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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내 Jun 08. 2020

시드니 생활, 나의 첫 보금자리에 도둑이 들다니!

호주 생활은 원래 액땜으로 시작하는거래..


호주에 도착한 날, 나는 정해둔 숙소가 따로 없었다. 보통 여행을 갈 때도 숙소는 미리 해놓고 가지 않나? 그 당시의 나는 도대체 무슨 패기로 일단 가고 보자!는 생각으로 호주에 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랬다. 다행히 같이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오빠들이 예약해놓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며 같이 가보자!라는 말의 나는 그냥 무작정 쫄래쫄래 따라갔던 덕분에 잠시 지낼 거처는 구할 수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조금 허름해 보이는 느낌의 첫인상이었지만 뭐 잠시 지내는 거니 괜찮겠지! 하며 일단 일주일을 여기서 지내보기로 했다. 방을 알아보던 리셉션 오빠는 4인실에 방이 하나 있다고 그 방으로 나를 배정해 주었다. 건네준 키를 받고 내가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거 웬걸? 웃통을 까고 깔깔 웃고 있는 백인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라.. 방이 이게 아닌가 싶어서 '쏘리!"를 외치고는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다시 리셉션에 내려가서 방 번호를 착각한 것 같다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랬더니 그 방 번호가 맞단다. 한국에서는 남녀 혼성 룸이 흔하지 않지만 여기 호주에서는 굉장히 흔한 일이었던 거를 몰랐던 나는 'Hmm.. 근데 저기 남자가 있는걸?'이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쿨한 리셉션 오빠의 한마디..

'So what?'

그래.. 그들에겐 남녀 믹스룸은 '쏘왓'이었다. 나에게는 'What..??'이었지만..

호주에 와서 겪은 나의 첫 번째 컬처 쇼크였다.



남자랑 방을 같이 쓸 수 없다며 방을 바꿔달라 했지만 리셉션 오빠는 괜찮다며 나를 다독이며 나중에 자리가 나면 여자 방으로 옮겨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뭐.. 하는 수없이 후-하 심호흡을 하고 백인 오빠들이 웃통 까고 낄낄거리고 있던 그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색하게 '하이'를 하고는 백인 남자가 누워있는 위의 이층 침대로 기어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이 친구들도 나와 같은 워홀러 신세였는데 이 친구들 역시 영어가 부족해서 모든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해서 대화를 했다. 처음의 왓??스러운 첫인상과는 달리 굉장히 온순한 프랑스 친구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속눈썹도 반짝반짝 빛나는 금색이었다.


이런 엘프 같은 애들과 같은 방을 쓰다니 리셉션 오빠에게 '왓?'할 일이 아니었다. '땡큐'를 했었어야 하나...?

그 뒤로는 하루 종일 집을 구하러 다녔다. 시드니 워홀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드니의 집값은 정말 어마 무시하다. 매달 엄마에게 돈을 받아쓰는 나로서는 최대한 방세가 싼 곳을 찾아가야 했지만 그것 역시 쉽지가 않았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악명 높은 시드니 집값으로 시드니에 사는 한국인들은 개미집 같은 집에서 몸을 구기며 살아가야 했다. (지금은 제발 아니길 바란다) 가장 싼 월세를 구했다는 같은 어학원의 언니는 베란다에 텐트를 친 집에서 한동안 생활을 했다. 아무리 싼 가격이어도 그런 집에서는 차마 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중국인 오너를 만나서 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주에 140이나 하는 일반적인 가격보다는 조금 쎈곳이었지만 2인 1실에 화장실은 쉐어였지만 꽤 깨끗하고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내 룸메였던 중국 언니도 꽤나 친절했고! 그래서 덥석 결정을 했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기로! 중국인 룸메 언니는 시드니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했는데 자기과에 학생들의 80프로가 중국인이어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다고 했다. 가끔 자기가 중국에 있는 건지 호주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하하 웃는 언니는 성격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시드니에서의 나의 첫 보금자리!


