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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Jun 30. 2020

너의 이름은?

영화 톰보이 Tomboy

아이는 혼란스럽다. 태어난 것이 그랬듯 성별과 이름도 내 선택이 아니었는데,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단다.

새로 이사 온 낯선 동네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원하는 성별과 이름으로 잠시나마 살아보면 어떨까. 창밖으로 동네 아이들이 노는 걸 내다보다가 용기를 한 줌 쥐고 밖으로 나왔는데, 마침 이웃 소녀 리사가 말을 건네 온다.


“너의 이름은?”


매력적인 새 친구 리사에게 미카엘로 존재하고픈 로레


10세 내외 또래들 사이에 처음 이름을 묻는 것은 ‘넌 누구야? 일단 내 마음에 든다. 같이 놀래?’와 비슷하다. 로레 역시 리사가 마음에 든다. 뭔지 모르게 신비한 성숙미를 뽐내는 리사의 질문에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내밀어본다.


“난 미카엘이야”


리사는 친절하게도 동네 아이들에게 미카엘의 첫인상을 좋게 남겨주는 것 까지 개입하여 무리에 섞이는 지름길마저 터준다. 미카엘은 리사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 금세 새 동네 친구들 사회에 진입한다.


서로에게 끌리는 미카엘과 리사


미카엘로 살아가려면 생각보다 여러 가지를 필요로 했다. 로레는 마치 이런 순간들을 한참 전부터 머릿속에 구상해온 것처럼 때마다 적절한 대응책을 찾아낸다. 물론, 최소 한 명의 협조는 필요했다.

깜찍한 동생 잔은 본인의 엉망진창인 그림을 위해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어 주고,  돌아올 시간을 팔목에 손목시계로 표시해주는 다정한 언니 로레를 사랑하기에, 잠깐의 망설임 끝에 협조에 응한다.


그야말로 예쁜 자매, 언니 로레와 동생 잔


로레의 가족은 이 영화를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던 튼튼한 기초공사처럼 엄마, 아빠, 여동생까지 모두 사랑이 풍부하고 선하기 그지없다.


아빠는 로레의 혼란과 호기심을 따뜻하게 지지해준다. 운전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딸을 무릎에 앉혀 운전 손맛을 보여주고, 맥주 맛을 궁금해하는 딸에게 한 모금은 괜찮다며 맥주잔을 내밀어준다. 아직 회사에서 별 힘없는 일개 직원으로 여유가 별로 없지만, 딸들의 성향에 맞춤형으로 시간을 같이 보내주고 출산을 앞둬 예민한 아내의 심기도 잘 배려해준다.

 

곧 셋째를 출산하는 엄마는 컨디션이 안 좋다. 본인 몸 챙기기 버겁지만 최선을 다해 딸들에게의 사랑엔 소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자상한 아빠를 만나 다행이야, 로레


그런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와 폭탄을 던져준다. 큰 딸 로레가 이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남자로 살고 있다는 걸. 엄마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로레에게 원피스를 입힌 뒤 함께 사과하러 나선다. 혼란한 와중에 마음마저 상한 딸에게 엄마는 말한다.


"너한테 벌을 주거나, 너를 가르치려 드는 게 아냐. 이건 해야만 하는 거야. 언제나 널 사랑해."


언제나 너를 사랑해


모욕 같은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나무에 기대어 숨을 쉬어보는 로레.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등교. 온 동네 아이들에게 까발려진 정체로, 여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앞으로의 시간이 두렵다. 이 사단을 겪었지만 마음속 혼란함은 가시질 않는다.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영화에 혹한 이유는 오직 하나, 포스터에 있는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난 그 아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의 고민이 무엇일지는 몹시나 궁금했다.
영화의 기본 정보를 보니, 무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였다. 그제야 어쩌면 성적 취향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영화는 그것보다 더 뜨거울 수밖에 없는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10살쯔음에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오만가지 때문에 몹시나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조금만 튀는 의견을 말하거나 ‘정답’이라 적혀있는 것에 대해 반문을 하면 유난떤다 유별나다 손가락질받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 역시 얼마간 당시로썬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던 거짓 연기를 했었다. 괜찮은 척, 나도 그런 척, 잘 모르는 척.. 로레는 다행히 나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과감하고 용감했다.


해결이 쉽지 않은 고민을 만나버린 로레.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창밖을 내다보는데, 리사가 보인다. 리사 옆에 가서 묵묵히 서있는 로레에게 리사가 묻는다.



너의 이름은?
난 로레




톰보이 Tomboy (2011)

드라마, 프랑스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조 허란, 말론 레바나, 진 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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