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어학원, 어학연수는 비추?
호주 워홀에 오는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크게 3가지가 있다. 바로 여행, 영어공부, 돈.
호주 오기 전 나의 가장 큰 목적은 영어공부였다. 내가 일본 생활을 꿈꾸다가 어찌어찌 해서 호주에 오게 된 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현지에 가서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처음 시드니에 갔을 때는 4개월 동안 어학원을 다녔다. 사실 어학연수라는 건 부모님 돈으로 해외에서 놀다 오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어학원은 다니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지원한 인턴십 프로그램에는 이 4개월 어학연수 코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다녀야만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나에겐 4개월의 해외에서 놀고먹는 어학연수의 기회가 주어졌다. 집값도 물가도 후덜덜한 시드니에서 생활을 하려면 집에서 보조를 받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기에 학원을 다니면서 오후에는 알바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나도 알바를 하면서 지내볼까- 했는데 뭔가 주객전도가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돈을 벌러 온 게 아니라 영어공부를 하러 온 건데 한국인 밑에서 일을 해봤자 영어가 늘 것 같지도 않았고 나에게 생활비를 대준다는 거 말고는 크게 이득볼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염치없이 4개월 동안은 엄마 찬스를 쓰기로 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이 돈 다 갚을게!"라고 큰 소리를 떵떵 치고는.
그렇게 영어공부에 집-중!을 하자!라고 다짐을 하고 열심히 영어공부에만 매진 해 보기로 했다. 처음 어학원에 들어가서 레벨테스트를 받고 생각보다 꽤 좋은 평가를 받아서 가장 높은 반이었던 아이엘츠(IELTS, 영연방 국가의 토플 같은 시험)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그 반에 들어가서 굉장히 힘들었다. 호주의 대학을 다니려고 준비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다들 기본적으로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들 뿐이었는데 그 속에 시드니 온 지 한 달 차 햇병아리가 들어간 꼴이었으니.. 나 너무 과대평가되어서 이 반으로 들어온 거 아니야? 하고는 담당 선생님과 면담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캐나다 출신이었던 우리 반 담당 미아샘은 항상 말을 할 때 사람 눈을 쳐다보면서 얘기를 하곤 했는데 나의 쭈뼛쭈뼛 거리면서 내뱉는 말도 끝까지 잘 경청해 주곤 했다. 그러고는 한 달만 수업을 들어보고 힘들면 반을 내려가자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자신감을 가지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면담이 끝나면 꼭 이 한마디를 했다. "Joanne, chin up!" (그 당시 영어 이름이 조앤이었듬..)
어학원 생활이 즐거웠던 건 학원 친구들도 한몫을 했다. 사실 어학연수에서 다닐 어학원을 고르는 건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한데 그 이유는 어떤 학원에는 정말 '한국인'들만 가득한 학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원도 물론 한국인 친구들이 꽤 있었지만 나는 조금 높은 등급의 반이었어서 그런지 우리 반에는 나포함 한국인 오빠가 한 명 밖에 없었다. 레벨이 낮은 반의 국적이 대부분 일본/한국인 위주로 되어있는 반면에 높은 반에 갈수록 유럽/남미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처음 들어갔던 아이엘츠 반은 대부분이 남미 유럽 친구들이었다.
흥이 많은 남미 친구들이 많아서 였을까? 유독 우리 반은 그렇게 똘똘 뭉쳐서 잘 놀았다. 주말에도 집에 초대를 해서 같이 밥을 먹으며 놀고 바비큐 파티를 하러 놀러 다니기도 했다. 말이 많은 남미 친구들은 항상 학원에 오자마자 나에게 말을 걸었고 점심 먹는 시간에도 나를 꼭 불러서 밥을 같이 먹자 했다. 그렇게 잘 챙겨주는 선생님, 다 같이 똘똘 뭉쳐서 잘 노는 반 친구들 덕분의 나는 처음 적응 못하고 힘들어했던 초기와 달리 이 활발한 반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엘츠 수업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이 반의 바이브가 좋았던 걸까 많은 고민 끝의 나는 이 반에 남기로 했다.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들 덕분도 참 컸지만 그 당시 나는 영어공부에 대한 의지가 참 대단했다. 어학원이 끝나면 집에 와서 늘 오늘 공부한 거를 꼭 복습했고 다음날 나갈 진도도 선생님께 미리 물어봐서 공부를 따로 해갔다. 내가 반 친구들보다 부족하는 느낌은 수업 때마다 느꼈고 그래서 나에게 예습 복습은 필수였다. 심지어 학원에서 나눠주는 교재도 모자라서 시내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공짜 신문도 매일 가져가서 읽었다. 단어는 외워도 외워도 뭐 그렇게 모르는 단어가 자꾸 생기는 건지.. 매일매일 영어 단어를 외우는데도 모르는 단어는 여전히 산더미여서 매일매일 쌓이는 공부량에 참 쉽지 않았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그 불타오르는 의지 덕분에 그 단어를 외우는 그 순간도 나름 즐거웠다.
그리고 주말에는 혼자 시드니 외곽지역으로 나갔다. 시내 외곽으로 나가면 할 일 없이 광합성 중이신 호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서 말동무가 되어주는 고령의 호주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거구나! 싶었다. 정말 소문대로 공원에 커피숍에 말없이 앉아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참 많았고 정말로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거기까지 갔는데 말 안 걸어주면 서운 할 뻔했는데! 거의 한 시간가량을 공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와 수다를 떨고 미션 클리어! 네이티브 선생님과의 한 시간짜리 수업을 무료로 들었다는 기분에 뿌듯해하며 매 주말마다 늘 새로운 동네의 한적한 공원에 놀러 다니곤 했다. 내 영어 수업을 함께해줄 네이티브 선생님을 찾으러!
시드니에 처음 왔을 때 서브웨이에 갔던 날이 기억이 난다. 그냥 샌드위치를 사러 간 것뿐인데 너무 말을 많이 시켜서 굉장히 당황했었다. 맥도널드나 헝그리잭을 가면 '원 치즈버거 플리즈-!' 한마디로 오더가 끝나는데 서브웨이는 뭘 자꾸 그렇게 물어보던지.. 빵은 뭐 할래? 야채는? 소스는? 질문이 너무 많아서 당황해서 대충 빵을 고르고 하 그냥 아무거나 주세요! 했던 그날. 먹기 싫었던 양파가 가득 들은 그 샌드위치를 들고는 양파 빼달란 소리 하나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워서 참 속상했던 날. 샌드위치 안에 있는 양파를 손으로 하나씩 빼내며 먹던 그 설움의 샌드위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뒤로 서브웨이 울렁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달 월례행사처럼 서브웨이를 찾았다. 오늘은 호주 언니가 하는 말에 전부 대답할 거야! 하며 내가 시드니를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나는 서브웨이를 찾았다. 시드니를 떠나는 마지막 그날에는 '나 소스 추천해 줘!'라는 말까지 여유 있게 하고는 No양파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서브웨이에 가면 그때 처음 시드니에서 먹었던 양파 샌드위치가 기억이 난다. 양파 빼달란 말도 잘 못했던 내가 지금 영어로 일을 하고 있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호주에 가면 특히 시드니는 한국인들 천지야! 영어공부에 1도 도움이 안 돼!라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 이야기에 자신 있게 No!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에서 공부를 하던 누구와 공부를 하던 어학연수를 가던 인턴십을 가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그 집념이라고.
내가 양파 샌드위치를 먹었던 그날, 그냥 만만한 맥도널드의 치즈 버거나 먹자! 했으면 과연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