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치마저고리'라고 부르는 이들
일본인을 가르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는 일본인이라도 자주쓰는, 그들만의 단어가 몇 가지 있다는 점이다.
첫 수강생의 레벨테스트 시간
"한국어 수강은 처음이신데 알고 있는 한국어가 있나요?"
"국밥, 김밥, 순두부.. 지지미. 창자"
보통은 흔히 한국요리에서 접하는 음식에 관련된 단어를 이야기한다.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나요?"
"작년에 간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 즐거웠던 일을 말해주세요"
"네. 경복궁에서 친구랑 치마저고리를 입고 사진을 찍었어요"
아... 또 치마저고리가 나왔다.
한복이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한복보다 "치마저고리"라는 말이 한국의 전통 옷을 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 이 단어를 쓰는 일본 사람들이 정작 "치마"와 "저고리"의 뜻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치마와 저고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면 마치 큰 비밀이라도 알게 된 것처럼 눈이 동그래진다.
또 하나 재미있다고 느낀 단어는 "쵸래기 사라다"다. "쵸래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한국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사실 이는 상추와 양파 같은 채소에 간장 베이스의 양념과 약간의 고춧가루를 버무린, 우리말로는 "상추무침" 이라 부르는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자주 곁들여지는 메뉴로 자리 잡아 "쵸래기 사라다"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나는 일본에서 쵸래기 사라다를 메뉴에서 봤을 때 친구에게 "쵸래기가 뭐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인인데 쵸래기 사라다 몰라?"
응? 나만 모르는 단어였나. 쵸래기?
궁금한 마음에 쵸래기사라다를 주문했다.
내 눈앞에 있는 건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는 "상추무침"이었다.
찾아보니 '쵸래기'는 '저래기'라는 사투리에서 정착이 된 말인 듯 보인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저래기'라는 말도 낯설다.
또 한국음식 중에 '창자'를 언급한 수강생.
창자는 한국의 창란젓을 말한다.
창자라니... 한국인이 듣기로는 너무나도 거북한 이름이다.
창자라고 불리는 창란젓은 일본의 한국식당에서 사이드메뉴로 인기라고 한다.
깍두기는 カクテキ(카쿠테키)
국밥은 クッパ(쿠빠)
김밥은 キンパ (김파)
이들은 한국어 발음이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고유명사가 된 경우이다.
전은 チヂミ (지지미)
상추무침은 チョレギサラダ(쵸래기사라다)
한국의 지방 사투리에서 유래된 단어다.
창자, 쵸래기사라다.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는 그들만의 한국어다.
우리 역시, 우리가 흔히 외국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는 많은 단어중에는, 실제로는 원래의 형태에서 변형되어 우리만의 방식으로 쓰이고 있는 단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