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대장내시경을 했다.
난생처음 대장내시경을 했다. 이른 나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냉큼 신청했더니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이 왜 대장 내시경을 무서워서 못한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3일간의 식이 조절은 그나마 평이한 수준이었는데, 검사일 전날 복용하는 관장약의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다. 500ml의 물에 바닷물 맛이 나는 약을 타서 30분마다 총 8회 마셔야 한다. 구역질과 복통에 시달리며 거의 밤을 지새우게 된다. 이 약을 못 먹어서 중도 포기자도 많다고 들었다. 나도 다 먹진 못하고 꾸역꾸역 토해가며 최대한 먹었다.
검사 당일에 수면 검사라 자차를 이용을 할 수 없기에 대중교통으로 병원에 갔다. 가는 길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까 봐 불안에 떨어야 했다.아침 8시가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했는데 이미 건강검진센터는 포화상태였다. "남자 탈의실에 옷 없어요" 외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벌써 검사를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남은 위, 대장 내시경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나도 온갖 검사를 마치고 대장 내시경 옷으로 갈아입었다. 엉덩이 부분이 뚫리고 그 위에 커다란 천을 덧댄, 시원하고 민망한 옷이었다. 위와 대장 내시경을 모두 수면으로 했는데 너무 긴장돼서 손이 덜덜 떨려왔다. 위 내시경은 몇 번 해보았는데도 여전히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몸이 떨리고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겁에 질렸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자 채혈한 왼쪽 팔 대신, 오른쪽 팔에 주사 바늘을 꽂는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떨려요." "처음이신 거죠? 대장 내시경을 하기엔 좀 이르긴 하네요. 그래도 요즘엔 20대부터 많이 하긴 해요." 기계처럼 움직이던 간호사가 대답을 해주어서 아,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링거를 달고 대기실에 앉아 대기하는데 모든 소리가 증폭되어 거세게 들려왔다. 기구들을 소독하는 소리, 무언가 탁탁 치는 소리, "어- 어-" 잠결에 내뱉는 짧은 신음 소리, 잠든 사람을 깨우는 소리,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머지않은 미래에 그 소리 속에 내가 있을 것이다. 검사를 마친 중년의 남성이 이동식 침대에 누워 실려갔다. 간호사는 재빠른 걸음으로 검사실에서 회복실로 남성을 옮겼다. 남성의 눈은 살포시 감긴 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검사를 받게 될까?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곗바늘을 바라보며 심장이 요동쳤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생년월일과 이름을 말하고 침대에 누웠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간호사가 세 대의 주사를 집어 들었다. 한 대씩 설명하며 오른팔에 꽂힌 주사기에 놓았다. 입에 물린 개구기 때문에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입이 아픈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간호사가 말했다. "그냥 빨리 잠 드세요." 약간 불친절한 것 같은데, 이건 짜증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 눈을 꼭 감았다. 검사할 때 헛소리 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어떤 흑역사를 만들어낼까, 부끄러웠다.
"이제 일어나세요." 오른쪽 옆구리에서 어마어마한 통증과 함께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옆구리가 너무 아파요." 배가 찢어질 것 같은 답답함, 거대한 뱀이 뱃속에 꽈리를 튼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대장 내시경 검사할 때 가스를 주입해서 그래요. 화장실 가서 앉아서 방귀 많이 뀌세요." 간호사는 그대로 내 두 팔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몸이 자꾸 앞으로 구부러 졌다. 간신히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 앞까지 갔지만 나는 혼절 직전의 상태란 걸 알고 있었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몸을 베베 꼬며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애썼다. 계속 눈이 감겼다. 졸음이 몰려왔다. 변기 위에 앉은 채 몇 번이나 잠이 들었다 깨었다. '도움이 필요해.'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었지만 꺼내 들 정신도, 비번을 풀고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 힘도 없었다. '안 되겠다. 정말 도움이 필요해.' 변기 위에 있는 호출 벨을 눌렀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뱉어 상황을 설명하려 애썼지만 모기 같은 웅얼거림 뿐이었다. 나는 그대로 변기 아래 주저앉았고 더 이상 호출 벨에선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뱃속에서 느껴졌다. 애면글면 손을 뻗어 화장실 잠금쇠를 풀었다. 문이 열리고 나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내 영혼은 육체를 포기한 채 어딘가로 떠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육체가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 밖으로 밀어낸 건지도 모른다.
내 영혼은 이십대 초반의 나로 돌아가 화장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반팔을 입던 추석에, 튀긴 새우를 잘못 먹고 가족 모두가 급성 장염에 걸렸다. 내 상태가 가장 심각했는데 연휴에 문을 연 작은 의원 병실에 누워 링거를 맞았다. 2층 병실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링거를 맞고 있자니 화장실이 급해졌다.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듯 내려와 화장실로 기어갔다. 민망한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화장실 바닥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누군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도 내 육체는 화장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나가던 간호사가 나를 발견했다. 검진센터는 대학병원이었고 어느 장소든 사람들의 출입이 잦았다. 지나가던 길에 화장실을 한 번 쳐다봐준 간호사에게 감사했다. "호출벨을 누르시지 그랬어요." 간호사의 말에 대답할 여력도 없었다. 부축을 받으며 다시 회복실로 가서 누웠다. 두 다리를 위로 올리고 한 간호사가 다가와 배를 밀어주었다. "이렇게 손으로 배를 눌러서 가스를 다 내보내셔야 해요. 워낙 마르셔서 그런가 봐요." 이 작은 몸뚱이는 대장 내시경 가스조차 감당치 못하고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몇 번의 가스를 배출한 끝에 나는 홀로 남은 회복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더 고통 속에 보냈다.
맨 정신으로 수술대 위에 누워 처치를 기다리던 때, 위와 대장 내시경을 앞두고 대기 좌석에 앉아있던 때, 엄청난 고통에 아무것도 못한 채 좌절하던 때, 그 흑암의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두렵게 했을까? 더 큰 수술이나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사람도 허다하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늘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그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공포를 인식했다. 도망치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최선의 선택임에도 암귀가 앞섰다. 그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 몇 번이고 그 순간들을 복기했다. 똑바로 보고 제대로 알고 싶었다. 안젤름 그륀 신부는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에서 "자신을 방어하여 상처를 피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반복해서 받는 오래된 상처를 샅샅이 뒤져 보면, 그 상처로 인해 다시 상처받든지 아니면 화해하고 그것을 놓아버리든지 하는 것은 내 책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고백한다. 나아가 "참된 자유는 외적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누리는 자유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영혼의 상처를 뛰어넘어 내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배하는 감정을 직시하고,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를 지배했던 공포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의식, 비통제의 영역이었다. 자각할 수 없고 영과 육이 따로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다. 어쩌면 사후 천국에서 누릴 축복이란 영혼을 얽매는 모든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해방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애쓴다고 영과 육이 일치되는 것도 아니고, 소홀히 한다고 나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더 평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내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육체의 한계를 알고 감싸고 아껴주는 것이 최선이다. 영혼은 육체를 인식하고, 육체는 영혼을 강건케 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 돌봄이 나를 자유케 할 것이다.
초고 2022.08.25