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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마음

2021. 7. 4. - 2021. 7. 5.

by 바람 Mar 15. 2025

    



블루 그로토에 함께 다녀온 Y를 초대해 비빔국수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를 보면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여려 보이는 외모지만 야무지고 당차다.  

나도 결혼 전에는 그랬었는데 어째 나이들수록 더 어리석고 나약해지는지 원.


어두워지면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나와 다르게 몰타대학교 교정을 저녁마다 달린다는 그녀를 보내 나는 맥주 사랑을 한잔 더 실천하면서 책 좀 읽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 시작한 강헌의 ‘명리-기초 편’을 조금 읽고 운동 삼아 먼 곳의 슈퍼마켓에 가서 생필품과 식료품을 사야겠다.  

무거운 걸 들고 걷는 건 별로지만 운동부족이라 걷기라도 해야 한다.


한국소설이 읽고 싶어 교보문고에 들어가 보니 정유정 작가의 신작이 나와 있었다.   

ebook으로 구매해 노트북 화면으로 잠깐 봤는데 아날로그 사람인 터라 잘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한국 소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이곳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면서 읽는 건 아니어도 감지덕지다.


이 뜨거운 태양의 날들에 자연경관을 찾아다니는 것이 마치 극기 훈련 하는 기분이라 집과 카페만 왔다 갔다 한다.  

열기가 가라앉은 늦은 오후에 밤 문화로 유명한 파처빌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7월 1일부터 백신 맞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더니 거리에는 마스크 벗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내가 걸릴까 봐 불안해서 쓰고 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백신 접종 안 해주나.


6개월이라는 시간은 내가 살아온 세월과 살아갈 날들에 비하면 정말 짧은데 앞으로 남은 3개월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먼 곳에서 만난 한국인들도 인연일 텐데 그냥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니와 화상채팅을 하면서 호주에서 못하고 일 년 내내 부러워하던 걸(평일 아침시간에 여유 부리며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책 읽는 거) 이곳에서 매일 한다며 자랑질을 잠깐 했지만 내일부터 또 랭귀지스쿨 수업받으러 다녀야 하는 게 벌써 지겨워진다.

그런 일과가 없으면 하루가 너무 길어 어쩔 줄 몰라하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고 싶다던 다짐도 무뎌지고

새롭고 멋진 곳을 다니며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은 욕심에 혼자 안달이다가

금세 연기처럼 허공에서 흩어져버리는

마음을 미련스럽게 보고 있다.  







다시 수업 시작이다.  한 단계 올라가지만 학생들은 거의 같고 선생님만 다르다.  

벌써 질려하는 내가 걱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자기 합리화도 잘하니까 어떻게든 다니겠지.  

집주인에게 notice 메일을 보냈다.  

이곳은 1년 임대계약(long let)을 해도 6개월 후엔 해지할 수 있다.  

처음에 휴직기간 연장을 생각하고 10개월 산다고 해버려서 번거롭게 되었다.  에구에구.  

나의 성급함이 일을 만들어 주었다.  

계약서에 3개월 전에는 notice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어 꾸역꾸역 메일을 써서 보냈다.  


카페에서 일기 쓰고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고 있는데 일하는 청년이 글씨가 멋지다고 한다.  일본어는 아닌 것 같고 마치 켈리그라피 같다며 계속 쳐다본다.

한국어라고 알려주고 만년필로 써서 글씨가 멋지게 나온다고 말했다.  

몰타에서는 아직 동양인을 보면 일본어나 중국어로 인사를 날린다.  

나도 코로나 때문에 이곳을 알고 오게 되었는데 앞으로 한국인이 더 많아지면 ‘안녕’이라는 말도 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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