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와서 10키로가 찌다니..
호주에 처음 와서 첫 달에는 적응기여서 그랬는지 살이 쪽쪽 빠졌다. 밥을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매일매일 주식으로 식빵을 구워 먹었고 돈을 아껴야 한다며 외식도 많이 안 했기 때문이었을까 호주에 온 여자들은 5킬로는 기본으로 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뭔가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국에서 입던 옷이 조금 작아지기 시작했던 그때, 고무줄 바지가 편해지기 시작한 그때부터였을까- 거울 속 내 모습이 순간 후덕해지기 느껴졌을 때가..
미리 미안! 내가 그냥 싸잡아서 니탓을 할 수는 없는 거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이 오르기 시작한 건 팀탐을 만나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지 싶다. 호주하면 정말 빼놓을 수가 없는 이 악마의 과자 팀탐, 호주의 유학생들을 살찌우는 놈으로 유명해서 악마의 과자라고 불리는 이놈은 호주에 가기 전부터 익히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호주에 오래 살았던 언니는 팀탐에는 손도 대지 말라며 한번 맛보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며 경고를 했지만 초코 러버인 내가 감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도 악마의 덫에 빠져버렸다. 팀탐을 처음 먹었을 때는 딱히 특별함은 없었다. 그냥 달달한 초코 비스킷 정도구나!였는데 이상하게 먹으면 먹을수록 손이 갔다. 팀탐 두 개를 먹으면 밥 한 공기를 먹는 거라던데 나는 그 자리에서 밥을 몇 공기를 해치웠던 건가! 한창 단거 잘 먹던 그 시절에는 한자리에서 팀탐 한 줄도 거뜬하게 끝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쩜 그렇게 초콜릿을 전투적으로 잘 먹었지 싶다. 콜스나 울월스에서 팀탐을 1달러에 파는 세일의 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마트에 들러서 팀탐을 몇 개씩 쟁여왔다. 살짝 얼려먹으면 더 맛있었던 팀탐은 항상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매일 아침 모닝커피와 함께 하나씩 먹곤 했는데 정말 내 하루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침마다 두 개씩 팀탐을 먹고 학원에 갔다. 그리고는 학원에 다녀와서도 수고했다며 하나를 먹었다. 도서관에 가서 영어공부를 하면서도 당이 떨어졌으니 또 하나를 먹어야 했다. 저녁을 먹고는 후식으로 하나를 먹어야 했고 자기 전의 굿나잇 팀탐까지 잊지 않았다. 팀탐으로 시작해서 팀탐으로 끝나는 하루를 매일같이 보내다 보니 이건 뭐 살이 안 찌려야 안 찔 수가 없지- 그렇게 팀탐을 향한 사랑은 계속되어 갔다.
당시 호주에는 다양한 맛의 팀탐이 정말 많았는데 거의 도장 깨기 수준으로 팀탐을 종류별로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은 오랜만에 호주에 가니 전처럼 많은 종류의 팀탐이 없던데- 내가 살던 그때는 한 코너가 팀탐으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팀탐 종류가 정말 많았다. 지금은 오리지널, 화이트, 더블코트 정도라면 그때는 민트 맛, 허니콤보 맛 터키쉬 딜라이트 맛 등 종류가 엄청 다양했다. 그중에서 나의 원픽은 정말 극강의 달달을 자랑하는 맛이 있었으니 바로 더블 초콜릿 캬라멜 팀탐! 오리지널 팀탐도 충분히 달았는데 그 오리지널에 초콜렛을 더블로 입혀 그 안에는 캬라멜까지 넣었으니! 그 달콤함이 상상이 되시는지! 이건 단 거에 환장하는 나도 한번 먹고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달아서 2개 이상 못 먹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달달의 최고봉을 자랑하던 놈이었다.
그렇게 팀탐으로 도장 깨기를 하다가 그것도 지겨워졌는지 새로운 과자들을 탐색해보기 시작했다.
