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이 외롭지 않게

사라고사

by 쥬링

두 번째 렌터카와 함께 하는 여정이 시작되는 날이다. 스페인에 온 이후로 팀의 분위기와 여행 스타일이 사뭇 달라진 것을 느낀다. 마테오는 아이들을 호통으로 제압했다면, 뚜비는 웃는 얼굴 속 유유히 흐르는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다스렸다. 장난스럽고 유치한 말투로 되려 아이들을 당혹스럽게 하면서도 그녀만의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웃으며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그녀가 연기하는 뚜비라는 인물과 그녀를 모두 존중했다. 뚜비는 나와 모아나에게 그동안 아이들 챙기느라 고생 많았다며, 이제 아이들은 내가 챙길 테니 편하게 여행하라고 말한다.


바르셀로나 숙소 앞에 1, 2, 3호차가 도착한다. 1호차에는 마테오와 뚜비와 여학생들, 2호차에는 케빈과 남학생들, 3호차에는 양과 성인 친구들이 탑승한다. 나는 첫 렌터카 당시 3호차에서 양과 호흡을 맞춘 경험으로 이번 3호차의 조수석을 담당하기로 한다. 차에서 잠을 잘 안 자는 편이기도 하고, 조수석이 자연을 보기에도, 자리도 다른 좌석에 비해 넓은 편이라 자처한 것도 있다. 물론 운전하는 친구를 졸리지 않게 말을 걸어주는 것도, 내비게이션을 틀고 다른 차와 무전으로 소통하는 것도, 음악을 트는 것도 조수의 몫이지만 그쯤이야!

우리는 또다시 바리바리 짐을 싣고 렌터카가 정차해 있는 곳까지 도보로 걸어 이동한다. 여행 기간이 늘어날수록 이상하게 짐이 하나둘 늘어나 저마다 보조 가방과 보조 쇼핑백이 넘쳐난다. 우리는 차 시트 좌석 밑까지 짐을 욱여넣고 사라고사로 향한다.


어느새 수줍게 물든 분홍빛이 하늘에 일렁인다. 우리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밤거리를 나와 모아나가 얘기한 추로스 가게 Churrería La Fama로 향한다. 한국에서 흔히 알던 꼬임이 있는 먹음직스러운 추로스 모양의 간판이 아닌, 추로스는 만드는 가게(Churrería)라는 이름이 심플하게 걸린 카페. 갈색 테두리가 나무로 감싸진 문을 밀고 가게로 들어선다. 영업이 종료되기까지 30여 분도 채 안 남은 시간이었음에도 바테이블과 몇 없는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추로스를 먹고 있다. 어수선한 가게의 중심을 지키는 나이가 지긋이 든 두 여성에게 눈길이 갔다. ㄱ자로 나뉜 두 공간에서 각각 추로스와 초콜릿 딥핑을 담당하던 그들은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두 여성 중 추로스를 담당하는 여성을 추로스 할머니, 초콜릿 딥핑을 담당하는 여성을 초코 할머니라고 칭하겠다. 초코 할머니는 갈색과 금발이 섞인 단발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초콜릿 딥핑을 작은 유리컵에 담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떨굴 때 흐르는 굵은 웨이브가 아름다웠다. 추로스 할머니는 숏컷 금발 머리에 동그란 회색 귀걸이, 알록달록한 빈티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게 파인 주름이 지긋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웃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나이 든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가 주름을 보면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추로스 할머니는 종이에 추로스를 담아 내게 건네면서 일반 추로스의 1/3 정도 되는 작은 추로스 조각을 덤으로 주신다. 그녀의 싱그러운 웃음이 내게 닿는다.

"그라시아스."

아름다운 여성을 바라보는 나의 반짝이는 마음이 담기기에는 너무도 짧은 스페인어가 튀어나온다. 미소가 내게 번진다.


언젠가 서점을 둘러보다가 나이 듦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프랑스 여성들에 관한 책을 잠시 훑어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늙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가볍게 상상해 보며 나중에 나도 늙어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늘어가는 주름과 흰 머리카락을 보고 우울해하며 이야기할 때에도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아름다움이지 않겠냐며 뜨뜻미지근한 위로를 건네고는 했다. 막상 세월의 변화를 몸소 받아들이는 것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꾸준히 보톡스를 찾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땀이 없던 내가 여름에 뻘뻘 땀을 흘리며 모공 걱정을 하게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어느 순간 블랙헤드 제거하는 방법을 유튜브로 검색하고, 스킨케어 제품을 사러 갔다가 모공 앰플 1위라는 광고에 현혹되어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고, 쁘띠 시술을 알아보는 겁에 질린 나를 본다. 이 젊음이 지난 뒤에 신체의 변화는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의 이치임에도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ai 기술로 다 큰 성인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만드는 사진만 봐도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다는 것을 열망하는지 알 수 있다.


나이 듦을 마주하는 바람직한 방법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자신을 발견할 것

나이 듦이 외롭지 않게 하루하루 행복할 것


추로스 할머니의 미소에는 행복이 묻어나있고, 미소 띤 얼굴의 주름은 젊은 날의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주름은 어쩌면 인위적으로 새기는 타투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바삭한 추로스에 묽은 초콜릿 딥핑 소스를 담뿍 찍어 입안으로 가져간다. 설탕과 시나몬 가루에 잔뜩 발린 한국식 추로스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슴슴하고 담백한 추로스와 너무 달지 않은 초콜릿 소스가 기분 좋게 어우러진다. 달콤한 스페인의 겨울이 완성된다. 나이 듦을 외로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아이처럼 초콜릿을 잔뜩 찍어 추로스를 우물댄다.


IMG_0019.jpeg 사라고사의 추로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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