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용인으로서의 슬기로운 식당 생활
출근 날짜를 사장님과 조율하고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얼마나 추웠던지 아직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늦겨울이었다. 오전 9:30까지 출근이었는데 30분 일찍 도착해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가게 직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장이 아니고 직원이라 그런지 거의 9:29분쯤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처음 봤기 때문에 통성명을 했는데 이제 곧 그만두게 되는, 나보다는 나이가 8살 어린 과장급 직원이었다. 뒤이어 주방보조 알바생이 한 명 더 출근을 했는데 그 친구한테 제일 먼저 오픈 준비하고 육수 끓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정말 정신없었다.
오전 11시에 영업을 시작하는데 출근해서 영업 시작하기 전까지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잠시도 쉴 틈 없이 가게 오픈 준비를 했다. 육수 끓이기, 장국 끓이기, 샐러드용 채소 다듬기, 면 소분하기, 쌀 씻고 불리고 밥하기 등. 지금 내 가게를 꾸려나가면서는 익숙한 일이지만 첫 출근 때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주로 써야 되는 칼은 일명 '사시미칼'과 '데바'라는 한쪽에만 날이 서있는 것이어서 엄청 생소했다. 출근 첫날이라 가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너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나도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됐었다. 정말 눈치껏 배우고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많이 한 건 설거지였다.
중간중간 짬이 날 때마다 그 직원으로부터 칼질하는 법과 칼 가는 법, 일식 요리 전반에 대해서 배웠다. 사실 요식업 세계에서 업계 특성인지는 몰라도 사수가 부사수에게 그렇게 자세하게 가르쳐 주진 않는다. 사수가 하는 걸 어깨너머로 익히고 터득해야 하는 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 직원은 가게를 곧 그만두고 나가는 입장이라 내가 어느 정도 실력 향상이 빨리되야 가게 운영에 공백이 안 생길 거라 여기고 많이 알려줬던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 외우는 게 힘든 나는 녹음, 동영상 촬영, 메모 가리지 않고 알려주는 모든 걸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가게 운영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장님까지 포함해서 오픈 조 2명, 마감 조 2명 이렇게 주방은 기본 4명으로 근무 로테이션이 돌았고 시간대별로 홀써빙 알바가 출근해서 홀을 담당했다. 오전에 식자재 업체로부터 전날 발주한 식자재가 도착하면 상태와 수량 확인해서 인수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오픈 준비가 끝나는 대로 근처 시장에 가서 장 봐왔다.
손님이 오면 홀써빙이 주문을 받고 주방 프린터로 주문서가 넘어오면 음식을 조리해서 나갔다. 오후 2시에 식사시간이었고 브레이크 타임 없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 장사가 끝난 뒤 오픈 조는 먼저 퇴근하고 마감 조는 조금 더 영업하다가 청소하고 마감하고 정산하고 문단속하고 퇴근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주방에서 막내였고 위로는 곧 그만두는 29살짜리 과장급 직원과 26살짜리 대리급 직원이 있었다. 과장급 직원이 그만두면 대리급 직원과 나와 사장님이 가게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 덕분인지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스파르타식으로 아주 호된 야단을 맞아가며 가게 일을 배워나갔다. 서러웠던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바쁜 주방 안에서 어느 누구도 초짜에게 다정다감하게 멘토링을 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꾹 참았다.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주문이 들어왔을 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줘야 했다. 나는 초기에 면요리를 담당했는데 너무 주문이 밀려들어오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주문받는 족족 만들어 보냈다가 사장님한테 많은 꾸지람을 들었다. 다른 주문 메뉴가 조리되는 상황을 보고 맞춰서 면요리가 나가야 되는데 그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 외에도 육수를 끓이고 있다면 그 사이에 채소 손질이라든지 소스를 만들거나 해서 일에 공백이 없게 해야 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게 있다가 역시나 야단을 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며칠을 그렇게 정신없게 보내고 첫 휴일이 찾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는 건 그냥 반복 노동 같았다. 뭔가 정리를 해야 했다. 가게에서 했던 일들을 복기하면서 업체별 발주 목록과 업무 순서를 노트에 적어봤다. 그리고 시간대 별로 내가 해야 할 일을 간단하게 적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를 하고 나니 일을 해야 하는 순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약간 자신감도 쌓였다. 내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얼른 출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대리급 직원과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한 달에 정해진 휴일을, 타이밍만 맞으면 몰아서 쓰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첫 휴일을 보낸 다음날 같은 시간에 그와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와의 대립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