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알게 된 것
1년의 방황 끝 나는 재취업을 결심했다.
사실 나의 2번째 직장은 순전히 운빨(?)로 만났다. 당시 나는 필수 지원 조건에도 충족되지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냅다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거친 후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어떻게 붙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할까 말까 싶을 땐 일단 하고 보자는 마인드를 가지게 된 계기였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직한 이곳은 의료 기반의 IT 스타트업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다들 힘들게 일한다'는 말을 하던 사람들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나의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대학병원은 대기업과 유사한 점이 참 많았다. 이미 단단하게 굳어진 시스템과 그 안에서 정해진 일만 빈틈없이 해내도 조직은 무난하게 굴러갔으니.
하지만 스타트업은 전혀 달랐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뭐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게 없었다. 누군가 간이로 만들어놓은 시스템 역시 시시각각 바뀌기 마련이었다.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니 모두가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는 꼴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표정이나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심지어 미소를 머금고 말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병원에선 인사를 해도 싸늘한 눈빛으로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침마다 스몰 토크를 나눴다. 지난 주말은 어땠는지, 이번 달에 좋은 일은 없는지 조금은 사적인 질문 또한 서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커피머신에서는 뽑아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고 화장실 역시 언제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1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심지어 낮잠도 잘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아침마다 잠을 쫓느라 에너지를 낭비할 일이 적어졌다. 물도 자유롭게 마시며 화장실을 참지 않아도 되니 먹던 비뇨기계 약까지 끊었다. 연차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평일에 하루 부모님과 교외 드라이브를 다녀오곤 했다. 이런 것들이 남들은 별 거 아닌 '당연한' 환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삶의 만족도 자체를 엄청나게 올려주는 요인들이었다.
그곳에서 재직했던 2년의 기간 동안 소중한 인연들도 많이 만나고(현재 남편을 포함하여) 소위 병원물이라고 하는 부자연스러움을 많이 없앨 수 있었다. 첫 사회생활을 다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배웠다 보니, 여러 방면에서 자유도가 높은 스타트업의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약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대학병원과는 달리 직원 수 15명 남짓 작은 스타트업 회사였던 두 번째 직장은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전 직장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한 치의 실수도 하면 안 되었다. 수많은 발생 가능한 변수를 예측하여 prn의 prn까지 준비했어야 했으며 집도의의 원활한 수술을 위해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 크기와 선호하는 의자 높이까지 외웠어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 prn : Pro Re Nata의 약어이며 '필요시'를 뜻합니다.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하여 추가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일이 무척 신선했다. 큰 틀에서 방향만 정해놓고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것들은 다 해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 또한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강한 나에게 흥미롭게 느껴졌다.
맡은 바 일을 하나씩 수행해 나갈 때마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씩 해결하며 기쁨을 느꼈다. 상사 혹은 타 부서와 마찰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융통성 있게 풀어나가려 노력했다. 오히려 첫 직장에서 생긴 상대적인 나의 약점을 채우는 훈련을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의 재미가 이런 거구나.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다. 1년 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을 유연하게 해내는 스스로를 보면서, 또 그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성과가 나왔을 때의 희열을 느끼면서 나는 그제서야 업무적으로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다들 똑같이 힘들다면서요.
솔직히 이 때는 24살의 나에게 무작정 '버텨라'라고 말했던 수많은 주위 어른들에게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남의 돈을 번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며 내 성향과 가능성은 배제한 채 모두 일관된 대답만을 내놓았던 어른들. 유독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어딘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고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향해 치달았다.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살았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 저항을 견디고 25살에 퇴사를 했던 스스로가 때로는 대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자신은 없었다. 26살이라고 해도 이제 막 새로운 사회에 첫 발을 떼는 입장에서, 단 두 곳의 직장만 가지고 비교한다는 것은 그리 신뢰감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별 수 없지. 스스로 증명해 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30살이 되었고 올해 직장을 나왔다. 내가 보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지금도 끊임없이 나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이젠 소리내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에게 포기하고 타협하는 길이 최선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럼 난 25살의 무모했던 첫 퇴사와 방황이 있었기에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 때의 나는 내 안에서 특별함을 찾고 그걸 드러내기 위해 애썼다. 본질을 견고히 할 생각보다는 잘 보이기 위한 궁리만 했다. 잘 된 사람들의 사례만 분석하면서 저들처럼만 하면 나 또한 잘 되겠지, 막연하게 기대하고 또 실망했다. '왜 나만 안 될까.' 자책하기 바빴다.
지금은 반대다. 가장 쉽고 빠른 길이 아닌 오래 이어가며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내가 이끌어낼 수 있는 것 중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연구한다. 또한 거기서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를 찾는다. 잘 된 사람이 아닌 잘 된 사례를 본다. 반대로 잘 안 된 사례 또한 억지로라도 찾아본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것들을 공식화한다. 막연함과 우연함에 기대지 않는다. '왜 이번 건 또 안 되었을까?' 실패 요인을 내부에서 찾되 나 자신에게 대입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면서 한 발짝 떨어져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한 번 해내었으니 두 번, 세 번은 더 편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또한 생겼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5년 뒤, 10년 뒤의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다시금 한 회사의 직장인이 되어 있을 수도, 혹은 여행을 다니며 자유롭게 일을 하는 디지털노매드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직접 회사를 차려 몇 명 혹은 그 이상의 직원들을 둔 대표가 되어 있을 수도!
중요한 것은 '이대로는 못 살겠다!' 외치며 물 흐르듯 흘러가던 내 삶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매년 조금씩 더 행복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떤 형태인가는 아닌 것 같다. 이미 내 삶의 방향키를 잡았고 그걸 잡고 운전하는 힘을 계속해서 기르고 있으니까 그리 두려울 것도 없다. 미래 어느 순간에도 내가 하는 일이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 길이 곧 내가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일단, 이 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