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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Nov 27. 2024

내시경실에서 시간 때우는 법

즐거운 출근길


시술이 아닌 일반 검진 내시경을 할 때는 평소보다 긴장을 풀기도 한다. 같은 검사를 하고 반복된 일을 하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이기도 하지만, 더디게 가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을 한다. 내시경 검사 중에 줄기차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긴장을 줄이기 위해서 기도 하지만 즐겁게 일을 하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펠로우 선생님들과 내시경을 할 때는 집중해서 병변과 화면을 보고 Impression으로 무엇을 줄 거냐며 묻기도 한다. 눈치 빠른 선생님들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고 먼저 되묻기도 한다.


 의사가 처방하고 진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 왈가 왈부 하지 않는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잘하고 익숙해지지만 펠로우 1년 차 때 흔히 Impression(추정진단)을 애매하게 줄 때가 왕왕 있다. 예를 들어 조기위암을 육안적으로 분류할 때 누가 봐도 IIa+ IIc인데 IIc만 줄 때가 있다. 예전 펠로우 선생님 중에선 IIb를 주는 멋진(?) 선생님도 있었다. 판단의 이유가 확실했기 때문에 넣었다는 그 선생님의 자신감이 좋았다.(그날 그 선생님은 환자를 담당하는 교수님께 호출당했다.)


 Impression은 뻔하기도 하고 사람이 보는 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찾는다. 내가 했던 시간 보내기 기법을 소개해 본다. 내시경실에서 일을 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방법들이다.


1. 검사자의 혈액형 맞추기.


MBTI가 있기 전엔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옛 법(?)이 있었다. B형 남자라는 영화도 있을 만큼 우리나라는 혈액형에 미쳐있었다. 혈액형별 성격 유형의 발상지인 일본 조차도 사장된 그 이론을 나는 꾸준히 끼워 맞추려 애썼다. 사상의학, 심리테스트등 여러 가지 분류법과 성격유형 파악방법이 있었지만 나에겐 혈액형이 전부였다. 자칭 혈액형 전문가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고 혈액형을 맞춘다. 70%의 확률로 맞추는 나를 보고 선생님들도 신기해했지만, AB형은 제외하고 1/3의 확률로 찍으면 되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라기 보단 찍기라고 보면 된다.


이게 무슨 …


2. 복용약 맞추기


 대장내시경을 할 때 흔히 맹장 주변에 소화되지 않은 약이 있는 경우가 있다. 소화 능력이 더디거나 소장에서 흡수가 다 되지 않고 대장까지 흘러내려오는 경우다. 아침 일찍 복용하는 혈압약이 남은 경우도 있고 갑상선약 같이 색이 있거나 형태가 위안에 남은 약들을 어림짐작으로 맞추는 것이다. 과거력을 알고 진료받는 과를 보고 맞추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턴 검사 당일 복용한 약을 맞추는 것을 넘어, 검사자가 평소에 복용하는 약도 맞추기 시작했다.


3. 양말 색으로 환자나 수검자의 검사 태도 평가하기.


 양말색, 헤어스타일, 패션, 걸음걸이등 사람은 알게 모르게 겉으로 드러난다. 표정과 말투에선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도 보이고, 그날의 기분 또한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싸한 촉은 틀린 적이 없다.


https://brunch.co.kr/@colloky/322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직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하며 출근하는 나에게, 직장은 놀이터다. 내일도 정우성이야기를 할 테고, 요즘 자주 보는 이혼숙려캠프 이야기를 하겠지.


P.S - 즐거운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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