찬까지 이어졌다.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돌아가실 즈음, 너도 나도 아이들에게 팁이라며 용돈을 쥐어 주셨다. 생각지 못한 용돈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입은 귀에 걸리듯 좋아했다.


명절 때 늘 받는 용돈이지만 이번 용돈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이들도 부모가 하는 일에 동참하여 서빙일 보고, 플레이팅을 하며 받은 값진 용돈이다. 그냥 이쁘다며 거저 받은 용돈과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달랐다.


"어디 가도 굶진 않겠구나!"

서빙하는 아이들이 기특했는지, 자기 밥벌이는 충분히 하겠다 싶었는지 용돈을 주시며 한마디 툭 던지신다.


돈을 올바로 사용하는 법을 잘 가르치고 싶어 시작했던 용돈교육이 어느새 경제활동을 잘할 수 있는 경제습관으로 까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용돈을 거저 주기보다 베푸는 기쁨도 느끼고 용돈도 벌게 할 요량으로 어릴 적부터 레스토랑 놀이를 했었다. 레스토랑 메뉴가 정해지면 아이들은 메뉴판을 만들고 엄마가 만들어 준 요리를 서빙하며 우리 부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면 우리는 유리잔 밑에 아이들의 용돈을 팁으로 넣어 두었고, 아이들은 보물이라도 찾은 양 팁을 발견하며 기뻐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재밌는 놀이는 처음이라며 주말이나 기념일이면 엄마 혼자 수고할 일을 온 가족이 나눠서 식탁을 준비하기도 했다.

용돈 교육과 글쓰기 활동을 위해 즐겼던 레스토랑 놀이

똑같은 용돈을 주는 일이지만 이렇게 놀이처럼 주고 나면 온 가족이 행복하다. 레스토랑이라며 적당히 어울리는 음악을 선정하는 것은 언제나 큰 아이의 역할이었고, 메뉴판에 정성 들여 메뉴를 쓰고 꾸미는 일은 미술을 좋아하는 둘째 아이가 담당했다.


엄마가 음식 준비하는 것을 도와 수고하고 번 용돈이라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이렇게 받은 용돈은 어릴 적 배웠던 대로 모으기, 쓰기, 나누기로 구분하여 관리한다.

아이들 용돈뿐 아니라 이번 명절은 특별했다. 격식 없이 편하게 나누는 명절 음식 문화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차례상 차리는 것보다 어쩌면 더 힘든 일일수도 있는데 전혀 싫지 않았고 즐거웠다.


명절의 즐거움,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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