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의 문제만 있을 뿐이지
정치이야기를 하는 매거진이나 브런치북을 따로 만들어야 할까? 사실 정치와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굳이 나눠야 하는 걸까? 문제는, 정치 성향이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고달프기도 하고 쉽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도 나이 30살이 넘어서부터는,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나도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서 정치적 관점이 고정될까 봐 겁난다. 회색분자가 되는 거 보단 낫겠지만.
20대에는 집회참석을 하고 노조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나름 좌파(?)의 삶을 살았었다. 삶을 살다 보니, 세상을 좀 먹는 것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다. 나쁜 놈들이 세상을 말아먹고 있었다. 여러 장단점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쁜 놈들 중에는 염세주의자가 있다. 비관주의자, 페시미스트(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요즘은 페미?라는 단어가 너무 공격적으로 사용되어서 조금 씁쓸하긴 하다.)로 불리는 그들. 사실 그러한 성향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면 모든 것이 피곤해진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것들에 대해 고마움이 없다. 대신 지옥 같은 내 삶은 기존의 권력과 시스템 때문이라는 좋은 핑계를 댄다. 그 패배의식은 주변을 병들게 하고 세상을 좀 먹는다. 나 또한 내 주변을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나는 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우리 모두는 존중받아야 한다. 나만 특별히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봉사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가난하다고 해서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이 그러한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겠지만, 끝없이 바라고 바라던 그들을 보면서 내가 해왔던 활동과 호의는 퇴색해 버렸다.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거라는 그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봉사를 하고 그들을 위해 더 낮은 자세로 임했던 수많은 종교인, 봉사자, 기업들을 존경한다. 여러 봉사활동 중에 점자도서 봉사활동은 제법 오래 했었다. 군상들을 보지 않았고, 스트레스도 받을 일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도움이 된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염치의 문제만 있을 뿐이지. 이재명 대선 후보가 백선엽장군 기념관을 방문 한 모습을 보면서 정당이 지지하는 진보와 보수라는 관점은 의미가 없어졌다. 백선엽 장군의 행적과 전공이 대접받고 존중받길 바라는 입장이기에,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방문은 놀라웠다. 2011년, 협성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백선엽 장군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었지, 좌와 우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거동이 힘들었지만 30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강연을 이어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하던 노인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 무한한 존중을 엿볼 수 있었다.
난 아직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좌, 우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평생 일해도 강남 아파트를 사긴 어렵다. 하지만, 노력하고 도움이 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비록 부산 변두리에 살고 있어도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불공평하면 불공평 한대로, 나에게 주어진 길을 만들어 가야지. 마냥 불평만 하다가, 남이 준 세금으로 생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염치없는 그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길을 찾고 세상에 감사해야지.
p.s - 백선엽 장군님의 싸인과 덕담도 받았었는데… 안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