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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r 02. 2024

저질체력인 나의 헬스 역사

운동이 준 삶의 변화

평균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는 덕에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신체와 달리 나는 체력이 약하다. 사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체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대학시절 밤샘 공모전 프로젝트를 하고 1~2시간 눈을 붙인 후 다시 수업을 들어도,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그다음 날이 되면 하루 정도는 거뜬히 버틸 수 있을 만큼은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단지 젊음에서 나오는 힘이지, 특별히 체력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건강에는 자신 있다며 근거 없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다 직장을 다닌 후, 한 달 정도 기관 평가 보고서 준비로 야근을 해야 했던 시즌이 있었다. 9시부터 6시까지는 본래 업무를 하고 6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보고서 작성을 하는 식이었다. 6시 반쯤 팀원들과 저녁을 시켜 먹고 9시, 10시까지 업무를 했다. 더 늦으면 11시가 넘어가는 날도 있었다. 정규 업무 시간보다 집중력과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밤 10시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보고서 책자와 한글 파일과 씨름을 하다 보면 과부하가 와서 머리가 멍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주말 중 하루는 출근을 했다. 그 당시 우리 팀은 팀장님을 제외하고는 젊은 직원들로만 이뤄져 있었고 열정과 의욕이 있었으며 그만큼 잘해보고 싶었다. 회사 내에 우리 팀을 주시하고 있는 눈들이 많았기에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야근을 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어가자 나는 급격히 체력이 약해졌다. 저녁 7시가 넘어가면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보고서 제출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찌어찌 버텨서 마감일 전날이 다가왔다. 마감일 전날임에도 미비한 부분이 많이 보였고 우리 팀은 새벽 4시까지 마무리 작업을 했다. 함께 자리를 지키면서도 나는 슬며시 내일이 걱정되었다. 지금까지 체력이 많이 소진된 데다 나는 철야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아침에 다시 출근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몸이 평소와 다른 것이 느껴졌다. 눈은 뜨고 있지만 정신이 맑지 못한 느낌. 정보 인지 능력과 판단력이 평상시만큼 또렷하지 못했다.


'정신 차려! 오늘까지는 버텨야 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보고서 제출 마감은 그날 밤 12시까지였고 우리 팀은 막바지 작업에 총력을 다했다. 모든 장표가 최신 버전으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파트를 돌려가며 오탈자를 찾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우수 사례 파트 개수와 분량을 다시 확인했다.


필사적인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정신과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뇌의 반응속도가 느려진 것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일정 시간이상 잠을 자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몸의 반응이 그대로 보였다. 팀원들은 이런 내 상태를 눈치채고 나를 최대한 배려해 주었고 티가 나지 않게 내 몫의 일을 나머지 인원들이 나눠서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단지 하루였지만 너무나 미안했다. 이렇게 중요한 날, 그것도 마지막 제출일에 내가 팀에 폐를 끼친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다행스럽게도 우린 마감 시 전까지 보고서 최종본과 모든 자료들을 업로드했다. 다들 수고했다며 푹 자고 내일 보자며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수개월이 지나 우리 기관은 평가 결과에서 '나' 등급을 받았고 전국의 동종 기관에서 4위를 했다. 작년보다 한 등급 오른 우수한 성과였다. 우리 팀은 여러 부서에서 격려와 축하의 말을 들었다. 팀원들끼리 조촐한 회식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거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현실화했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동고동락하며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회사생활을 통틀어 이때의 경험을 절대 잊지 못한다. 이로서 나는 체력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무슨 일을 끝까지 잘 해내는 데에는 튼튼한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목적은 체력 증진과 근육량 늘리기. 집 근처 헬스장에서 개인 PT를 등록했다. 헬린이였지만 PT를 등록한 이유는 웨이트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전문가에게 기초부터 배우고 싶어서였다. 처음이라 가볍게 10회를 등록했다. PT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근육이 빵빵한 사람들만 사용하는 줄로만 알았던 웨이트 기구를 직접 써보니 나도 운동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바벨을 든 내 모습이 엉성하게 보였지만 조금씩 자세를 고쳐가며 운동에 집중했다. 스미스 머신, 레그 프레스, 힙 어브덕션같은 기구를 이용해 배우는 동작들도 신선했다. 땀에 흠뻑 젖고 나서 샤워를 하면 드는 상쾌한 느낌도 좋았다.