사실 팀탐 말고도 호주에는 맛있는 과자가 참 많았다. 아마 내가 호주에 가서 몸무게가 10킬로나 는 건 단지 팀탐 때문만은 아니었지 싶다. 마트에 가서 처음 보는 과자 처음 보는 초콜릿은 꼭 먹어봐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마트에서 파는 과자 코너는 늘 들리곤 했다. 어언 십 년 전인 이때는 단짠단짠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단짠단짠이 진리라는 건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던 사실이 아니었나 싶다. 입이 절절해질 정도로 짭짤한 감자칩을 먹다 보면 달달한 초코과자가 당겼고 달달한 초코과자를 먹다 보면 짭조롬한 감자칩이 땡겼으니- 그래서 늘 양손 가득 한 손엔 초콜릿 한 손엔 감자칩을 사들고 와서는 늘 함께 먹곤 했다. 난 단짠단짠을 10년 전부터 실천해오고 있었다. 내가 바로 단짠단짠의 선구자!
짭짤한 과자로는 호주의 대표 과자인 쉐입스(Shapes)와 레드락델리(Red Rock Deli)의 라임 맛 감자칩을 정말 좋아했다. 라임 맛 감자칩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호기심에 한번 먹어본 맛인데 상큼한 라임 맛이 짭조롬한 감자칩과 잘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었다. 얼마 전에 비행으로 호주에 가서 자주 먹었던 저 라임 맛 감자칩을 다시 사 와서 먹었는데 여전히 맛은 있었지만 다시 만난 라임 맛 감자칩은 정말 너무 짰다. 그렇게 짜고 그렇게 달았던 호주의 과자가 그 당시는 뭐가 그리 좋았던 건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살이 10킬로나 찔 정도로 좋아했던 건지 참..
그렇게 호주 워홀생활이 어언 1년 즈음 되던 시기에 아는 언니 집에 가서 체중계에 올라가 봤다. 순간 체중계에 보이는 숫자를 보고는 체중계가 고장 났나? 싶어서 몇 번을 다시 재봤는지 모르겠다. 어느 세월에 이렇게 살이 찐 건지 이제까지 날 살찌웠던 수많은 초콜릿과 과자들이 머리를 스쳐가며 괜히 원망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10킬로나 불었던 나의 호주 워홀 시절 막바지 때의 사진은 나만 간직하고 싶은 흑역사의 순간으로 남게 되었다. 호주 시절 사진을 꺼내들면 언니는 늘 '까만돼지'시절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언니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그때의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깜짝 놀란다. 내가 맞냐며.. 다른 사람 같다며.. 성형을 한 거냐며.. 나도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지금의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내 모습에 섬뜻 놀랄 때도 참 많다. 그래서 그 시절 사진은 나만 볼 거야! 하며 내 외장 하드에만 꼭꼭 간직하고 있었는데 호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걸 안 풀 수가 있나.. 그래서 그 시절의 사진을 조심스레 꺼내보기로 했다. 성형의혹은 부디 없기를.........
그래도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참 좋다. 저 몸매에도 자신 있게 비키니를 입고 태닝을 즐겼고 10킬로나 쪘음에도 호주에서는 S사이즈 옷을 입었으니! 팀탐으로 다져진 저 탄탄한 몸매는 볼 때마다 정말 웃음이 나곤 하는데 웃겨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유로웠던 내가 부러워서 웃는 부러움의 웃음이다. 살이 1키로만 쪄도 울상이 되어서 다이어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먹고 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고 그때의 나는 칼로리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팀탐 한 조각에 마냥 행복했으니- 흑역사로 길이 남을 사진이라고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넘치고 밝았던 그때의 내가 나는 참 좋다.
팀탐은 나에게 10키로나 되는 짐을 나에게 얹어주었지만 퍽퍽했던 해외 생활을 조금이나마 달달하게 해주었으니 그걸로 됐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팀탐에게 이 시절의 내가 된 건 너 때문이야!라며 그 죄를 물리려 했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팀탐 너는 무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