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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외수 작가의 소설들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by 바람


♣ 괴물 -이외수 「해냄」


이외수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갑자기 그의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작가를 생각하면 기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소설도 너무 극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정곡을 찌르는 에세이 구절들에 이끌려 소설을 골랐다.

첫 장을 넘긴 후부터 2권까지 쉼 없이 읽어갔다. 내공이 느껴진다.


불교적이고 무협지 같기도 하고 달관한 인물들과 비인간적인 인물들이 뒤섞여 해학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낸다.

전생의 업보로 인해 현생에서 살해당하는 사람들과 그들에 의하여 전생에서 살해당하고 현생에서는 살해하는 주인공.

사이코패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 아닌가 하는 반감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가 아마 전생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말 같아서.


많은 등장인물들과 각각의 스토리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조정래 작가의 글들이 떠오른다.

이외수 작가의 글에는 해학과 함께 심오한 인생철학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마지막에는 결국 밝은 빛이 어딘가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그 밝음의 근원이 어둠의 근원과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염세적인 면과 대조적이다.

이번 주는 이외수 작가의 소설들을 찾아 읽으며 보낼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다.




♣ 벽오금학도 -이외수 「해냄」


이번 건 좀 더 무협지 같다. 기인의 삶을 사는 인물들과 무협지의 주인공을 흉내 내는 아이도 나온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할머니와 살던 시절을 회상하던 부분이다. 할아버지의 바람 같은 삶과 높은 인품을 그리워하며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놓고 손주에게 세상을 알려주던 할머니.


이외수 작가가 어린 시절 할머니와 살며 동냥젖을 먹고 나중에 재혼한 부친과 같이 살았던 것 등을 소설로 그려낸 것 같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할머니를 빼면 존재할 수 없다고 했었는데 소설 속에서나마 이렇게 단아하고 강단 있으며 푸근하게 그려낼 수 있어서 작가도 할머니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지금 할머니는 안 계시더라도 신선의 세계와 4차원 세계를 상상하는 작가라면 영적인 사후세계도 믿지 않을까.

늘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신선세계에 다녀온 주인공은 현실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세상일이 하찮게 느껴지고 학교 공부와 인간관계도 중요하지 않다.

명문대에 들어가서 잠깐 공부하지만 다시 나오고,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성폭행범이라는 오해도 풀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고,

뜬금없이 정육점에서 일하기도 한다.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고기를 썬다는 내용에서는 작가가 아무리 술을 마시고 놀고먹을 때도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결국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신선세계에 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과 벽오금학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급허탈.




♣ 장외인간 -이외수 「해냄」


여기에서도 주인공이 제 발로 정신병원에 간다. 작가는 이 세상이 커다란 정신병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가끔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을 대할 때, 뉴스에서 터무니없는 일들이 보도될 때,

내 기준으로 보면 요령 피우며 일하고 간교한 사람이 세상살이에는 더 기민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 그런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나도 장외인간인가.


소설 속에서는 달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주인공이 혼자 달을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읽는 내내 ‘달’이 우리의 ‘맑은 마음’으로 읽혔다. 나와 타인, 세상에서 달처럼 환한 마음이 사라진 느낌.

작가는 현실이 그렇다고 느낀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달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들에게 달을 상기시킨다.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 또한 시도하는 것이 좋다. 가끔 더 큰 실망을 낳기도 하지만.. 쩝.

요즘 산수의 고민이 큰 것 같다. 고등학교, 진로.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도 더 된 지금의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든든하게 한 위치에서 우뚝 서 있어야 나의 조언들이 좀 먹힐 텐데 직업인으로서 부실한 엄마의 말들은 별로 힘이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사고니 외고니 특목고들을 나누어 놓고 어린 새싹들을 미리부터 계층과 계급으로 분류시켜 놓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긴 학교 교육에 충실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그런 제도가 고맙겠지.

미리부터 선택받은 우월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할 테니까.

학교공부에 좀 더 능숙한 산하가 그런 특목고에 간다고 하면 나도 좋다고 하겠지.

완전 다른 취향과 능력의 아이 둘 가진 엄마의 두 가지 마음.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선택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각자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살면 ‘장외인간’이 더 적어질 것 같다.


주인공이 정신병원에서 만난 코미디언 曰,


‘곤충학자들에 의하면 호박벌은 도저히 비행을 할 수 없는 신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몸통은 지나치게 크지만 날개는 지나치게 작기 때문이죠.

과학적으로는 그 날개로 도저히 그 몸통을 공중에 띄워 올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호박벌은 꿀을 채취하기 위해 하루에 약 천 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곤충학자들에 의하면 호박벌은 자신의 몸통에 비해 날개가 작다는 사실을 일절 의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결함을 일절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기적을 행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오로지 꿀을 채취하겠다는 열망 하나가 하루에

천 킬로미터를 날아다닐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거지요.’




♣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외수 「김영사」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이 책의 부제다.

난 생각하고 알려고 한다. 요즘 특히 더 그렇다. 산수의 기분을 느끼려 하기보다 그 상황을 생각하고 알려고 한다.

그게 반발심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가 글 속에 등장하는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괴물’, ‘벽오금학도’, ‘장외인간’ 같은 책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내 손끝을 비켜 갔었다. 제목들부터 별로였다.

하지만 읽고 난 후에는 제목이 딱 맞는다는 느낌이다.

꼭 ‘나를 아는 사람만, 내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만 고를 수 있는 책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외수 작가의 다수의 에세이들이 잡다한 트위터 글들로 엮인 걸 보고 한때 그가 책을 참 쉽게 써낸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이 책을 읽고 소설까지 찾아 읽으며 작가의 가치관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젊은 시절의 고난,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열등감에 빠져 있던 마음,

자신을 가두어 놓고 글을 쓰던 처절함.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도 스스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그로 인해 타인에게 한줄기 빛이라도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이 현재의 그를 만들지 않았을까.


‘난쟁이 피터’라는 책에서도 느낀 거지만 자신을 위하기보다 타인을, 세상을, 자연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그 사람의 ‘진짜 일’이 생겨나는 것 같다.


소설 속의 신비주의가 작가의 경험(우주인과의 교신, 유체이탈 등)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에

이 사람이 진짜 정신이상이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내가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만물의 진실과 우주의 본질에 닿고 싶다는 그의 마음에는 격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이름모를 산의 인동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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