하지만 운동에 대한 흥미도 잠시, 나는 생각보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수업 7~8회째가 되어갈 무렵 헬스장에 가는 게 슬슬 귀찮아졌다. 일을 마치고 나면 피곤했고 동기들과 술 약속이라도 잡힌 날이면 슬그머니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카톡을 해 수업을 미뤘다. 물론 내가 그날 술을 마셨다는 사실은 비밀로 한 채.


이후 남은 PT 수업을 모두 들었지만 꾸준히 헬스장에 나가는 데에는 실패했다. 근육에 자극이 오는 것을 제대로 느끼고 꾸준히 지속하기에 두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아니, 그것보다 지친 몸을 어서 침대에 뉘이거나 저녁 술자리에 가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나의 첫 PT는 그렇게 끝났다.






그로부터 3년 후, 웨이트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지 3개월 정도 된 즈음이었고 건강하고 규칙적인 삶의 루틴을 만들고 싶었다. 나도 '갓생 살기' 열풍에 동참한 것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두 번째 PT를 10회 등록했다. 이번엔 출근 전, 아침 수업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헬스장으로 향했다. 아직 새벽 어스름이 다 가시지 않아 밖은 깜깜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한 스스로를 칭찬하며 헬스장에 도착하면 나보다 먼저 와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두 번째 PT를 받을 땐 근육에 자극이 온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데드리프트나 스쿼트를 할 때 자세에 조금 더 신경 썼다. 많은 중량을 들진 못했지만 15회씩 4세트를 온전히 다 채울 때까지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는 하체 운동에 특히 재미를 느꼈다. 상체보다는 하체 힘이 좋은 편이었고 근육이 조금씩 느는 것도 느껴졌다. 나만 알 수 있는 미미한 정도였지만 몸에 변화가 오니 운동의 재미도 있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가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하루는 오전 8시쯤 헬스장에 도착해 스트레칭을 마치고 힙쓰러스트를 하기 위해 스미스 머신으로 다가갔다. 10kg짜리 중량 원판을 스미스머신 봉에 끼우기 위해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찰나, 두 손에서 원판이 떨어져 나갔고 원판은 내 발을 스치며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엄지발가락에 강한 통증이 몰려왔다. 아뿔싸.


나는 벤치에 앉아 운동화를 벗고 발을 감싸 쥐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놀라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양말 한번 벗어보세요."


양말을 벗으니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 부근이 조금 빨갛게 부어올랐다. 아릿한 통증은 계속되었다. 나는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1시간 정도 가볍게 운동을 하고 바로 출근을 하려 했는데 이 상태로 출근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원판을 잡고 들었어야 했는데, 왜 중간에 그걸 놓쳐버린 거야.. 정말 웨이트랑 나는 맞지 않는 건가 보다. 오늘 아침 운동을 오는 게 아니었는데..나는 아침형 인간도 아니면서 무슨 오전 PT를 받겠다고.'


자책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병원부터 가보세요. 병원 갔다 와서 꼭 다시 연락 주세요."


트레이너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근처 정형외과를 알려주었다. 나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정형외과로 갔다. 가장 먼저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얼마간 기다린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여기 엑스레이 사진을 보시면, 엄지발가락에 금이 가 있죠? 많이 아프셨을 것 같은데.. 괜찮으셨어요?"


