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서 서러웠던 워홀러의 생활
나의 호주 시드니 생활에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돈 돈 그리고 돈돈돈! 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 생활에서 돈 벌기 전 시드니에서 생활할 때는 금전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참 많았다. 나의 첫 해외생활이었던 일본 생활에는 일단 기본적으로 숙식이 제공되는 곳이었기에 월급이 적었어도 돈에 대한 부담은 많이 없었는데 호주는 여기 시드니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우선 집값이 후덜덜한 시드니였다. 집값을 아끼려고 베란다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언니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고 넘기지만 정말 그렇게 생활을 하는 워홀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명 시드니 시내의 개미집.. 감당 안될 정도로 어마 무시했던 집값 덕분에 그렇게 방 하나에 몇 명을 몰아놓고 개미집처럼 우글우글 사는 곳이 참 많았다.
어디 집값뿐인가! 시드니에서는 안 비싼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호주에서 만난 한국사람 대부분이 호주는 금연의 나라라고 입을 모아서 말을 한다. 담배값이 너무 비싸서 차라리 금연을 하게 만드는 나라라고 금연을 하고 싶다면 호주를 가라! 라며 장난스럽게 얘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시드니의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그리고 주방이 밖에 있는 곳에 살았다. 그래서 꽤 괜찮은 금액의 집을 골라서 지냈음에도 주에 140이나 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한 달이면 560불 그 당시 환율로 치자면 거의 7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주며 2인 1실의 작은 방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영어공부를 하겠다며 엄마에게 돈을 매달 받기로 했고 엄마가 매달 생활비로 백만 원을 보내줬었다. 백만 원을 보내줘도 남는 돈이라곤 고작 삼십만 원, 그 삼십만 원으로 한 달 생활을 해나가야 했다. 엄마에게 더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한 달에 백만 원을 받는 것도 괜히 미안해서 차마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뭐 까짓 거 내가 좀 아껴서 쓰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시드니의 초절약 라이프를 지내보기로 했다.
그래서 웬만한 아낄 수 있는 건 다 아끼며 살았다. 호주의 유명 마트라는 코울스(Coles)랑 울월스(Woolworth)의 전단지를 매일 같이 정독하면서 세일하는 제품을 항상 눈여겨보고는 세일할 때가 되면 얼른 마트로 튀어나가서 식량을 구비해 놨다. 호주의 버거킹인 '헝그리잭' (Hungry Jack, 호주에서는 버거킹이 헝그리잭이라고 불림)에서는 매달 행사로 치즈버거를 1달러에 팔았는데 1달러짜리 치즈버거를 세일하는 날만 되면 10개를 사다가 냉동실에 얼려 놓고 매일 얼려놓은 치즈버거를 하나씩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곤 했다.
늘 마셔야 하는 모닝커피도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파는 1달러짜리 커피만 마셨다. 그 좋아하는 스타벅스도 당연히 사치였다. 시드니에서 사는 동안에는 아는 오빠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줬을 때 빼고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 봤자 4불 정도 하는 아메리카노였지만 커피 한잔에 그 많은 돈을 주면서 나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학원에 가는 날이었는데 늘 가던 세븐일레븐의 커피를 마시러 가던 길에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를 보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던 적이 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여유롭게 걸어오는 호주 언니를 보면서 바라보기만 하고 차마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조금 처량해 보였다. 나도 한국에서는 쉽게 쉽게 사 먹던 그 커피 한잔이었는데 왜 나는 여기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코끝이 괜히 찡해졌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고는 다시 세븐일레븐으로 향했다. 결국 그날도 1달러 커피를 마셨다.
