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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우 Aug 07. 2022

키즈카페에서 가장 예쁜 애엄마

주말에 친구 와이프가 운영하는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실 아르바이트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그 키즈카페에는 내 투자금도 일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제수씨가 얼마나 야무지게 준비를 잘하던지 새 차를 사려고 모아둔 거금을 홀딱 넘기게 되었다.


내가 홀딱 넘어간 제수씨의 성공전략은 철저히 엄마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키즈카페는 아이들이 잘 노는 곳 보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한숨 돌리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놀이공간 주변으로 엄마들이 모여 쉴 수 있는 방을 노래방처럼 여러 개 만들었고, 음식 메뉴도 꽤나 수준 있는 브런치 메뉴를 포함시켰다. 거기에 킬링 포인트는 호가든 생맥주와 화이트 와인을 글라스로 판매한다는 것이다.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늘 엄마들로 붐볐다. 주말에는 예약 없이는 입장도 어려울 정도였다. 주말에 돌볼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난 이렇게 가게에 자주 불려 나와 무급으로 일손을 거들게 되었다.


그날도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른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아이들과 놀아주고 음식을 서빙하며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이 여느 때와 달랐던 것은 그녀가 손님으로 온 것이다.


김은하 차장.


그녀는 삼 개월 전 우리 회사 마케팅 팀원으로 내가 직접 채용한 직원이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던 그녀는 전 회사의 압박으로 원치 않은 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다시 재취업을 하려 했지만 경력이 단절된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본부장님. 저를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실망시키지 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첫 출근날, 그녀는 울컥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했다. 난 그녀의 경력과 열정이라면 우리 회사에서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그녀를 채용하였다.


회사가 아닌 밖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은 많이 낯설었다. 회사에서 그녀는 늘 단정한 비즈니스 정장 차림 었다. 그녀에게 몇 번 편하게 캐주얼로 출근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항상 반듯한 커리어우먼의 복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한껏 멋을 낸 모습으로 아이 둘과 친구 엄마들과 함께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긴 하얀 다리가 훤히 드러 다는 짧은 청반바지에 가녀린 목선이 드러나는 하얀 프릴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에 난 잠시 홀린 듯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마스크를 콧등까지 올려 쓰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날 알아보면 그녀도 불편할 것이고 나도 투잡을 뛴다고 회사에 소문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난 테이블 서빙을 다른 아르바이트생에 맡기고 재빨리 볼풀 놀이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여느 다른 손님들처럼 아이들을 놀이방에 풀어놓고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 친구 엄마들과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난 제수씨에게 저 방은 특별히 더 잘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쭈뼛거리는 그녀의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평일 내내 회사일에 육아에 많이 지쳤을 텐데 오늘만이라도 그녀가 편히 쉬다가 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그녀 아이들은 금방 이곳에 적응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녀 방에는 주문한 음식들이 빠르게 서빙되었다.


그녀의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잘하는 직원이기도 했지만 매력적인 여자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녀가 유부녀가 아니었더라면   번쯤 데이트 신청을 했을  같다.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그녀의 몸매는  출근날부터 직원들 사이에 뜨거운 이슈였다. 무릎을 살짝 덮는  기장의 스커트와 흰색 블라우스는 그녀의 숨겨진 아름다운 선을 가리지 못했다. 거기에 쳐다보는 순간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는 매력적인 눈웃음.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 직원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번쯤은 했을 것이다.


‘남편이 누구인지… 참 복 받았네’


이 키즈카페가 오픈하고 온 손님들 중에 가장 예쁜 엄마라는 것에 대해 제수씨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많은 호가든 생맥주를 주문하는 손님이라는 것에도. 세명의 다른 엄마들과 함께 그녀는 입장 한 시간 만에 이미 열여섯 잔의 생맥주잔을 비워냈다. 그녀의 방을 서빙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본인이 키즈카페에서 일하는 건지 호프집에서 일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주중에 내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줘서 그런가 싶어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난 그녀 방에 고르곤졸라 피자를 서비스로 넣어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그녀의 아이들과 볼풀에서 허우적대며 놀아주었다.


볼풀장에서 내 양다리를 붙잡고 깔깔대는 그녀의 두 아이들과 유리창 너머 보이는 그녀를 번갈아 보다 나도 모르게 불순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햇볕이 내려쬐는 휴양지 수영장에서 천사 같은 아이들과 놀아주는 자상한 나의 모습. 그리고 선데크에 비키니 차림으로 누워 그런 남편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그녀. 아이들이 뿌려대는 물방울들은 햇볕에 반사되며 보석처럼 빛나고 그녀의 수영복 끈은 금방이라도 풀어질 듯 팽팽하게…


“… 저기요”


잠시 상상에 빠져있던 사이 그녀가 내 앞에 다가왔다. 난 정신을 번쩍 차리고 마스크를 급하게 올려 썼다. 날 알아본 걸까? 그녀는 술에 취한 듯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올려보았다. 그녀의 프릴 블라우스 위로 깊은 가슴골과 가녀린 목이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청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학생, 우리 애들 좀 계속 잘 봐줘요, 애 참 잘 보네”


그녀는 내 손에 반으로 접힌 오만 원 지폐를 남기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내 잠시 동안의 아름다웠던 상상도 그렇게 아스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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