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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28. 2024

새벽, 그 아득함

불면의 밤

불면. 어느새 너는 나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너와 가까이하길 원하지 않았는데 너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건지 내 곁에서 왜 자꾸만 머무르는지 모르겠다.


야속한 오전 세시.


어김없이 나는 선잠에서 깼다. 잠을 잔 것인지 꿈속을 유영하다 눈을 뜬 것인지 쉽사리 분간되지 않는다. 얕은 잠의 감각, 그 한 귀퉁이라도 다시 잡아보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눈을 감아본다. 다시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 탓인지 조금씩 정신은 더 맑아져 온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주광등의 조명을 켠다. 그리고는 침대맡에 놓인 책을 집어 든다. 활자를 읽다 보면 잠이 오겠지 하면서. 책을 읽으면서도 졸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30분쯤 지났을까. 책을 덮고 누워 다시 잠에 들길 시도한다.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계는 일부러 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걸 인식할수록 잠과는 더 멀어진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간을 더 뒤척이다 잠에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아침이다. 하지만 몸은 천근만근. 눈꺼풀은 무겁다. 오늘 하루도 힘들겠구나. 깊은 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게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잠에 든다는 것은 인간의 활동을 잠시 멈추는 휴식이자 충전의 시간이다. 잠 속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기 바쁜 현실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부터 활기찬 일상의 시작이다. 살기 위한 본능에 가까운 이 행위가 이토록 중요하다는 사실을 불면을 경험하기 전엔 알지 못했다. 나의 불면은 직장생활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내일이 오는 것에 대한 걱정과 잘 해내야 한다는, 잘 해내고 싶다는 부담과 불안이 잠 못 드는 밤과 조우하게 했던 것 같다. 사실 잠을 못 자면서까지 걱정해야 할 일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많은 생각과 걱정을 한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리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다음 날의 컨디션에 지장을 주기 일쑤다.                 


사람이 잘 살아가는 데 '잘 먹고 잘 자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잘 먹고 잘 자야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또 다른 중요한 일들을 잘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먹고 자는 데 온 에너지를 쓰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우리는 '잠'으로써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을 맞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불면을 겪기 전에는 자고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할 일인가'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이 말에 매우 공감한다. 간밤에 개운한 단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활기차고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잠이 오지 않을 땐 몹시 괴롭다. 잠을 자지 못한 채 이대로 아침이 되지 않을까. 그럼 내일 하루는 또 괴롭겠지. 이런 생각할 시간에 자면 좋으련만 왜 잠이 들지 않을까. 내일 무슨 일을 해야 하는데. 오만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은 걱정이 앞서는 일도, 불안으로 다가오는 일도 크게 없는데 왜 잠이 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3번은 몸이 적당히 지칠 정도의 운동도 하는데 말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1) 내일이 오는 게 싫어서. 출근해서 해야 할 무거운 일이 머릿속을 둥실둥실 떠다녀서

2) 며칠 전, 누군가에게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해버렸거나 일주일 전, 누군가에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서

3)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던, 나의 어린 마음과 미숙함 때문에 아직 용서하지 못한 이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4) 필요 없는 생각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최근엔 얼마 전에 있었던 별 것 아닌 일에 이불킥을 하느라, 쓸데없는 공상과 필요 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휘저어 놓아서 잠을 쉽게 들 수 없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천성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극명하게 다른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질 좋은 수면을 방해한다는 점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세상이 온통 까만 새벽 시간에 혼자서 왜 생각의 나래를 펴고 있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전등 스위치처럼 생각에도 버튼이라는 게 있다면 켜고 끌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면 잠 못 드는 밤 때문에 이토록 괴롭지 않아도 될 텐데.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은 오히려 낮보다 정신이 더 맑다. 마치 각성된 상태인 것처럼 또렷하다. 정신이 맑아질수록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들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떠오른다.


'아, 이러면 분명 내일 헤롱헤롱 정신을 못 차릴 게 뻔한데...'


그럴 때면 차라리 침대를 박차고 나가 책을 읽거나 영화 보기를 택한다. 자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대신 뭐라도 하다 보면 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정신은 또렷해진다.


예전엔 잠이 안 드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잠이 잘 오는 방법 같은 것들을 찾아보고 따라 해보려고도 해 봤다. 좀처럼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를 달래 규칙적으로 운동도 해보고, 우유를 데워 따듯하게 마시고, 양 세기 같은 고전적인 방법을 써보기도 했다. 얼마간 조금 효과가 있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자 또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이어졌다. 잠 못 자는 건 아마도 습관이 돼버린 것 같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일찍 잠드는 날엔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불면을 어느 정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슬프지만.


 




나는 잠을 잘 잔 날과 그렇지 못한 날, 하루의 컨디션이 크게 다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잠을 자지 못한 다음날에는 일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고 당연하지만 조금 더 예민한 상태가 된다. 이를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타인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너무나 잘 인지할 수 있다. 예민한 상태에서는 감정 조절 능력이 조금 떨어져 좋은 컨디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해버릴 때가 있다. 그리곤 그 날밤에 그 말을 해버린 나를 후회하느라 또 잠을 자지 못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어쩌다 조금 실수하면 어떠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잖은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조금 못해도, 나도 모르게 미운 짓을 해버려도 자신을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을 무기이자 선물로 지혜롭게 활용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다짐한다.


지난밤 수면의 질이 너무 떨어져 하루가 힘겨웠던 날에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낸다. 잠에 들기 좋은 주량은 맥주 2캔. 500ml 맥주 2캔을 딱 마시면 적당히 취기가 오르고 살짝 나른해진다. 거기에 적당한 포만감까지 더해지면 잠에 들기가 한결 수월하다. 맥주를 마신 다음 날은 일부러 늦잠을 자버린다. 그동안 잘 자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랄까. 이때만큼은 늦잠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한 번도 깨지 않고 오전 10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 눈꺼풀이 무겁지도 않다. 이런 날은 확실히 하루의 질이 올라간다. 일주일에 한 번쯤 이렇게 잘 자는 날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잘 잔 다음 날은 중요한 일을 하거나, 읽고 싶었던 책을 집중해서 읽거나 열심히 운동을 한다. 근력 운동을 더 열심히 하거나 밖에 나가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며 파워워킹을 한다.


숙면이 일상에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잠을 잘 잘 수 있다면 신체 컨디션의 영향으로 다른 일에 지장을 받거나 쓸데없는 말을 내뱉고서는 이불킥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주 가끔의 불면은 삶을 돋우는 각성제가 될 수 있다. 깊고 고요한 밤 한가운데서 하루와 일상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회한의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풍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심을 앞두고 심기일전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물론 가끔은 낭만이 되지만 일상이라면 낭패다.


살다 보면 마주하는 수많은 경험과 감정, 그리고 선택이 불면을 부르기도, 숙면을 부르기도 한다.

시소처럼 오르내리는 삶의 리듬. 어떤 날엔 재밌고 즐거운데 아닐 때는 앙상한 채 꺾인 나뭇가지처럼 공허하다. 놀이공원에 있는 어트랙션 놀이기구 같다. 2분 남짓 재밌자고 한 시간 고통받는 것이 인생일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의 기다림을 무의미하다고만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기다림은 지루하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려있을 것이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푹 자고 일어나면 정말 좋다.

불면이 만성이 되지 않기를, 가끔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처럼 아주 우연히 만날 수 있기를.

온갖 이유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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