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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Jul 23. 2022

친절한 그녀가 화가 났을 때

그녀는 내가  여자중에서 유니폼이 가장  어울리는 여자였다. 쇄골이 살짝 드러나는 소라색 블라우스에 무릎위까지 내려오는 검은 스커트는 그녀의 차분한 이목구비와   어울렸다. 족보있는 집안에서 부모님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예의바른 장녀 느낌이랄까, 그녀는 누구에게나 과하지 않는 따뜻한 미소로 친절하게 대했다. 직장에서 아무리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입꼬리 한번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화를 푸는 방법은 그녀의 회사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서 나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 호텔로 나를 불러낼때면 오늘 그녀에게 엄청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는 신호였다. 차가운 샴페인을 딱 한병 비우고 약간의 취기속에서 사랑을 나누고 나면, 그녀는 삼성역이 내려다 보이는 통유리 앞에 맨몸으로 서서 그녀의 사무실을 무표정하게 내려다 보았다. 난 침대 위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궁금해 물었다. 그렇게 내려다보면 기분이 나아지는지


그녀는 하얗고 긴 다리 한쪽을 소파에 올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벗고 있어도 날 손끝 하나 만질 수 없는 저들이 불쌍해보여. 그래서 기분이 좀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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