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블루 마운틴에 가기 위해 근교 숙소에 약 일주일간 머무를 때다.
블루 마운틴에 가기 위해 근교 숙소에 약 일주일간 머무를 때다. 손자를 사랑하는 반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일본 사람으로 오해했는지, 만나자마자 일본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한바탕 했다. 마지막으로 손자가 ‘피카추’에 완전히 빠져 있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마당에는 커다란 트램펄린이 있었고 듬직한 나무에는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그네가 달려 있었다. 화원에는 수국이 함박눈처럼 가득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서재와 게스트룸이 함께 딸린 곳이었다. 서재는 매우 넓어 흡사 도서관처럼 느껴졌다. 천장에는 중간중간 유리 창문을 달아 놔 하늘이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나뭇가지가 일렁였다. 밤이 되면 아주 캄캄해서 산에서 이리 떼가 내려올 것만 같았다. 들뜬 화장실 문 아래로 성인 남성 주먹만 한 타란툴라가 들어와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호주 시드니에 블루 마운틴이 있다. 무려 5억 년 전 형성된 원시림이다. 유칼립투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별한 성분으로 산이 바다처럼 푸르게 보인다. 납작하고 넓은 산맥을 바라보면 몽롱하다. 우산같이 넓적한 잎을 층층이 드리운 나무고사리, 퇴적암이 융기하여 생긴 절벽이 있다. 만화에서나 볼법한 큰유황앵무도 산다. 목적지인 에코 포인트로 향하며 고대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두 돌밖에 지나지 않아, 이제 겨우 네 살이지만 무한동력기를 단 듯 뛰어간다. 남편과 나는 유모차를 앞뒤로 들고 걸었다. 왜 가져왔을까, 후회했다. 알싸한 유칼립투스 냄새가 뜨거운 열기와 섞였다. 땀방울이 되어 온몸에 흘러내렸다.
에코 포인트에 이르니 블루 마운틴이 온 세상을 휘감은 듯 광활했다. 슬픈 전설이 있는 세 자매 봉이 눈에 띈다. 땀을 식히며 한숨 돌리는데 한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지개색 티에 특이하게 생긴 검은 조끼를 입고, 연두색 헬멧을 썼다. 이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남자가 그렇게 쉽게 뛰어내릴 줄 말이다. 남자는 천천히 난간 밖으로 몸을 빼더니 느린 숨을 내쉬었다. 난간에 걸치고 있던 팔을 풀었다. 남자는 그대로 유칼립투스 나무 위로 떨어졌다. 너무 놀라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눈도 깜박 못한 채 추락하는 검은 점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남자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등에 날개가 있었다. 빨간 줄을 가운데 두고 검은색 작은 낙하산이 날개 모양으로 펼쳐졌다. 아까 살피지 못한 헬멧 앞부분에는 작은 카메라가 있었다. 단출한 차림으로 뛰어내렸지만, 많이 해본 솜씨가 분명했다. 능숙하게 바람을 가르며 방향을 틀었다. 아마 남자에게는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영원을 누리고 싶어 깎아지른듯한 낭떠러지도 두렵지 않았으리라. 남자는 짧은 비행을 마치고 나무가 적은 어딘가로 향했다. 절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래 길이 있는지,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건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아마 충분한 사전 조사를 했을 것이다. 이 장소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남자의 비행이 생생하다.
해보지 않은 일을 결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미 경험했던 일이라도 새로운 사건, 다른 결말로 다가온다. 때로는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워도 먼저 발을 내딛는 게 먼저일 수 있다. 하강하기 전에 날개를 펼치면 날아오를 수 없다. 먼저 뛰어내려야 한다. 두 발을 땅에서 떨어트리고 난간을 붙든 손을 놓아야 한다. 허공에 몸을 던진 채 중력을 충분히 맛보아야 한다. 부질없이 추락해야 한다. 낙하산을 펼친다. 공기의 저항이 강할수록 하늘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앞서 선택하고, 후에 준비한 것을 시행할 때도 있는 법이다. 남자의 비행이 경이로운 것은 과감한 결단력과 시행 탓이었을 것이다.
2022.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