그렇게 중국 룸메 언니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쉐어는 한국인들과 하는 게 좋다며! 한국인 숙소를 다들 찾아 나섰지만 난 그래도 외국에 왔으니 외국 친구들을 최대한 많이 사귀고 싶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방쉐어를 하는 중국인 언니도 마스터룸에 사는 영국 친구들도 그 옆방에 살던 중국인 오빠도 감사하게도 다들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처음 호주에서 4개월을 시드니에서 지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지 않았다.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중국인 룸메 언니와는 시드니를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면 꼭 다시 보자! 고 얘기는 했는데 그 뒤로는 만난 적이 없다. 나중에 졸업한 뒤로는 싱가폴에 가서 취업을 하고 싶다 했는데 싱가폴에서 자리 잡고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내가 지냈던 곳은 시내에서 그래도 꽤 가까운 울티모(Ultimo)라는 지역이었다. 바로 옆에 룸메 언니가 다니는 UTS대학교가 있어서 언니 찬스로 도서관에 자주 따라가서 공부를 하곤 했다. 그 옆에는 피아몬트 파크라고 하는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저 멀리 하버브릿지와 루나파크가 보이는 아주 멋진 곳이었다. 차이나 타운 그리고 달링하버와도 가까워서 자주 가기도 했던 곳! 이곳에서 나는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자주 갔던 집 앞 피아몬트 파크! 선셋이 정말 이뻤다!


물론 이곳에서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언제 한 번은 이 집에 도둑이 들어서 온 방이 다 털렸던 적이 있다. 옆방의 중국인 오빠는 여권과 현금이 몽땅 털렸고 나는 여권과 돈은 무사히 세이프 했지만 엄마가 호주에 온다고 새로 사준 노트북과 언니가 새로 사준 빨간 배낭을 도둑맞았다. 그날은 이상하게 언니가 무서운 꿈을 꿨다며 나에게 무슨 일이 없냐고 전화가 왔던 날인데 그날따라 몸이 조금 안 좋아서 학원도 안 가고 집에서 쉬고 있었던 날이었다. 학원도 안 나온 내가 걱정되었는지 옆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밥을 해주겠다 해서 그 언니 집에 밥을 먹으러 간 사이에 도둑이 들었던 것.. 그래서 나는 그날 소중한 엄마와 언니의 선물을 도둑맞았다. 그 당시는 그게 뭐가 그리 서러웠던지 엄마에게 꺽꺽 울면서 전화를 했다. 내가 호주에서 지내면서 가장 서럽게 울었던 순간을 꼽자면 도둑이 들었던 그날이었지 싶다. 물건이 도둑맞았단 사실이 슬펐다기보단 이곳이 내가 살기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에 서럽고 무서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그날, 엄마는 너만 안전하면 된 거라며 전화기 너머로 꺽꺽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 줬다.


그런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옆방의 영국 언니들과 중국 오빠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겠다며 떠났다. 나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나와 룸메였던 중국인 언니는 그냥 남기로 했다. 나와 함께 노트북을 털린 룸메 언니는 꺽꺽 울던 나와는 달리 꽤 침착했다. 안 좋은 일은 어디에 가든 있을 수 있는 거야-라며 이미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말자!며 그날 나를 꽤 많이 위로해 주었다. 그 위로의 말 덕분이었는지 침착한 언니의 듬직한 모습 덕분이었는지 나는 그 뒤로도 죽 이 집에 살았다.



집에 도둑이 들었던 날 기분이 우울할 땐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언니가 강추한다는 사천요리의 중식당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차이나타운까지는 걸어서도 충분히 갈수 있어서 꺽꺽 울던 나를 데리고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사천 출신이었던 언니는 정말 제대로 중국의 맛이라며 기가 막힌 사천 식당이라며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면서 사천의 대표 메뉴인 '마라샹궈'와 '토끼고기'를 시켰다. 나의 토끼고기 첫 시식은 중국 본토가 아닌 여기 시드니에서.. 그 당시 나는 그 사천식 얼얼하게 매운 '마라'의 맛에 정말 눈물이 쏙 빠졌다. 입안 가득 얼얼함이 빠지지가 않아서 머리가 띵-할정도로 아파서 차이나타운 앞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으면서 그 얼얼함을 달랬다.


중국 룸메 언니는 호주에 와서 안 좋은 일이 참 많았다고 했다. 돈이 털린 적도 있었고 지나가다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남아있었던 이유는 안 좋은 일보다 좋은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보면 안 좋았던 순간들보다 좋았던 순간들이 더 많이 기억될 거라며- 오늘의 힘든 시간은 잊어버리자!라고 하며 씩 웃었다.

원래 호주에 오면 액땜 한 번씩은 하는 거라더니 오자마자 제대로 액땜을 하며 호주 생활의 시작을 열었다. 꺽꺽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던 그 순간보다 차이나타운에서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면서 중국 언니와 수다 떨었던 그 순간이 더 기억나는 거 보면 정말 안 좋은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남는다는 언니의 그 말이 맞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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