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이미 펼쳐졌거든.
사라진 대문 - 마지막
나눔을 팔아 두려움을 무너뜨렸던 그 순간은 레나에게서 까마득해져 가요. 엄마 아빠가 떠나기 이전에 레나는 꿈속 세상을 무서워했어요. 늘 안개가 자욱했거든요. 그런데 이젠 꿈 안이 선명하고 눈을 뜰 때마다 안개가 보이나 봐요. 그러나 뒤바뀐 세상도 두렵지 않다고 해요.
가끔 레나는 그런 생각을 해요. 지난 꿈 안에 행복을 접어두고 온 것 같다고 말이에요. 언젠가 그것을 펼치게 된다면 무엇이 나올까요.
"소금."
"응?"
"너는, 저 대문을 왜 부수고 싶어?"
"항상 너는 대문 밖을 보더라고. 저게 없어지면 너도 더 많이 웃을 것 같아서!"
"대문 밖에 있던 기억들이 대문 안으로는 넘어오지 못하는 것 같아서. 어릴 땐 대문이 낮아서 무서웠어. 근데 이젠 혼자 있어도 두렵지가 않다? 내가 나눔과 두려움을 바꿨으니까. 그러니 소용없어 소금아. 난 이제 누구와도 오랜 인연을 맺을 수 없을 거야."
소금이는 크고 맑은 눈으로 레나를 올려다봤어요. 그리고 한참 뒤 마당으로 뛰쳐나가 솜 같은 주먹으로 대문을 마구마구 내리쳤어요. 레나의 만류에도 소용이 없었어요. 젤리 같은 발바닥이 녹슨 대문 껍질에 긁혀 피가 나기 시작했어요.
"소금아! 알겠어.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멈춰줘."
레나는 다급하게 마법 레시피를 펼쳤어요. 반려동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마법은 없지만 그들에게 인간의 손과 발을 갖게 해주는 마법은 있었어요. 물론 한 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요.
레나는 쓰여 있는 레시피대로 손모양 젤리와 발모양 젤리를 만들어 소금이에게 먹였어요. 그러자 조그마하던 소금이의 손과 발이 울긋불긋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의 손과 발로 변했어요.
"우와, 레나야! 나도 너랑 비슷해졌어."
소금이는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실 곳곳에 발자국을 남겼어요. 그러다 아차 하더니 다시 마당으로 뛰어갔어요.
"기다려, 소금아! 이거 잡아."
레나는 소금이에게 망치를 건넸어요. 그리고 자기 손에도 하나 쥐고 대문 앞으로 다가섰어요. 둘은 망치로 대문을 힘껏 내려쳐 대문을 부수었지만, 한참 동안을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어요.
그때 소금이가 레나의 손을 먼저 잡아주었고 그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어요. 레나는 대문 바깥에서 누군가의 손을 꼭 잡던 순간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했어요. 그래서 더는 놓치고 싶지 않은 손이었어요.
"소금아"
"응?"
"내가 두고 접어 두고 온 행복,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미 펼쳐졌거든."
"응? 무슨 얘기야?"
"아니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