사진을 보니 엄지발가락 쪽에 세 갈래로 갈라진 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 순간의 부주의로 다친 게 속상하고 서러웠다. 그날 이후 사나흘 정도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진통제를 먹었다. 그리고 한 달을 반깁스를 하고 다녀야 했다. 살면서 한 번도 깁스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 기록을 이번에 깨는구나 하며 조금만 다쳐도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불편함을 주는지 깨달았다.


한 달이 지나자 깁스를 하지 않은 채 생활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3개월 정도가 지나 엑스레이를 다시 찍으니 뼈는 거의 붙었다. 하지만 다친 이후로 헬스장은 한동안 가지 않았다. 일이 더 바빠지기도 했고 한번 다치고 나니 웨이트를 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 시간이 나면 공원 산책을 하는 게 다였다. 또다시 운동과 나는 멀어졌다. 그 사이 근육량은 줄었고 조금씩 군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일상이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몇 개월간 제대로된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살이 찌는 건 싫으니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다음 날은 가볍게 먹었다. 그래도 평소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데다 운동량이 적어 원래보다 몸이 무거워진 게 느껴졌다.






다시 헬스장을 찾은 건 최근이다. 이사를 한 후, 2달 정도가 지났고 몸과 마음의 여유를 모두 되찾았다고 생각되는 시점이었다. 여유가 생기니 평소에 체력을 키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과 체력이 모든 일의 기초이자 더 나은 일상을 살게 해 준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다시 운동을 시작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나는 PT를 등록하지 않았고 갓생 살기같은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다. 운동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건 체력 증진과 근육량 증가. 인바디 측정을 할 때마다 평균 근육량보다 적게 나왔기에 근육량을 늘려 기초대사량을 높이고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로 만들고 싶었다. 적당한 근육이 있을 때 몸이 더 예뻐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제 저질체력을 벗어나 무슨 일을 해도 피로감을 덜 느끼는 튼튼한 체력을 키우고 싶었다.


헬스장에 가는 건 일주일에 평균 4번. 하루에 웨이트 50분, 유산소 40분. 1시간 30분 정도를 꾸준히 했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꼭 스트레칭을 했다. 예전에는 스트레칭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스트레칭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차이를 몸이 알아챈다. 특히 폼롤러를 이용해 곳곳의 근육을 풀어주면 부상의 위험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근육이 이완되어 더욱 동작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더 많은 무게를 들려고 욕심내지 않고 내 몸이 수용할 수 있는 무게로 정확한 자세로 운동하는 데에 더 신경을 썼다. 예전에는 웨이트 운동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면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데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든다. 운동을 할 때만큼은 머리를 비우고 자동적으로 숫자를 세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는 운동이 끝나고 나면 헬스장에 오기 전에 어떤 것 때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열기로 가득 찬 헬스장 안에서는 한 세트만 더 하면 죽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숨을 몰아쉬며 반복 동작을 끝까지 해치워나가는 것만이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꾸준히 운동한 지 한 달 반이 지나니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도 처음 들었던 무게보다 더 높은 무게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신기했다. 몸무게의 변화는 크게 없었지만 지방이 조금 빠지고 근육이 늘어서인지 체형이 조금 다듬어진 것 같았다. 운동을 하루 쉬는 날에는 헬스장 생각이 나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헬스장에 가는 게 귀찮고 운동의 재미를 느끼지도 못하던 예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꾸준한 운동은 스트레스를 이기는 힘을 키워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며 더 나은 일상을 살게 해 준다. 길었던 나의 헬스 역사를 거쳐 이제야 운동이 주는 삶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뭔가를 해내는 사람들이 운동을 생활화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운동을 한지 얼마되지 않은 헬린이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중간에 그만두는 일 없이 꾸준히 운동을 할 것이다. 건강한 신체와 튼튼한 체력으로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몸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의 운동은 일상의 중심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러니 내 삶을 언제나 온전히 지탱하기 위해, 살아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결국은 균형적이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난 운동을 하러 간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_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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