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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Nov 05. 2023

간호사를 돕고 싶었습니다.

탈임상 콘텐츠를 만든 지 4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2019년 9월, 대학병원을 퇴사하고 나의 병원 밖 생존기(?)를 꾸준히 블로그에 업로드했다.


그러다 작년에 유튜브를, 올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며 영상 콘텐츠 역시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 '탈임상'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무서웠다. 워낙 좁은 업계인데 자칫 임상을 부정하는 어투로 비춰져 순식간에 수많은 적을 만들게 될 것 같았거든.


그래도 꾸준히 했다.


내가 시도한 것들, 그로 인해 겪고 깨달은 것들을 틈틈이 기록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20대 중반이 되고서야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는 사회의 시야를 알게 되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병원에 있다보면 정말 모르는 것들 + 몰라야 하는 것들이 많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선택권을 가질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 각자의 강점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것도 갓 24, 25살의 어린 청춘에게 '여기에서 적응 못하면 인생 실패자'라는 프레임은 정말이지 악질 중 악질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장 그 순간을 빼앗는 것 뿐 아니라 앞으로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해나갈 힘조차 없애버리는 가스라이팅.


그럼에도 2019년의 나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병원을 나오고 너무 막막하더라. 아무도 잘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임상을 떠나 잘 지내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전설 속 유니콘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내 흔적이 뒤를 따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이제 만 4년이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몇 번 꾸준히 그 변화를 담았다.


블로그의 경우 글 당 평균 5,000회에서 1만 회 조회 수가 나온다.


유튜브 영상 역시 '간호사 탈임상, 퇴사 후 이직의 현실'이 2만 3천 조회 수가 찍혔다.




인스타그램은?




병원 퇴사와 관련한 릴스가 149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4년의 기간동안 나는 되려 많은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다.




따로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꽤나 많은 간호사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 같은 내용이었다.


"어떻게 탈임상 하셨어요? 방법 좀 알려주세요."

"탈임상 하면 돈 적게 받지 않아요? 연봉 정보 좀 알려주세요."


처음에는 정말 내 연봉 정보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알려준 적도 있었다. 그 절실함과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런데 그 중 누구도 이후 고맙다는 댓글 또는 답장을 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근데 이런 게 어렵지 않아요? 이건 어떻게 했는데요?"라는 되물음은 몇 번 들었다. 자꾸 안 되는 이유만을 찾는 도돌이표와도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예의를 차리지 않은 채 익명에 가려져 쉽게 질문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그냥 떠 본 것'임을. 그리고 간호사라는 직군 중 가장 많은 수가 종사하는 '병원'을 나온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20살 때부터 한 길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단단하게 쳐진 울타리를 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악플 아닌 악플도 많이 달렸다. (대부분 내가 차단해서 안 보이는 것일 뿐.) 이런 식으로 퇴사 부추기고 간호사 이미지 실추시키면 좋냐는 내용이 많았는데 느낌 상 연차가 있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마음 역시 이해한다. 게다가 피드백은 자유이니 말이다.


중요한 건 나는 이 집단에서 철저하게 이단아였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나처럼 '병원 밖 간호사도 사회에 잘 적응하여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어!'라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주어진 울타리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찾아보고자 검색했고, 왜인지 모르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나를 발견했으리라.


애초에 '탈임상 간호사'는 간호사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었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가장 큰 허점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병원 밖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다른 간호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크리에이터 중 간호사 출신인 분들이 계셨는데 나의 탈임상 콘텐츠를 보고 힘이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덕분에 용기를 내는데 도움이 되었다며. 그런 말은 거의 들어본 일이 없어서 살짝 눈물이 날 뻔 했다! '아, 내 마음이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전달이 되었구나.' 4년 만에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정말 감사하더라.


나는 더 이상 이전처럼 관련 콘텐츠를 만들지 못할 것 같다. 지친 것도 맞고, 이제는 너무 멀어진 것도 맞다. 외로웠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것은 요즘 병원 밖 간호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탈임상'을 검색해봐도 상당히 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건강하다.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최소한 누군가의 편협한 말들에 눈과 귀가 막힌 채가 아니라.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간호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 콘텐츠는 안 만들어도 탈임상 관련해서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한 분들은 언제든 D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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