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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Apr 28. 2024

집합체

산책을 다녀온 뒤 공동 현관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탁. 탁. 탁.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섰다.

현관문을 열자 십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슴도치 초코가 대자로 뻗어 배를 식히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그래서 양손으로 머리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툭 소리와 함께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다. 열을 좀 식히고자 냉장고 문을 열어 그것을 넣어뒀는데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이어서 차갑게 식은 심장은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10초간 돌렸다.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고 있는 동안에도,

머리를 떼내어 잠시 냉장고에 넣어둔 때에도,

나는 살아있다. 신기하게도 살아진다.


내가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산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증명받을 수 없는 무언가라면 저기 뛰어다니고 있는 초코도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살아있다면 하지 못할 것들을 나는 지금 하고 있다. 초코는 죽어선 할 수 없는 행동을 지금 하고 있다.


내일 꿈에서 깨면 돌아가신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 눈 앞에 있을 거다.  꿈에서 깨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내 세상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의 집합체가 현실이라 간주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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