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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15. 2024

80. 하얼빈

-김훈 「문학동네」




‘쏘고 나면 여비는 필요 없다.’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떠오르는 안중근 의사의 말이다.  

머릿속에 온통 생활비와 앞으로의 생계유지방법에 대한 생각만 들어차 있는 나에게 얼음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씌우는 것 같았다.  


을사늑약의 장본인이고 우리 민족을 학살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위하여 하얼빈까지 가는 안중근 의사의 나날들을 묘사한 이 책에는 내가 걱정한 끔찍한 고문장면 같은 건 없어서 한편으로 안도했다.  

서대문형무소에도 가지 못하고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읽을 때 너무 힘들었고 가끔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일제 강점기가 나올 때마다 두근거리며 마음 졸인다.    

‘남한산성’을 읽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김훈 작가는 전직이 기자여서인지 글에 감정이 많이 실려 있지 않고 건조하다.  큰 사건에 대한 묘사에서도 담담하고 툭 던지며 짧게 끝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죽이겠다고 결심한 순간도, 그를 쏘아서 총알이 박힌 걸 느끼고 이토 시점에서 죽는 걸 묘사할 때도,

재판을 받으며 그를 죽여야 할 이유를 말할 때도, 유언을 할 때와 죽을 때도..(단 세 줄로 교수대에서 절명하는 걸 끝낸다)

평론가들도 김훈 문체라고 할 정도라니 나만 느끼는  아닌 것 같다.  

덕분에 민족을 위하여 자신과 가족들까지 바친 안중근 의사의 결단과 행동, 죽음을 나도 담담히 따라갔다.  


하지만 읽으면서 자꾸 그의 어머니, 아내와 자녀들, 동생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져 검색을 해보니 모두 비극이다.  죽고, 비참하고, 굴욕적이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상위계급으로 떵떵거리며 뻔뻔하게 살고 있는데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해방 후 다시 빨갱이의 후손이 되어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다는 기사를 많이 읽었다.  

한 만화가는 양쪽 집 사진을 비교하며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 한 걸까’라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어떤 역사책을 읽은 걸까.  


소설의 내용보다 후기와 작가의 말을 읽다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독립 후에 자신의 뼈를 한국으로 옮기라고 유언했지만 여순 감옥 공동묘지에 묻힌 그의 유해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어차피 유해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화가 난다.

나약하고 좁은 마음에 나는 더 개인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마음을 비웃 듯 작가는 말한다.     


‘한반도에서 억압과 수탈을 위장한 문명개화가 약육강식의 쓰나미로 다가왔고 한국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나는 50다.  이 나이 먹도록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살았다.  

작가는 고단했던 그의 청춘 시절에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쓰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억지로 잊으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작년에 아픈 이후 더 이상 미루어 둘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에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 놓을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이 국가와 민족은커녕 타인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영웅을 이 시대로 불러와 준 에게 크나 큰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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