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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Jun 23. 2024

글 하나에 50만 원을 준다고요?

블로그로 먹고살 수 있을까.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해 왔지만 그건 소위 '일기장'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1일 1포'는 무슨, 한 달에 글 4, 5개만 올려도 스스로 뿌듯해했다.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을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당시의 일기장 흔적


그런데 정작 직업을 잃고 나니(제 발로 뛰쳐나온 거지만) 당장 손에 잡히는 게 블로그 밖에 없더라. 4년의 간호학과 전공수업 그리고 1년 반의 병원 생활동안 나는 사회에 대해서 배운 것이 거의 전무했다. 그래서 블로그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에게 신세계가 펼쳐졌다.


저희 원고료에는 기본 발행비가 있고 키워드 상위에 노출이 되면 추가로 노출비를 드려요.


세상에나. 완전히 처음 마주한 세상이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눈치 보며 뛰어다녀도 10여 만원 버는 게 전부였던 나에게 - 그것도 25살 치고는 많이 번다고 자부심이 있었다. - 글 하나 잘 써주면 수십 만원씩 턱턱 통장으로 꽂힌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시작은 이랬다.


22살이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해주고 싶어 알아보다가 블로그 체험단을 구한다는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반드시 얼굴 공개를 하지 않아도 되며 추가금이 들지 않는다는 말에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덜컥 예약을 했는데, 정말 정성스럽게 사진도 찍어주시고 심지어 원본 파일까지 제공해 주시는 게 아닌가! 덕분에 부모님의 한 살이라도 젊은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볼 수 있었다.



첫 체험단의 흔적


'이게 된다고?'


‘공짜’라는 것에 맛이 들린 나는 한 번에 약 4만 원 정도의 식사를 제공해 주는 맛집 체험단을 시작했다. 처음엔 글 하나를 작성하는데 처음에는 2, 3시간도 걸렸으나 곧 익숙해지면서 1시간 안으로 발행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단순하게 시급으로 계산해 봐도 충분히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주 1회 정도는 가족 외식이 있었기 때문에 은퇴 후 여러모로 걱정이 많으셨던 부모님께서도 (정말 너무 많이) 좋아하셨다. 그렇게 한 달에 20여 만원을 아끼며 살아가는 것조차 뿌듯함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수상한 메일들이 쏟아졌다.


글 하나에 50만 원 드릴게요.

다들 자기가 업계 1위란다. 몇 년의 노하우로 블로그에 무리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고 중복 사진을 사용하지 않고 어쩌고 저쩌고. 이때 마케팅 대행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진심 가득 담긴 체험단 글들이 쌓이며 맛집 분야에서 내 블로그가 노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한 달에 수십에서 수백 만원에 호가하는 키워드 상위권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얘가 체험단 혹은 내돈내산 글로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찼을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도 어렴풋이 중복 문서에 대한 페널티를 알고는 있었다. 게다가 가보지도 않은 곳을 맛있다고, 추천한다고 소개하는 일이 아무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조건 직접 방문하고 별도의 가이드 없이 글을 작성하는 조건으로 가능한 업체를 찾아 한 번 원고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그 뒤로 나의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 원고료는 30만 원. 하지만 네이버 SERP(검색결과 페이지) 상단에 종종 노출이 되자, 내 글에 대한 단가는 점차 5만 원 단위로 올랐다. 간혹 월간 검색량이 10만 이상인 키워드에서 상위권을 잡으면 건 당 70만 원까지 받기도 했다. 그러니 더욱 책임감이 느껴졌다. 글 하나를 매달 몇 만 명이 보고 있다니! 이거 맞아?




그렇게 약 1년을 지냈다. 블로그 상위노출에 대한 공부도 병행하면서 관련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점점 경쟁률이 높은 키워드를 노리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네이버 로직에 맞는 글을 써야만 했고, 점점 처음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천편일률적인 글을 쓰는 기계가 되어갔다. 그래서 힘들었냐고?


아니. 솔직히 행복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허탈함은 잠시였을 뿐 매달 늘어가는 통장 속 잔고를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번갈아 나의 운전기사가 되어주셨던 부모님


마침 은퇴하신 부모님과 함께 강원도든 제주도든 일감을 들고 전국 어디든 찾아갔다. 사장님들은 양질의 글과 사진을 위해 언제나 진수성찬을 차려 주셨고 덕분에 우리는 정말 풍족한 식사를 하며 여행을 다녔다. 참치도 장어도 먹고 싶을 땐 언제든 양껏 먹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제주도에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는데 첫 원고료로 200만 원을 받은 적도 있다. 이 때는 '도대체 이 자본주의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행복은 잠시였다.


그러다 갑자기 글이 누락되는 현상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였지만 점차 그 빈도가 잦아지더니 언제부턴가 72시간 뒤에 글이 어디에서도 검색되지 않기 시작했다. 블로그 마케팅 생태계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저품질'이 온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무렵 '저품질 대란'이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괜찮을 거라며 위로해 주던 대행사 직원들도 하나 둘 연락을 끊고 잠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인데 너무하다 싶긴 하더라. 나 역시 새로운 시도 여러 가지를 해보며 앞으로 안정적인 전문성을 길러나가는 것에 목이 말랐던 터라 금전적으로나 무엇으로나 손해를 본 것은 없었다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럼에도 이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이 못내 아쉬웠다.


잃어보고 깨달았다. 내가 눈앞의 돈에 가려져 어떤 것을 놓쳤는지 말이다.




눈앞의 돈은 마약과도 같았다.

아예 가난하거나, 아예 부자인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새로이 나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가지고 태어나거나 쌓아온 것이 있거나, 반대로 매우 절박한 상황에 놓여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돈도 시간도 한정되어 있어야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에 더 신중함이 따른다는 것이다. 목적지를 보다 명확히 하고, 그가 잘 되지 않았을 때의 기회비용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한 가지 일에 절박하게 매달린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 둘 다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잠시 운이 좋았던 축에 속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 시간을 많이 갉아먹었다.


퇴사 후 스스로에게 1년이라는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그 기간 안에 어떻게든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먹고사니즘을 해결해 보겠노라 해놓고 또다시 당장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에 시선이 팔려 버린 것이다.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비교적 적은 시간을 투자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유튜브를 포함한 다른 것들에도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냥 ‘도전’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당시에는 이게 꾸준히 무언가 쌓아온 나에게 찾아온 행운의 편지처럼 느껴졌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독이 든 성배와도 같았다.




그럼에도 얻은 게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원고료를 척척 받아내던 그 시절 '왜 이 큰돈을 주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회사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산업계의 수익구조를 낱낱이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내가 50만 원을 받을 때 대행사는 150만 원 이상의 마진을 남기고 있었다. 말인즉슨 글 하나로 매출 수천이 왔다 갔다 했다는 것. 심지어 그 역시 내가 잘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블로그의 힘이 받쳐주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글 하나의 힘이 이 정도인데 도대체 온라인 마케팅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큰 걸까? 몹시 궁금해졌다. 결국 이 경험이 나를 마케터의 길 그리고 지금의 사업까지 이끌어주었다. 나도 내가 블로그 하나로 이렇게까지 전문성을 발전시켜 올 수 있을 줄 몰랐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하는 거구나 싶다. 그동안 방황하며 찍어두었던 여러 개의 점들이 모여야 겨우 하나의 선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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