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도 사람 사는 곳이었어!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사막에 처음 왔던 첫 달에는 매일매일을 눈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렇게 힘들어서 한 달도 못 버틸 것 같은 일도 너무나 척박했던 사막에서의 생활도 이건 적응될 수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니 이것 또한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건조해지는 피부와 머릿 털 그리고 점점 새까매지는 피부는 갈수록 나를 원주민화 시키긴 했지만 그것 역시 내가 적응되어 가고 있다는 지표 중 하나였다. 점점 까매지는 피부 위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으니 매니저가 옆에서 보면서 픽 웃었다. "써니! 너도 여기 울룰루 사람 다 되었구나!"
날이 좀 시원해져서였을까? 아님 정말 내가 적응을 한 걸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 역시 적응이 되었던 거구나 싶다. 이제는 일하면서 보이는 낙타도 신기하지 않았고 머리 위로 불어오는 무서운 모래바람도 그러려니 여겨졌다. 어느새 여기 호주 아웃백 사막 울룰루는 나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사막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 인지..? 호주식이 아주 나에게 찰떡으로 맞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날로 날로 옆으로 성장해갔다. 이런 건 적응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먹는 거 하나는 기깔나게 바로 적응해버리는 나의 먹성!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좋은 거지..?)
매일 오후 출근을 해서 에너지드링크를 쏟아붓는 동료를 보고는 나도 마트에 들려 에너지 드링크를 꼭 하나씩 사 오는 게 일과가 되었다. 이때부터 카페인 중독이 된 거였을까.. 달달하고 시원한 그리고 카페인까지 만땅으로 채워주는 에너지 드링크는 하루의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마셨던 에너지드링크 그리고 팔뚝만 한 초콜렛 덕에 점점 후덕미가 넘쳐가고 있었다. 게다가 뷔페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나는 그 일이 끝나고 나서 남은 잔반 처리를 깨끗하게 해내는 인간 음식물 쓰레기 처리반이었다. 물론 쓰레기 치고는 너무 맛있었지.. 한창 식어도 여전히 맛있었던 윤기가 좔좔 나던 그 양갈비는 잊을 수 없지 암!
어디 그뿐이랴! 호주 사막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굉장히 많아서 인지 마트에는 한국 식재료가 꽤나 풍부했다. 그렇게 요리 잘하는 친구들을 둔덕에 김밥, 부침개, 불고기 등등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들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먹는 맛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라도 나는 그런 한국의 맛! 비슷한 김치맛만 나도 괜히 다 맛있게 느껴졌던 호주 외노자 시절이었으니깐-
그리고 리조트 내에는 일하는 직원들이 운동할 수 있는 짐도 있었다. 물론 헬스장 치고는 조금 허접했지만 관리해주는 트레이너도 있어서 1일 프로그램도 따라가서 운동도 하곤 했다. 그리고 바베큐 세트장도 있어서 친구들과 모여서 바베큐를 해먹기도 했고 저녁에는 직원들만 입장할 수 있는 레지클럽에서 춤을 추고 놀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참 행복하고 즐거웠던 하루하루를 보냈지 싶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친구들과 하루 일과를 끝내고 맛있는 것들을 먹고 나누며 즐겼던 그 생활이-
사막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왜 그런 곳까지 들어가서 사서 고생을 하냐느니 시드니같이 사람 사는 곳 같은 도시로 돌아오라느니 페북 담벼락에는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연락을 종종 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 생활이 참 편하고 행복했다. 처음엔 그렇게 싫고 무서웠던 사막 생활이 언제부터 이렇게 편해졌을까? 그렇게 시드니에 돌아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으면서..
아마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사막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건 그 환경을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였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사막에서의 하루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그런 생각이. 언제 또 와보겠어? 언제 또 내가 사막에서 살아보겠어? 하는 그런 생각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사막 생활도 꽤나 다이나믹하게 느껴졌다. 스물세 살에 사막 생활을 클리어한 여자! 꽤나 멋있지 않나?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이곳을 Dream bubble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돈 벌고 먹고 마시는 곳, 사막이라 척박한 환경처럼 보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걱정 고민이 없는 이곳을 꿈속의 한 장면처럼 비유하곤 했다. 그 당시는 모래바람과 뜨겁게 찌드는 더위에서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는데 다시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여기는 걱정 근심이 하나 없는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곳이었다. 매일 걸어가면서 보던 멋진 일출과 일몰, 일하면서 지겹게 보던 울룰루의 멋진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생활이었다. 어느샌가 나에게도 울룰루 이 사막 생활이 드림버블이 되어있었다.
울룰루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다. 뱀을 만났을 때 도망치는 법, 장작을 주워다가 불을 피우는 법 등 살아가면서 언젠간(?) 쓰일법한 삶의 스킬들 그리고 호주 햇빛에서는 무조건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지만 내가 울룰루 생활에서 가장 크게 배웠던 건 어떤 힘든 환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어떤 곳에서 삶을 살던 하루를 소중하게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삶이 즐거워질 것이라는 것이라는 그 마음가짐을. 그 뒤로 나는 환경 탓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사막 속에서도 드림버블을 경험해봤으니깐- 어떤 환경 속에서든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그곳이 천국인 것을 나는 알았으니깐- 나는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싶을 땐 늘 울룰루를 떠올렸다. 어디서 사는 게 무엇이 중요하냐! 나는 척박한 사막에서도 천국을 보았으니 어떤 환경도 두렵지 않았다. 이것이 울룰루 생활이 나에게 남겨준 가장 큰 자산이고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