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법
나는 30살이 된 지금,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고 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여기까지 오는 것이 꽤나 험난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벼랑 끝에 간신히 서 있던 나를 밀어버린 한 선생님의 말에서 시작된다.
병원을 나오기 전 들었던 말들 중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너, 간호사 안 맞는 것 같아.
병원 입사 약 1년 즈음이었는데, 어지간한 잔소리나 혼냄은 어느덧 익숙해질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숨을 푹 쉰 다음 시니컬한 표정으로 가벼이 툭 던진 그 말은 나에게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다.
신규 간호사의 일거수일투족에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수술실은 더욱이 폐쇄적인 집단이라 그 강도가 결코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해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과 자연스레 비교가 되고 그중에서 누구는 일을 잘하네 누구는 눈치가 없네 온갖 소문들이 퍼지곤 했다. 나는 특출 나게 일을 잘하는 직원은 아니었을지언정 '일을 정말 못한다'는 말 또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새로운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그 올드 선생님의 한 마디로 인해 그동안의 노력이 처참히 뭉개졌다. 단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수많은 부정적인 마음의 소리를 이겨내고 나를 쳇바퀴 속에서 움직이게 해주었던 한 줄기 남은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눈물을 꾹꾹 참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펑펑 울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동기들이 그런 나를 보고 방문을 조용히 닫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내가 간호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인재는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체적인 구조부터 성격까지 뭐 하나 적합하다고 느낀 부분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실습을 하면서 환자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싫지 않다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수술실로 발령이 나면서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 스스로 아는 것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평가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주어진 환경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라 믿었던 25살, 5년을 투자하여 정착한 나의 일로부터 부정당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처참했다.
부서진 마음 조각을 겨우 주워 담고 나니 그다음 몰려오는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불현듯 어릴 적부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거야.
물론 그러면 아빠는 항상 대답했다. "그래, 너 욕심은 좋은데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10%도 채 되지 않을 거야." 아빠는 약 90% 정도 F인 사람이지만 또한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기에 사랑하는 딸내미에게 헛된 기대와 희망을 주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는 새로운 업을 찾아야만 했다.
남들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나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현실은 바뀌지 않으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또 한 번의 선택 기회가 생겼구나!'
누구나 더 잘하는 일,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첫 직장에서의 1년은 지금까지 6년의 사회생활 그 어떤 시간보다도 잔혹했으니.
그런 일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피(hp)가 깎이는 일. 스트레스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한 일. 하루 8시간 이상, 인간이 평생을 살아내며 수면 이외에 가장 많이 하는 행위가 일이라는데 웬만하면 그런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정말로 "병 걸린다." 예컨대, MBTI 극 I인 내향형 인간이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하게 되었다던가 하는.
기왕이면 어릴 적 꿈을 이뤄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사실 첫 번째 관문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거였다. 이건 나만 뒤늦게 부딪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먼저 '살면서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내가 해왔던 일들'을 쭉 나열해 보았다.
- 8년째 일상을 올리던 블로그
- 연 1, 2회 새로운 나라로의 여행
- 조별과제 조장 (이건 어쩔 수 없이 맡았지만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 4년간 밴드부 활동
- 홈리코딩 (집에서 노래를 녹음하는 것)
- 10여 차례의 대외 활동 (간호학과 중에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취업에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 나는 이들을 조합해 보려 애썼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여행 + 블로그 = 여행 블로거
- 홈레코딩 + 밴드부 = 커버 영상을 올리는 가수
그런데 점차 그보다 큰 그림의 '속성'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여행에서의 새로운 경험도 좋아했지만 그 순간과 깨달음을 기록해서 남기는 행위를 더 만족해했다는 것을. 단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밴드부 활동을 4년이나 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되려 합주와 공연 등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대외 활동 역시 새로운 사람들과 합을 맞추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고 그것으로 인정받는 일이 재밌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했을 때 정서적 만족감을 느끼는 지를 다시금 정의해 보았다.
-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기록하는 일
- 문제의 해결책을 찾거나 좀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는 일
- 사람들을 이끌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
-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많은 것들에 결정권이 큰 일
스스로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그마저도 주위에 떳떳하지 못해서 '나는 휴학도 안 했고 취업도 바로 했으니 1년 정도는 하고 싶은 일을 해볼래.'라며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았던 생각이 난다.
좋아하는 일들 중에서 잘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위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손이 닿는 대로 전부 해보았다. 꾸준히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수익화의 길을 찾기 시작했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살면서 영상 편집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배우면 되니까!
이때 했던 도전 중 대부분은 실패로 끝났다. 시작할 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만났고 그럴 때마다 난 '왜 나는 안 될까?'라는 못난 자책만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단기간에 2000명까지 구독자를 만들었던 블로그 관련 유튜브 채널은 쏟아지는 협업 메일이 무서워 갑작스럽게 모든 영상들을 비공개하고 잠수를 탄 적도 있다. 세상에나. (그러고 깨달았다. 단지 눈에 보이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지만 그 1년이 너무나 행복했다. 자동 사냥 모드에서 겨우 벗어난 기분. 내 의지대로 일을 하니 아무리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 집중해도 머리나 가슴이 뭐에 눌려 심장박동수에 맞춰 쿵쿵대지 않았다. 최상의 녹음 퀄리티를 위해 한 여름 에어컨을 켜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2시간 넘게 영상을 찍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1년을 알차게 보낸 뒤 나 자신을 '사회화'와 '성장'시킬 수 있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히 깨달았다. 단순히 스킬적인 부분만 채운다고 될 게 아니었다. 그날로 수많은 채용공고들을 뒤진 덕분에 한 의료 관련 스타트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이 나의 두 번째 회사가 되어주었다. 나는 거기서 소위 말하는 '병원물'을 많이 벗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고 있다. 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로, 또 '잘하는 일'로 조금씩 발전시켜 나갔다. 일이 되려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원래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금방 뒤처지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아직 3번째 회사에서 나온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안정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나의 일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이들의 성장을 돕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성장한다. 누군가의 전문성을 살린 채 나의 전문성을 덧대어 매출을 비롯한 여러 방면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일들이 처음인지라 아직은 때때로 헤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당신은 벼랑에 겨우 발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버렸습니다.
나는 그 벼랑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기용 아폴리네르-
내가 간호사가 맞지 않다는 사실을 '구태여 비수 같은 말로' 알려준 그 올드 선생님을 마음속으로 많이 원망했더랬다. 그 미움 위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가는데 되려 새카만 마음은 더욱 선명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용서한다.
24살의 내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것은, 단지 부족한 사회초년생이어서가 아니라 맞지 않는 일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느라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할 줄만 알았지 환경 자체를 바꿀 용기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에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오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수많은 실패가 있었고 사실 지금도 빈도가 줄었을 뿐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지난한 과정을 잘 버텨준 과거의 나에게도 감사한다.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이유는, 나도 해냈기에 그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든 이들의 도전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