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림
며칠 전 흥행한 <중증외상센터>에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어느 의사도 중증외상센터나, 응급실 센터를 가지 않으려 한다. 그곳에는 항상 젊은 청년들이 아닌 그저 쭉 일해왔던 50대, 60대들이 대다수이며,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하지 못한다는 청년들의 말과 달리 3D업종이나 공장에서는, 사람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를 쓸 정도이다. 어느 지방 병원에서는 연봉 3억이라는 큰 돈을 제시하며 의사들을 모집했지만, 놀랍게도 그 어느 의사도 지방 병원에 지원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일때면, 항상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직종을 원한다고 말한다. 수업 시간에 책을 세워놓고 잠자는 아이들도, 공부의 공자조차 노력해보지 않은 고등학생들도 모두 깨끗하고 안전한, 칼퇴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다 핸드폰을 키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들의 잘난 인생을 구경하고 있을 때면 한숨만 나오고, 힘들다, 무기력하다, 사회가 문제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저 그 상실감과 공허함, 무기력함을 핑계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댓글창에서 주워들은 말로 사회가 문제다라고 외친다.
청년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처럼 서론을 적었지만, 사실 나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가끔씩은 곁의 어른들이 말씀하신다. 공부가 제일 쉬운 거라고, 그것도 못하면 나중에 커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어른들의 말이 차차 공감이 되곤 한다. 샤프를 쥐고, 좋은 집과 좋은 음식과 좋은 선생님, 부모님 밑에서 손을 끄적이고 머리를 몇 번 굴리는 것은, 그리고 그 잠깐의 5년만으로 나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무엇이 그렇게 힘들고 지친 건지, 입에 힘들다 지쳤다라는 말만 달고 산다. “그건 안될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툭, 하고 가볍게 뱉은 말일 뿐인데 그 말을 뱉으면 몸과 정신이 무거워지며 힘이 축축 빠지곤 한다.
며칠 전, 한 인간실험을 관찰한 적이 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앞으로 원하는 인생을 글로 적게 하였다. 마치 자서전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참가자들에게 매일 아침 자신이 쓴 자신의 미래 인생을 읽어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10년 후 참가자들의 모습은 그들이 작성한 자서전의 인생과 거의 일치하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매일 책상에만 늘어져있는 나에게, 우리 엄마는 나를 강제로 복싱장에 데리고 가서 6개월을 결제를 하고 오셨다. 돈을 냈으니 안 갈수는 없고, 그래서 매일매일 꼬박꼬박 복싱장에 갔다. 가자마자 줄넘기를 2분씩 3세트를 하고, 아령운동을 3세트씩 했으며, 동작을 외우고, 미트를 받은 다음, 런닝머신까지 20분 뛰고 집에 귀가하는, 나에게는 작은 ‘루틴’이 생겼다. 복싱장에 출석할 때마다 정말 가기 싫고, 움직이기는 더더욱 싫었으나, 매일매일 하루하루의 루틴이 생기고, 그 날 꼭 해야하는 작지만 강한 목표가 생기니 나의 하루도 더 가치있어지는 기분이었다.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도파민도 터지고, 몸도 가벼우니 공부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었으며, 내가 오늘 완수한 나의 목표처럼 공부 또한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후로는 힘들다라는 얘기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으려 한다. 그 작은 하루의 목표 하나가, 매일매일 입밖으로 꺼내는 단어 하나하나가 나의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선사하게 되었다.
“Is this all real, or it is just happening inside my head?”
“of course, it is happening in your head, Harry. Why should that mean, it is not real?”
해리포터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해리가 하얗고 공백한 미지의 세계에서 덤블도어 교장님을 만난다. 이곳이 현실인지, 자신의 머릿속인지 궁금하다는 해리의 질문에, 덤블도어는 너의 머릿속이지만, 그 머릿속이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냐는 해리의 두 번째 물음에, 덤블도어는 아무말 없이 뒤 돌은채 사라진다. 미래는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는 우리가 매 시간마다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의 미래를 장담할수도, 미래에는 해답과 정답이 없으니 미래의 답을 알려줄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가짐과, 매순간마다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리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 자신을 향한 목표와 그 목표를 실현하려는 루틴이 비로소 우리의 미래를 차곡차곡 연장해간다. 또한 덤블도어의 말처럼, 우리의 머릿속의 생각들이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위의 실험처럼,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고 꿈결처럼 적어보는 나의 미래가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미래를 꿈꾸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아주 작은 루틴이라도 하루하루 연장해나가며, 우리의 뚜렷한 목표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성공의 가장 정확한 풀이과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