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기억하죠? 저번에 만났던 그 남자요! 아니아니 그 남자 말고요"
"이번 한 주도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항상 수업 전에 내가 하는 질문이다.
수강생들의 발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많다.
"전 늘 똑같은데요. 일하고 친구도 가끔 만나고요.."
사실 내게도 매주 이런 질문을 한다면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내 일상은 누구보다도 평범하고 약속도 많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난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어제 김치부침개를 먹었어요. 아들이 해물을 싫어해서 반죽을 두 개나 만들었지 뭐예요"
이렇게 매주 연속해서 질문을 받다 보면 어색해하던 수강생도 일상 속 사소한 문장을 준비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어제 넷플릭스에서 재밌는 드라마를 봤어요"
"남자친구랑 싸웠어요"
"연말이라 대청소했어요"
"오늘 회사에서 제 옆자리 아저씨가 글쎄...."
짧은 이야기도 스스로 준비해 꺼내는 연습이다.
그 후로 몇 분 간 그 이야기를 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일본어로 말하면 된다.
어색하다면 더 좋은 표현으로 수정해주기도 한다.
이런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면 아무래도 편안한 분위기가 필요하고 수강생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나는 온라인 강사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감정 서비스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1대 1 수업에서는 저런 스몰토크가 상당히 깊은 대화로 이어질 때가 있다. 또 프리토킹 시간에는 토론 아닌 토론이 될 때도 있고 수강생의 감정을 헤아리고 반응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거다. 물론 나는 이 일이 희한하게도 적성에 잘 맞는다.
수강생에게 종종 듣는 소리가 있다.
"선생님은 한국여자 같지가 않아요. 한국 여자 선생님들은 솔직히 너무 무서워요... 근데 선생님은 편안해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요"
일본인들은 한국여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기가 쎄고 차갑다는 편견이다.
무서운 선생님은 수업이 딱딱하고 엄격한게 아니라 수업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불편했다는 게 아닐까.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다.
외국인의 언어능력을 최대로 늘려줘야 한다. 그럼에는 스스로의 발화가 중요하다.
발화를 시키려면 무엇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한 번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라는 질문에 한 수강생이 "고양이가 죽을 것 같아요 흑흑 "하면서 펑펑 운 적이 있다.
나도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우고 있으니 그동안 서로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 그분의 고양이가 16세가 되더니 병원 가는 일이 많아졌고 이제 곧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거다.
다 큰 어른이 외국어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니 창피했는지 연신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도 그 기분을 알기에 진심으로 그분을 위로해 주었다.
언어 교육에 앞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하루에도 여러 번 감정이 바뀌는 감정을 쓰는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슬프거나 속상함보다는 즐거운 감정이 훨씬 많이 소비되는 감정노동자이긴 하다.
좋은 일이 있다면 내게 말해주는 수강생들
여행에서 느낀 일을 내게 말해주는 수강생들
사소한 일도 스스로 사전을 찾아가며 말해주는 수강생들 덕분에 나는 조금 쳐져있는 기분에서도 5분간 내 감정을 리셋하며 수업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수강생들과는 이런 이야기까지 나누게 됐다.
"선생님 기억하죠? 저번에 만났던 그 남자요! 아니 아니 그 남자 말고요 그 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