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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Jul 18. 2024

1년의 방황 끝에 마주한 것은

두 번째 직장을 만나다.

무작정 대학병원을 뛰쳐나오고 1년, 나는 원하던 대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단순한 물리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장자크 루소의 말처럼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닌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좁은 나의 세계를 먼저 깨부숴야 했다. 치열하게 달리고 또 넘어지며 끊임없는 아픔을 견뎌내어야 했다.




'25살에 첫 직장 퇴사'라는 인생 첫 탈선을 저지르고서도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다. 출발선으로 돌아왔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고 다짐해 놓고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빠르게, 덜 힘들게 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학창 시절부터 '무엇이든 빠르게 배우는 아이' 프레임을 참 좋아했더랬다. 실제로 얼마나 깊이 있게 공부했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단지 시험에 100점을 맞기 위한 효율적인 공부. 그 태도가 알게 모르게 내 삶 전반에 찌들어있었다.


그러나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누군가 가만히 있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설 때에는 그가 얻는 이득이 내가 얻는 이득보다 크다는 것 또한 블로그를 하나 날려 먹고서야 알게 되었지.




1년의 방황 끝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1년의 방황 끝 나는 발가벗겨진 채 덩그러니 서 있는 스스로와 마주할 수 있었다.


요즘은 '메타인지'나 '자기 객관화'와 같은 단어가 어느 정도 대중화되었지만 4년 전만 해도 전문적인 영역에서나 볼 수 있는 개념이었다. 흔히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본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갓 퇴사를 결심했을 25살의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어린 나이와 부족한 사회 경험에서 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상위 50%라는 그런 명언에만 의지하여 막연하게 나는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름 합리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수치들만 가지고 통계를 내었다. 조회수 1000부터 10만까지의 영상을 분석했지만 그 아래 10, 50의 영상들은 애초에 나에게 닿을 수 조차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무작정 부딪힌 결과는? 대부분 처참했다. '왜 나만 안 되지?', '저 사람보다는 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땐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고만 생각했다. 억울한 마음이 차오르며 뭐라도 증명해 보이겠노라 독기만 품었다. 점점 눈앞에 보이는 수치에만 집착하게 됐다.


그러다 하나 둘 원하던 성과가 나왔다. 블로그로 원고료를 받고 유튜브 구독자 또한 늘면서 각종 강의 제안도 들어왔다. 하지만 그때 나는 한 번 더 무너졌다. 다음 단계(넥스트 스텝)에 대한 고려를 해본 적이 었었기 때문이다. '어? 이건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닌데.', '이 일 계속하면 문제 생길 것 같은데.' 어떤 일이든 1회성으로 해내는 것보다 지속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 10배, 100배 더 어렵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블로그도 저품질에 빠지고 유튜브 채널 역시 모든 영상이 비공개 처리가 되었다. 나 자신이 갓 태어난 아기 고라니와도 같은 상태처럼 느껴졌다. 비로소 나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직을 결심했다. 지금은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더 배워야 할 때임을 알았다.




무슨 일이든 해보자


이번 목표는 직장인이었다. 일반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회사 밖에서 홀로서기를 하려면 회사 안에서도 최소한 1인분 이상을 해내는 법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은 어떻게 매출을 내는지, 그 흐름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해야 하지? 나는 학력도 경력도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없었다. 4년제 간호대학 졸업과 대학병원 수술실의 짧은 경력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많은 이들이 병원 밖에서도 간호사가 할 일은 많다고 했지만 정작 찾아보려고 하니 뭐 하나 쉽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게다가 내가 있었던 수술실은 임상에서도 가장 특수한 영역 중 하나이다. 즉, 다른 부서에서 경력으로 칠 수 없다는 뜻이다. (경력이 될 수도 없는 게 애초에 하는 업무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 간호학과의 장점은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덕분에 4년의 학부생활동안 나는 특별히 무언가를 고민하거나 잘못 선택할까 봐 두려워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그 틀을 벗어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 이게 아닌 것 같다. 또 스스로를 '간호사'라는 한계 안에 가두고 있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져보기로 했다. 까짓 거 학력 좀 딸리면(?) 어때. 주눅 들지 말자. (이 때는 과반 수 이상의 대학교 졸업생이 자신의 전공과 다른 직업을 택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대부분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는 줄.)


2020년 기준 만 9년을 운영해 온 네이버 블로그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블로거로 수익활동을 하며 여러 마케팅 대행사/실행사들과 업무 했던 경험이 있다. 유튜브 운영을 하며 영상 편집 기술도 틈틈이 배웠고, 블로그 마케팅 강의 자료를 만드느라 SEO와 인바운드 마케팅에 대한 자그마한 지식도 있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1년간 방황하면서 얻은 것들을 쥐어짜듯 적어보았다. '콘텐츠'와 '마케팅'이라는 접점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고 따지고 할 것이 없었다. 일단 도전해 보자.


20곳 넘게 서류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은 이후, 관련 키워드를 열심히 검색해서 찾은 한 헬스케어 분야의 IT 스타트업에 우여곡절 끝 면접 끝에 합격하여 나의 두 번째 직장을 만나게 되었다. (TMI이지만, 당시 필수 지원자격에도 충족하지 않았는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무작정 입사 지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스타트업이라 이러한 무모함도 통했던 것 같다.)


이 직장에서의 경험은 다음 글에서 이어보겠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준 곳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렇다. 어느 직장이든 그 분야의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만을 채용하려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경험이라도, 지원하는 직무와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주니어로서의 그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특히 사회초년생이나 경력이 짧은 나이라면 더 유리하다. 아니,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지만 않는다면 어떤 분야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더라.


누군가는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먹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좁아질 대로 좁아진 나만의 세상을 뒤늦게 넓히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주위의 시선을 이겨내면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휘몰아치고 그 또한 눈을 감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프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견뎌야 한다.


나의 1년의 방황기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해야 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용두사미가 된 것도 같아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하루하루 나를 둘러싸고 있던 작은 껍질을 하나씩 깨어냈다.


그렇기에 첫 퇴사를 했던 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 한 결정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 '탈선'이다. 비록 반쯤은 떠밀리듯 시작점에 섰지만 덕분에 지금까지 내 삶의 방향키를 잡고 잘 항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두렵고 무섭지만 역시 게임은 수동 모드보단 자동 모드가 훨씬 재밌고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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