교통비가 비싼 시드니에서는 교통비를 줄여보자며 노스시드니에 있는 어학원까지 그 큰 하버브릿지를 건너서 걸어 다닐 때도 있었다. 왕복으로 두 시간 반 세 시간은 걸렸던 것 같은데 교통비를 아껴보겠다며 그 더위에 그 큰 하버브릿지를 걸어 다녔다. 그러고는 오늘도 교통비를 아꼈다는 뿌듯함에 늘 돌아오는 길엔 가장 좋아했던 팀탐을 사들고 왔다. 아낀 교통비로 돈이 세이브가 되었으니 팀탐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어! 하면서.. 물론! 팀탐도 1달러 세일할 때만 사 먹었다. 콜스에서 팀탐을 1달러로 파는 날이 한 달에 한 번씩 꼭 있었는데 그 날에는 무조건 팀탐을 사러 가곤 했다. 몇 개를 쟁여놓고 우울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오물오물 먹곤 했는데 정말로 천 원의 행복이 따로 없었다! 호주를 걸어 다니며 얻은 결과로 나는 늘 학원 끝나고 넉다운이 되곤 했지만 달달한 팀탐을 얻었으니 괜찮다! 원달러의 행복이 있었으니깐!
그리고 하버브릿지를 걸으면서 보이는 반짝반짝 바다를 보는 것도 참 좋았다. 아이팟을 목에 걸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걷던 그 길은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웠다. 돈을 아끼려고 시작된 도보 통학길이었지만 서러운 마음보다는 그 시간 속에서 오는 잠깐의 그 행복을 즐겼다. 언제 이 아름다운 다리를 걸어볼 수 있겠어! 언제 이 맛있는 팀탐을 단돈 1달러에 먹어볼 수 있겠어! 하며. 나의 이 긍정 바이브는 호주 생활 때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그 당시의 나는 참 퍽퍽한 삶을 살았음에도 그 속에서 소소한 달콤함을 찾아내곤 했다.
그리고 간간히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시드니에는 그날그날 수당을 현금으로 지급해주는 '캐시 잡'이라는 알바가 꽤 많았는데 그 일이 꽤나 쏠쏠했다. 공부하는 시간은 방해받기 싫어서 주말에 야밤에 하는 알바가 딱이다! 싶어서 고른 나의 첫 알바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이었다. 한국인들이 없었다면 시드니는 쓰레기장이 될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로 그 당시의 시드니 청소 잡은 한인이 다 잡고 있었다. 그래서 참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청소잡, 그 날 바로바로 현금으로 돈을 받을 수 있으니 하루하루 쓸 돈이 없었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딱인 알바였다.
경기가 끝나고 난 그 큰 경기장에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음식물들과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처음 그 경기장에 들어섰을 땐 이걸 언제다..?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 경기장은 쓰레기 더미였다. 허리춤에 쓰레기 봉지를 묶어놓고는 그 큰 봉지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웠는데 쓰레기 악취가 정말 심했다. 사람들이 먹다 남긴 감자튀김 상자에서 바퀴벌레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시드니에서 영어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 엄마 생각이 나서 그리고 쓰레기 냄새가 가득 나는 이 곳에서 땀 흘리며 쓰레기나 줍고 있는 내 신세가 불쌍해서 또 코끝이 찡해졌다. 눈물이 찔끔 나서 한숨을 푹 쉬며 잠시 쉬고 있는데 쓰레기 더미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발견했다. 2달러짜리 동전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서러웠는데 참 신기하게도 동전 하나를 줍고는 기분이 싸악 좋아졌다. 일이 다 끝나고 오늘 일당을 받고 집에 가는 그 길에도 오늘 받은 일당보다 쓰레기를 줍다가 주운 그 동전이 좋아서 주머니에 들은 그 2달러 동전을 만지작 거리며 히죽히죽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교통비를 아끼며 사 먹었던 팀탐도 쓰레기 줍는 알바를 하면서 주웠던 2달러짜리 동전도 정말 별거 아닌 거였지만 난 그런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지도 않았지만 난 이미 소확행을 시드니 생활을 통해서 배우며 느끼고 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이제 안 쓴다던데- 이왕이면 고생은 하지 말자!라는 게 요즘 사람들의 마인드라지만 난 그 젊은 날의 고생과 서러움이 지금의 내가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 스타벅스 옆을 지나치면서 마셨던 1달러짜리 커피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스벅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이 순간이 감사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매일 마시는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가 유난히 맛있는 날이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