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내향인의 주섬주섬 여행 줍기
눈치 보기에 바빴던 나날이 한소끔 지나갔다. 몇 년 동안 들끓었던 마음은 활동성의 저하로, 온정의 메마름으로, 딱딱한 표정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배배 꼬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최근 몇 년의 일들을 나만의 한 챕터로 명명하고 잠시 책을 덮어두는 일이 필요해졌다. 뒤틀어 굳어진 마음도 언제나 약간의 탈수 상태이던 몸도 가끔은 촉촉하게 적셔주어야 한다.
집의 냉장고를 모조리 비우고, 대기전력은 차단하고, 통장 계좌의 입금액란마저 당분간 비워두고 떠난다. 약 3개월 간 태국을 북에서 남으로 훑은 뒤, 남유럽의 순례길을 걸을 생각이다. 필요한 것들만 챙기니 75리터 배낭을 반도 채우지 못한다. 머릿속 불필요한 생각도 마치 가벼운 배낭을 만드는 일처럼 쉽게 솎아내졌으면 한다.
무상무념한 상태로 조금 늙어진 몸뚱이만 들고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다. 태양에 조금 더 가까운 나라에서는 세포가 노화를 재촉하게 내버려두려한다. 시간을 애써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는 일을 꾹 참아보려 한다. 햇살에 피부가 그을리고, 피부에 닿는 자외선의 느낌이 통각으로 전해진다. 갯가로 밀려난 불가사리처럼 나는 익어간다. 태양에 세포가 익어가듯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요기 수행자들이 시간을 '렛 뎀 고(Let them go)'라고 말하는 것처럼 시간을 멈춰둔 채 몸의 대사를 지켜본다. 최신 과학도 시간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시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몸의 탄생과 사건이 일의 선후관계를 만들어 냈고, 그것이 시간을 발명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념하게 반복되는 일이 일단락된 후에야 비로소 시간이 흘러갔음을 '인지'할 뿐이다. 시간은 시계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일 뿐일 때도 많다. 그러니 느낌과 시간은 서로에게 인력을 작용하지 않는 별도의 사건일지도 모른다. 느낌에 집중한다고 시간을 놓치는 것은 아닐 테니 한 번은 푹 빠져들어 몸이 짜여진 매듭을 한 올 한 올 느껴본다. 시간이 멈춘 듯 같은 자세로 기다란 느낌의 황홀경을 맛본다.
지금의 감각을 무시하면 시간이 흘러 애먼 세월만 탓할 위험이 증가한다. 감각을 긍정하면 시간은 잊힌다. 반대로 시간과 사건에 골몰하면 감각을 잃는다. 당분간은 흘러가는 시간을 무시하려 한다. 늘 감각을 일깨우는 현명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사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감각은 천대받기 일쑤였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동물은 사건 속에서 배를 채우고 돈을 벌거나 생계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중 유독 사피엔스의 대뇌가 사건과 시간을 복잡하게 직조하여 도시의 삶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런 도시에 지쳤다.
사람은 동물이기에 생명성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사람이기에 스스로 생명성을 저버릴 능력도 가진다. 생명과 '몰생명' 둘 사이의 긴장이 선과 악, 문화와 종교를 만들었고 우리는 무의식 속에 그 둘을 모두 간직하게 되었다. 다만 비행기 모드 버튼을 켰다 끄는 것처럼 둘 사이를 쉽게 오가는 능력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후대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석유 연료를 잔뜩 태워 비행기가 이륙하는 동안 잠시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 희망적인 느낌 하나가 여행이 주는 모든 상징을 설명한다.
우주가 닦아놓은 땅 위에,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곱게 닦아준 몸이 고요히 놓여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을 깨뜨리지 않으려 여행을 한다. 자갈밭을 뒹굴던 먼지가 별안간 붕 떠올라 바람을 따르는 것처럼 긴 채공의 여행에는 우주의 먼지가 된 듯한 맛이 있다.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초고속의 에너지로 달린다. 인간의 이륙은 꽤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비행기는 공기층을 파고들어 쇄도한다. 이륙의 시작점에선 기체가 상승 작용을 받도록 날개의 등을 둥글게 말아 올린다. 날개 뒤쪽의 물갈퀴처럼 생긴 날 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방식이다. 날개의 위와 아래를 지나는 공기의 흐름에 차이가 생기도록 만들어 기체의 상승을 유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이지만 분명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행기는 이륙 후 첫 30분 동안 난기류를 만난다. 공기 층 사이에 보푸라기처럼 돌출된 난류를 꿰뚫는 동안 커다란 기체가 흔들린다. 흡사 꾸불거리는 기찻길을 달리듯 상하좌우로 흔들거린다. 본능적인 반작용으로 몸에는 힘이 들어간다. 머리통과 몸통을 잇는 근육이 뻑적지근해지고 아랫배에도 곧추선 힘이 들어간다. 작은 몸에 잔뜩 힘을 준다고 해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하릴없이 힘을 주고만 있다. 책을 읽다 글자 하나에 꽂혀 눈살만 잔뜩 찌푸린 채 진도를 나가지 못하던 날처럼, 광장 속에서 타인을 의식해 혼자 힘을 준 채 주눅 들던 것처럼 무용한 힘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홀로 긴장하고 있다. 수 틀리면 바다에 뛰어드는 거지 뭐. 이쯤으로 생각을 정리한 뒤 피로한 눈을 감는다.
나는 태양에 좀 더 가까운 나라로, 곳곳에서 달콤한 열매들이 자라는, 한 해에 두 번을 추수할 수 있는 땅으로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